그렇게나 슬픈 고발 : 가버나움

6월의 테마 :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

by 유진


가버나움 (Capernaum, 2018)









한 아이가 부모님을 고소했다. 자신을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로.

2019년 초,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한참을 망설였다. 봐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보고 나면, 한동안 우울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결국 망설임을 이기고 보러 가고 말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한동안 생각했다. 자인이 고발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가버나움]의 주인공 자인. 자인은 하루 동안 끊임없이 일한다. 아침 일찍 주스 장사를 하러 나가고, 아사드의 가게에 가 일해 집세를 벌고 동생들과 함께 먹을 것을 번다. 자신보다 덩치 큰 상대와의 싸움도 무서워하지 않는 자인이 두려워하는 오직 하나. 여동생 사하르가 사라지는 것이다.

[가버나움]의 배경이 되는 레바논. 종파 간 권력 분배를 인정한 국가이다. 참 좋은 의도였지만 제대로 된 보안 장치 없는 상태에서의 권력분배는 곧 긴 내전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서구 세력의 개입이 더해지고, 시리아 내전의 영향까지 겹쳤다. 레바논의 경제는 나날이 악화되어, 2018년에는 공공부채가 80억에 달하게 되었으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53%까지 치솟았다. 이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GDP 채무 비중이다. 정파 간 다툼으로 제대로 된 연립 내각이 구성되지 못해 정치 공백 역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국가에서 제대로 된 사회 정책을 실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혼란과 빈곤에 빠진 공동체. 나누어 가질 자원이 적고, 자원의 배분을 감시할 공권력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는 더욱 양극화된다. 자원을 차지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그 사회에서 신분 없는 외국인과 어린아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 가장 바깥에 위치하게 된다.

자인은 ‘신분 없는 어린아이’로, 양쪽 모두에 속해 있다.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기에, 병원에도 갈 수 없다. 자인의 부모가 레바논 사람이더라도 그렇다. 영화에서는 분명히 나오지 않지만, 자인의 부모 역시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자인의 부모를 비판하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과 무지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한, 사회에 대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다. “그 애도 나처럼 될 거예요.” 하는 자인의 한 마디가 슬프게 들리는 이유이다. 사회적 자원이 없을수록 빈곤은 대를 이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어린 심장을, 칼날처럼 날카로운 슬픔으로 찌른 것은 누구일까. 레바논 곳곳에 수많은 아이들을 떠돌게 만든 것은. 종교란 이름 아래 싸우고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한 지원을 줄어들게 만든 것은. 허울뿐인 도움의 말만 외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인이 고발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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