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6인실을 고집했을까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by 하루Haru

돈이 없어서 느끼는 불편함 보다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돈 때문이었나'하는 생각이 들면 나는 초라해지는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다. 결혼 전에는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적당히 여유 있는 부모님과 내가 쓸 돈만 벌면 되는 상황이라 돈이 어떤 결정과 생각을 하는데 특별한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다. 소비 욕구가 그리 높지 않은 탓에 그냥 내 인생은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질 줄 알았다. 결혼을 하고 직면한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내가 온실 속에서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경험치도 없는 화초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은 나의 많은 부분을 변하게 했고, 돈 없는 불편함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었다. 처음에는 남을 원망했지만, 나 역시 선택과 방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익숙해져 갔다.


엄마가 죽기 전 한 달 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으로 할 때는 마지막이 될 거라 전혀 예상을 못했지만, 어느 순간 직감하지 않았을까. 입원 첫날부터 엄마의 금식이 시작되었고 죽는 순간까지 25일을 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마실 수도 없었다. 6인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선택이고, 며칠이나 있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덜컥 1인실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특별할 것 없이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 1인실은 특별한 사람들이 가는 공간이었나 보다. 익숙한 단어는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환자들의 식사 시간의 음식 냄새와 어수선함, 누운 채로 15번의 관장을 할 때 커튼 너머의 사람들을 신경 쓰는 엄마, 밤마다 심해지는 고통에 진통제를 위해 서너 번 간호사를 호출해야 하는 상황... 엉망이었다. 엄마는 괜찮았을까. 나는 어느 순간 1인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누워있는 엄마 입장에서는 알 수도 없는데, 내 편의를 위해서 가고 싶다고 들릴까 봐 아빠에게 먼저 말할 수는 없었지만 옮기고 싶었다. 솔직히 나도 편안한 잠자리가 간절했다. 어떤 날은 힘이 들어 혼자 훌쩍이기도, 상황을 참아 내느라 어금니를 깨물기도 했다.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먼저 말을 꺼내 주지 않은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충분히 여유가 있으면서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는, 뒤늦은 아빠의 후회에 화가 났다. 다른 사람들을 아무리 원망해 봐도, 결국 화살의 끝은 나를 가리켰다. 내가 가진 돈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옮겼을 거라는 생각에, 빈곤한 나의 초라함에 짜증이 났다. 암 진단비로 받은 삼천만 원을 내가 보관하고 있음에도 그 돈으로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지도 못한 내가 원망스럽다.


결국은 돈의 유무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였음 알기에, 엄마가 힘들게 보낸 마지막 시간에 대한 나의 죄책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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