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걷고 있는 당신을 보면서,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당신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은 어딜 가고 있는 걸까?, 저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을까?, 저 사람은 왜 내가 아니고 저 사람일까? 저 사람에게 나는 내가 아니고 저 사람의 '나'이겠지.... 나는 왜 당신이 아니고 나일까? 너는 왜 내가 아니고 너일까?'
한때, '존재'라는 단어만 떠 올려도 가슴이 설렌 적이 있었다.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철저히 타인으로 느껴지며 절대적인 고독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나란 존재란 무엇인가, 너란 존재는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의 부존재를 참을 수 있는가?..... 끝없는 질문들과 사유가 이어졌다.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문득,
길을 걷다가, 지하철에 마주 앉은 사람을 보다가,
나는 나에게 나이듯이 너는 너에게 '나'일 텐데, 신은 어쩌자고 이렇게 수많은 '나'를 만들었을까.
그래놓고 신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39절)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들은,
내가 또 다른 '나'를 죽이고 억압한다.
<존재와 시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와 같은 책을 읽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예전에, '존재'라는 단어만 들어도 왜 가슴이 뛰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때 나란 존재와 지금의 나란 존재는 같은 존재일까? 1살 때의 나와 80세의 나(그때까지 살아 있다면)는 같은 나인가? 하물며 내가 태어나기 전의 나와 내가 죽은 후의 나는 같은 존재인가? 너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