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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y 22. 2024

당신의 선재를 위하여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종영까지 못 기다리고 쓰는 글  




‘선재 업고 튀어..?'

무슨 희한한 드라마 제목이 다 있네 생각했지만 내가 무한신뢰하는 유튜버 찰스님의 추천이라 눈 딱 감고 1-2화까지 도전해 봐야지 했던 4월 초 어느 날, 나는 그렇게 선업튀에 갇혀서 수범이가 되고 마는데..

(드라마의 두 주인공 이름이 임솔+류선재라 솔선커플이라고 부르는데 '솔선수범'이라는 단어에서 '수범'을 떼서 '선재 업고 튀어' 팬들을 일컫는 말이다.)


만약, 당신의 최애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순간, 자신을 살게 해 줬던 유명 아티스트 '류선재'. 그의 죽음으로 절망했던 열성팬 '임솔'이 최애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2008년으로 돌아간다! 다시 살게 된 열아홉, 목표는 최애 류선재를 지키는 것.


사실 나는 덕질을 해본 적이 없고 심지어 학창 시절에도 그 흔한 아이돌도 한 번 안 좋아했던 사람인지라 이 드라마의 기획 자체가 별로 흥미롭진 않았다. 하지만 첫 화에서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솔이가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고, 그렇게 되기까지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 준 존재가 선재라는 것이 이 드라마를 충분히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 같아도 나를 살게 해 준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으니까. 이렇게 대전제가 마음을 열게 하니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좋게만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모두가 왜 이렇게 선업튀를 좋아하는지 또 나는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한번 꼽아보려고 한다.


1. 2008년

극 중에서 솔이와 선재는 90년생으로 나오는데 나는 88년생으로 그들과 또래다. 그러니까 솔이가 열아홉으로 돌아간 2008년이 나에게도 스무 살 무렵, 그즈음으로 비슷한 세대를 비슷하게 살아온 셈이라 마치 나도 함께 타임슬립을 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까 응답하라 1997, 1994, 1998이 나왔을 때 그 시기에 대학생이었던 세대에게 더 큰 공감을 일으킨 것처럼 나에게는 선업튀가 응답하라 2008 그 자체였던 것. 싸이월드, 일촌신청, MP3 아이리버, 스티커 사진, 비디오대여점, 캔모아, 고아라폰 등등-  모두 현실고증이 잘 되어있어서 마치 내 이야기처럼 몰입하기가 쉬웠던 것 같다. 그리고 2008년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연애하고 이별하고 또 연애를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2008년 배경의 연애 드라마를 아니 볼 수가 없었다는 것. 아마 내 또래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   



2. OST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수범이가 되기엔 부족했던 내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OST다. 솔이가 버스에서 못 내리자 버스를 따라잡으려고 전속력으로 뛰는 선재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깔리는 러브홀릭의 러브홀릭. 비가 쏟아지던 날 선재에게 노란 우산을 씌어주는 솔이와 그런 솔이에게 첫눈에 반한 선재의 모습 위로 깔리는 김형중의 그랬나봐. 2023년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했던 최애가 2008년에서는 빛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솔이와 그런 솔이를 보고 우산을 씌어주는 선재. 이 그림같은 장면에서 깔리는 음악은 윤하의 우산. 대부분 명장면으로 파란 대문 앞 노란 우산씬을 꼽지만 나의 최애는 이 씬이다. 왜냐면 이때 깔리는 윤하의 노래가사가 솔이와 선재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대는 내 머리 위의 우산.

어깨 위의 차가운 비 내리는 밤.

내 곁에 그대가 습관이 돼버린 나.

난 그대 없이는 안 돼요.


그 시절 그 노래 유행가야 말로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그때 그 시절로 사람을 되돌려놓는 강제 타임슬립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타임슬립 드라마에서 이렇게 시의적절한 OST를 선정했다는 건 엄청난 필승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새로 만들어진 OST도 너무 좋다. 소나기, 꿈결 같아서, 봄눈, STAR 다 좋아.  



2. 19, 20, 35

보통 타임슬립이라고 하면 보통 타임슬립하기 전과 후의 시기만 나오게 되는데, 선업튀에서는 서른다섯의 솔과 선재 그리고 교복을 입은 열아홉의 솔과 선재, 그리고 대학 새내기 신입생인 솔과 선재가 모두 등장한다. 그걸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심지어 타임슬립할 때마다 선재의 미래는 조금씩 달라져 있어서 다양한 매력을 뽐내기에 너무나 좋은 설정! 그래서 선재 인기가 더더더 많아진 거 아닐까.  

 


3. 완벽한 팀프로젝트

나도 아줌마인지라 선재가 참 좋지만 사실 내가 이 드라마를 사랑하게 된 계기는 솔이 역할의 혜윤배우님 덕분이었다.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오죽하면 사람들이 연기 차력쇼라고 했을까. 대사 전달력도 너무 좋고 특유의 오글거릴 수 있는 청춘물의 설정이나 대사를, 마치 정말 솔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해 줘서 함께 솔이의 감정에 이입이 되고 함께 선재를 사랑하게 되고 함께 웃고 울게 된 것 같다. 진짜 신기한 연기의 세계! 그리고 선재는 말해 뭐 해. 내 생각에 드라마의 캐릭터는 실제로 그 사람이 그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이 있을 때 더 그 매력이 짙어진다고 생각하는데 변우석 배우에게 류선재라는 캐릭터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실제 배우와 캐릭터가 싱크로율이 비슷한 느낌. 아무튼 김혜윤이 아닌 솔이, 변우석이 아닌 선재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방증 아닐까. 그리고 이미 십여 년 전에 졸업한 연애세포를 불러내는 섬세한 연출과, 없던 첫사랑도 생각나게 만드는 작가님의 대본이 그 방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첫사랑은 정말 지겨워질 수가 없는 소재인가 보다.



5. 명대사

"고마워요, 살아있어 줘서. 이렇게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고마워할 거예요.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니깐 오늘은 살아봐요. 날이 너무 좋으니깐, 내일은 비가 온대요. 그럼 그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또 살아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사는 게 괜찮아질지도 모르잖아요."

선업튀의 대표 명대사. 이 대사도 너무 좋지만 내가 젤 좋아하는 대사는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있는 현주와 현주를 만나러 온 솔이의 대화이다.


솔: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오빠랑 결혼 안 할 거야?

현주: 만약 결혼 안 하면 내 운명이 바뀌나?

솔: 그렇겠지?

현주: 그래 운명이 바꿨다 치자. 근데 바뀐 삶이 더 낫다고 어떻게 확신해? 당장 오늘은 행복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내일은? 갑자기 온갖 나쁜 일이 터질 줄 누가 알아? 어차피 당장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살아보기 전엔 모르는 거야.


요즘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있는 말이라 공감도 위로도 많이 됐다. (드라마의 소개글처럼)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만약'이라는 가정을 덧붙인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만약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때가 우리의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나도 엄마를 떠나보낸 경험 이후 늘 '만약'이라는 가정을 안고 살았었고 그래서 항상 나에게 '만약'이라는 단어는 아프고 슬픈 단어였다. 하지만 이 드마라에서의 '만약'은 특별한 기회였기 때문에 더욱 솔이를 응원하고 그 '만약' 속에서 기적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에서 이미 지나가 결정되어 버린 운명은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걸. 그러니 지금 평범하게 살아가는 오늘, 이 순간을 운명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차피 당장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살아보기 전엔 모르는 거니까. 그래도 선재를 사랑하는 솔이의 마음이 솔이를 사랑하는 선재의 마음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운명을 거슬러 모두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선재 업고 튀어는 현실이 아닌 드라마니까. 그게 우리가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선재가 있었거나 있거나 있을 것이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말이다. 그런 사랑이면 사실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갑자기 용기가 난다. 오늘도 나는 나의 선재를 위해 오늘이라는 운명의 순간을 힘껏 즐겨보려 한다. 단체관람 티켓팅에 실패했고 선재 업고 튀어 팝업스토어에 갈 여유도 없지만 그래도 행복해!

<선재 업고 튀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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