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는 개봉하지 않은 의료용 에어매트가 있다. 욕창 방지를 위해 침대에 깔아주는 용도의 저 물건은 주인이 없는 탓에 그 쓰임은 관상용이 될 것 같다.
복막암의 전이로 장맛비가 시작되어 물 한 모금 편히 넘길 수 없게 된 엄마는, 무서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항암제 투여를 위해 체중 유지를 위해 그렇게 노력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엄마의 모습은 변해갔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근력과 의지가 있을 때는 병원 담요를 더 갖다가 2-3장을 덧대여 깔았다, 이불을 말아서 등을 고이기도, 다리 사이에 끼우기도 하면서 자세를 바꿔가며 누워있었다. 밤이면 심해지는 통증 탓인지, 자리의 불편함 때문인지 뒤척임이 더 심했고 밤은 더 힘들어져 갔다. 잠이라도 푹 자면 좋으련만, 원래도 수면 시간이 짧고 소리에 예민한 엄마의 병원 생활은... 모든 시간을 누워 있어야 하는 엄마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고단한 모습으로 곁을 지키는 딸에게 힘들다는 말 한 한마디 못하고 견디다 못해 자세를 바꾸기 위한 뒤척거림이 엄마의 아프다는-힘들다는 표현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불을 베개를 이리저리 옮겨주면서 안타까워하는 것 밖에 나는 할 수 없었을까.
병원에서 더 치료할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엄마는 편하게, 통증 없이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의사의 그 말을 듣기 전에는 이 상황을 호전시킬 만한 티끌만 한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편안함보다는 힘들어도 좀 참아내자고 격려하고 채근하는 것에만 집중한 내가, 엄마에게 제일 가혹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에서 둘이서 하는 병원 생활. 조금만 힘을 내서 걸어서 퇴원시키고 싶었다. 치료는 할 것이 없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을 한 달 아니 2주라도 가족들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내 강박증 여태껏 엄마를 힘들게 했구나. 엄마는 이미 그 경계를 넘어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몸 상태가 되었는데도,,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을 쉼 없이 귓가에 소곤거리고 있었구나. 표현조차 할 수 없는 미안함이 절망감이 나를 괴롭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저 매트를 구입했다. 3주 동안 엄마의 뒤척거림을 보면서도, 날개뼈나 엉치뼈가 배겨서 바로 누워 있기가 힘들다는 엄마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떠오르지 않던 저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왜 그제야 떠올랐던 걸까.
나는 유난히 물건을 구입하는데 주저한다. 결정을 잘 못하는 것인지, 남들에게 밝히지 못하는 내 주머니 사정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나를 싫어하면서도, 이번에도 또 내 발목을 잡았다.
결국은 사용하지도 못했다.
3일 밤을 더 보내고, 엄마는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