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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지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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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5. 2024

0219-0225 편지 주기(週記)



지난주의 나에게.


일정이 참 버라이어티하게 꼬인 한 주였습니다. 일정도 꼬이고 컴퓨터도 터졌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켰는데 블루스크린이 뽝. 당황하진 않았습니다. 팬의 먼지를 닦지 않은지 반년쯤 지났거든요. 고장의 이유가 너무 명확했지요.


밤 열 시에 컴퓨터 본체를 분해해서 팬의 먼지를 닦다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뭐든 너무 자신하면 안 되겠다고. 컴퓨터가 석 달쯤은 더 버틸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 보통 그랬으니깐요.


보통. 이 단어는 가끔 함정이 됩니다.

이제까지 보통 하루에 5시간 정도를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멀쩡했거든요. 숏 슬리퍼인가 보다 싶었죠. 어쨌든 할 일은 많았고 시간은 부족했기에 썩 괜찮은 체질이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웬 걸요. 한 달 전부터 집에 돌아와서 씻자마자 딥슬립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녁 열한 시를 넘기면 몸과 뇌가 동시에 "이 이상은 무리.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할 테니 자거라."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몸과 뇌 어느 한쪽이라도 버티면 모를까, 양쪽이 모두 요구하는데 따르지 않을 수가 없으니깐요.


그래서 팬의 먼지를 닦는 내내, 졸린 눈을 비비며 결심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무엇도 자신하지 말자고. 보통의 함정에 걸리지 말자고. 망가지고 넘어져도 버틸 수 있는 여유를 한 켠에 쌓아 두자고.


컴퓨터는 회생했습니다. 하지만 노트북을 사고 싶네요. 한번 더 블루스크린이 뜨면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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