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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 Jun 12. 2021

다시, 병원으로

치료를 원하진 않았지만

 2018년 교통사고 이후 적응장애와 불안장애, 우울증 등의 소견을 받고 난 뒤 아침마다 출근할 때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들었다. 그 전에도 지각을 가끔 하긴 했지만 사고 이후엔 옷을 입고도 현관을 나서지 못하거나 겨우 차에 타고서도 시동을 걸지 못해 추운 겨울 차 안에 앉아 핸들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내게 경비원 아저씨께서 한 달음에 달려와 창문을 세게 두드리시곤 무슨 일이 있냐며 물으셨는데 아주 큰 비명을 지르고 구토감이 생겨 도로 집으로 갔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병원을 다니며 약 2개월 정도의 치료를 받으며 집에서 쉬게 되니 발작이라던가 엄청난 몸짓의 잠꼬대를 한다거나 악몽을 꾼다거나 등의 일이 점점 줄었다. 그게 약물치료와 병행되는 상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감기나 몸살 같은 거랬어. 몇 개월 쉬면 낫겠지. 그동안 일을 너무 힘들게 한 탓일 테니.' 하며 자연스레 병원을 향했던 발걸음을 끊었다.


  나아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가면서.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가족 외엔 전화조차도 받지도 못하면서.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다. 독립하려 모아둔 돈은 야금야금
배달음식을 먹으며 불필요한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결국 나는 내 방 작은 텐트 안에서 거의 움직이지도 씻지도 생각도 잘 안 하는 단지 '히키코모리'라 칭해도 이상하지않은 되어있었음에도 인지하지 못했다. 온 집은 내가 정리하지 않은 짐들로 어질러져있었지만 가족들도 존중과 나아질 것이라 믿음이란 희망의 이름으로 반쯤 포기한 듯했다.



 가족이 아무도 없던 어느 날, 평소에 한 번도 버린 적 없던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짜증이 났다. 답답함에 나가보고 싶기도 해서 새벽 1시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부터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수거함의 뚜껑을 열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미션을 마치고 혼자 돌아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혼자 무언가 성공했다는 같잖은 성취감에 빠졌다. 그 이후에도 사람이 없는 단지 내에 분리수거, 집 앞 빨래방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 후 아무도 없을 때 건조기를 사용하고 오는 것, 강아지와 단지 내의 짧은 산책 등에 대한 쾌감은 내가 낫고 있는 증거라 믿었다.

고작 반경 50미터도 안되는 우물 안의 개구리인 줄도 모르고.




 일러스트레이터인 친구가 카페에서 팝업 전시를 한다기에 '고교동창인 오랜 친구들과 만나 전시도 보고 물건도 팔아줘야지.' 아주 오랜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정도쯤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운전을 하면서도 8월 말의 바깥 풍경은 더웠지만 날씨가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아졌으니까 앞서 말한 것들도 해냈으니까.


산산이 부서졌다.

그동안 내가 굉장히 큰 착각과 자만에 빠져있었음을 알아챈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났지만 친구들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친구의 전시도 제대로 봤을 리 만무했다. 아주 큰 카페여서 공간이 넓고 사람이 많거나 밀집되어 있지도 않은 공간임에도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기도 하고 목소리가 울린다거나 했다. 나는 혼자 붕 뜨기 시작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머리에서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했으며 갑자기 눈물이 툭툭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시하던 친구 및 일행들의 당황을 뒤로한 채 한 친구와 밖에 나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와 나를 보니 어깨를 넘긴 적이 없던 머리카락은 대충 묶여 질질 흘러있다. 살은 30kg 가까이 불어 맞는 옷이 없었다. 깨끗했던 피부가 음식 알러지 여드름으로 엉망진창이 되었고 어느새 내가 그렇게 지낸 날이 하루 이틀 모여 3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루 종일 멍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혼자 울었던 날은 또 왜 그렇게 많았던지. 여전히 전화통화도 못하는 주제에 옛 생각에 매달려 금방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거라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던 태도가 나를 비웃는 듯했다.



다시 열심히 치료를 시작해서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려서 절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돌아본 나의 삶에 '나'라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도 고단했던 것들만이 떠올랐다. 삶에 대한 미련이라던가 존재해야 할 이유 따위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유일한 식구인 반려견이 눈에 밟히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다음 주에 병원을 찾았다. 앞의 글에서 말했 듯 아주 깨끗한 나만의 마무리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계획 중엔 '약'이라는 것이 필요했으므로. 그렇게 나는 2년 만에 나의 주치의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로의 목적이 다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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