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들을 위한 영어 교육의 역사
자녀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이나 유학을 계획하는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일 것이다. 특히, 영어를 잘 못해서 학교에서 벙어리처럼 있다가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을 듯하다.
나도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영어가 서툴러 많이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따라 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해도 알아듣는 사람들도 없어 중,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가 아무 소용이 없나 싶어 좌절하기도 했다. 특히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빨리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걱정이 더 클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렇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을 EAL (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학습자라고 부른다. 오늘은 영국에서 EAL 학습자들을 위한 교육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간단히 알아보려고 한다.
영국의 EAL 교육은 역사적인 배경과 맞물려 시작되었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력 부족으로 영국을 재건하려는 과정에서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지역의 사람들이 1940년대 영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를 '윈드러시 세대 (Windrush Generation)'라고 한다. 이들이 타고 온 배 중 하나의 이름이 HMT 엠파이어 윈드러시였기 때문이다. 이주민 자녀들이 영국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해졌다. 처음에는 체계적인 시스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다가 6, 70년대부터 조금씩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80년대에는 EAL 학습자를 위한 단체도 생겨나면서 EAL 교육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1988년에 영국에 국가 교육과정 (National Curriculum)이 도입되면서 EAL 학생들을 위한 지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EAL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는 펀딩이 마련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여러 상황으로 인해 현재 이 펀딩이 거의 사라지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여전히 국가 교육과정에는 EAL 학생들이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구체적인 내용도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EAL 지원은 특수 교육(SEND, Special Educational Needs and Disabilities) 지원 체계로 편입되면서 공립학교에서의 EAL 지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물론 학교나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원 수준에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EAL 학생들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EAL 관련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EAL 학습자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EAL 수업의 변화는 아래와 같다.
결함 (deficit) 모델에서 자산 기반 (asset based) 모델로의 전환은 EAL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변화였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EAL 학습자들의 모국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영어 사용만을 강조했지만, 현재는 학습자들이 지닌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배경을 자산으로 활용하여 학습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어 쓰지 말고 영어만 써'라고 했던 방식에서 이제는 모국어를 잘하면 영어도 잘한다는 식으로 바뀌었고 본인의 문화적 자산 역시 자신감을 높여주기 때문에 이 또한 장려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다중 언어 (multilingual) 접근 또한 EAL 교육의 중요한 특징이다.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모국어를 유지하면서 영어를 학습하는 것이 학습자들의 학업 성취도와 자존감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혀져 많은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모국어를 존중해 주며 번역기를 활용하거나 모국어 사용을 장려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전에는 언어 습득(language acquisition)에만 초점을 맞추어 영어 학원 등 외부에서 별도의 영어 교육을 받도록 했지만, 요즘에는 학업 내용(academic content)과 언어 능력을 동시에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과거에는 EAL 학생들이 일반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영어 학습을 위해 수업 중에 따로 분리하여 학원이나 별도의 공간에서 영어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EAL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면서 학업 내용을 배우는 동시에 영어 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수업 시간에는 교사가 EAL 학생들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을 제공하거나, 수업 후나 쉬는 시간에 영어 학습을 위한 보충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변화는 EAL 학생들이 일반 교육 과정에 더 잘 적응하고,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공립학교의 EAL 지원 부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영국이 다문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립학교에서는 EAL 학생들에게 필요한 전문적인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EAL 관련 펀딩이 부족하여 전담 부서가 없고, 보조 교사 선생님이 시간을 내어 간단히 도와주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이미 만들어진 자료들을 사용해서 EAL 학습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colourful semantics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 방법은 원래 언어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위한 치료 방법으로 개발되었지만, EAL 학생들의 문장 구조 이해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널리 사용되고 있다.
컬러풀 세맨틱스는 문장의 각 요소(주어, 동사, 목적어 등)를 색깔로 구분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주어는 주황색, 동사는 노란색으로 표시하는 식이다. 아이들은 색깔별로 단어 카드를 맞춰 문장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문장 구조를 익힐 수 있다. 인터넷에서 'colourful semantics'를 검색하면 다양한 자료를 찾을 수 있으니, 집에서도 활용해 볼 수 있다.
영국의 EAL 교육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The Bell Foundation이나 NALDIC(National Association for Language Development in the Curriculum) 같은 기관의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세요. 이곳에서 최신 EAL 교육 트렌드와 학생들을 지원하는 방법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와 함께 영국 이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Coming to England'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이 책은 영국으로 이민 온 Windrush 세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아이들이 공감하고 더 쉽게 영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저자인 Floella Benjamin은 실제로 영국으로 이민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유튜브에서 이 책을 읽어주는 영상도 있으니, 아이와 함께 들어 보는 것도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