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밑에서 치열하게
어린 시절 나는 엄마를 하늘처럼 여기며 사랑을 애타게 바랐지만, 엄마는 늘 바쁘셔서 나에게 충분한 관심을 줄 수 없었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엄마는 남존여비 사상 속에서 자랐기에 아빠를 하늘처럼 모시고, 아들인 동생을 더 소중히 여기셨다.
식사 때도 아빠나 동생과 함께할 때만 고기반찬이 있었고, 우리끼리 먹을 때는 항상 김치와 나물뿐이었다. 엄마는 가끔 동생을 위해 소시지 같은 간식을 숨겨두셨는데, 나는 집에 돌아와 그 음식을 찾아 먹고는 혼나곤 했다. 엄마는 세 남매를 동일하게 사랑한다고 하셨지만, 무의식 중에 아들에게 더 많이 주셨다. 나는 한 번도 브랜드 운동화를 신어보지 못했지만, 동생은 백화점에서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운동화를 신었고, 옷도 백화점에서 구입한 것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엄마와 이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엄마는 동생에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고, 좋은 것 하나 못 입혔다고 펄쩍 뛰셨다. 부모는 자식에게 해주지 못한 것만 기억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숫자에 빠르고 재정 관리에도 능하셨다. 아빠가 건축업을 할 때, 엄마는 경리처럼 모든 재정 관리를 도맡으셨다. 주인들에게 돈을 못 받을 때도 엄마는 조용히 연락하여 받아내셨고, 자재값이나 인부들의 월급도 빚을 내서라도 맞추셨다. 때로는 빚쟁이처럼 집으로 전화가 오고 찾아오는 일도 있었고, 그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아빠는 그런 상황에서 전화받지 말라고 하거나 우리 보고 전화받고 아빠 없다고 하라고 했다. 나는 그런 아빠가 무능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기억 속 엄마는 단 한 번도 아빠를 비난하지 않았다. 늘 아빠같이 성실한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시며 그를 지지하셨다. 가끔 아빠가 불같이 화내며 상을 엎으셔도 묵묵히 반찬들을 치우고 다시 상을 차리곤 했다.
엄마는 유복자로 태어나 아빠의 얼굴을 모른 채 자랐고, 외할머니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고생하셨다. 엄마는 1남 3녀의 막내로 오빠네 얹혀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으며, 키 크고 언변이 좋은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아빠의 강한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헌신이 엄마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엄마는 시댁과의 갈등이나 아빠와의 힘든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셨다. 동생이 죽었을 때도, 언니가 뇌종양으로 쓰러져 병원에 누워 있어도 엄마는 고고한 백조처럼 "괜찮다"라고 "사는 게 다 그렇지"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물속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버티고 있는지 알고 있다. 엄마는 늘 "때깔 고운 거지가 얻어먹는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아마 어린 시절 눈칫밥을 먹으며 자신이 남들보다 부족하면 무시당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엄마가 교회 새벽 예배 끝나고 나오시다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는데,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기가 싫어 한 시간 동안 교회 지하 주차장 바닥에 누워 계셨다고 한다. 아빠는 파킨슨 병으로 움직일 수 없고, 동생은 죽고 없고, 나는 영국에, 언니는 병원에 있으니 엄마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결국 한 시간 지나 올케에게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셨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남들 입방아에 오르기 싫어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놀라웠다. 물론 엄마는 엄마가 다친 것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엄마여서 젊은 시절 아빠의 폭언과 폭력도 참고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
잠언 31장 28절~29절
엄마는 다리가 아파 절뚝이시고, 이제 여든이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바쁘게 사신다. 매일 교회에 가고, 교회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일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신다. 교회와 신앙생활이 엄마에게는 숨구멍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엄마의 변함없는 믿음 덕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하나님을 영접하셨고, 이제는 아빠도 세례를 받고 매일 엄마와 함께 하루에 3, 4번씩 가정 예배를 드린다. 나는 어릴 때 아빠 같은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50년 넘게 아빠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셨다. 이 하나만으로도 엄마는 내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다.
내가 가끔 한국에 가면 엄마는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하고는 이거 먹어봐, 저거 먹어봐 하면서 주곤 하신다. 어렸을 때 그렇게 받고 싶었던 관심을 받으면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이제는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다. 아무것도 안 해주셔도 괜찮으니 그냥 쉬셨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여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신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걷다가 동네에서 우연히 엄마를 만난 적이 있었다. 엄마가 교회 아는 분 이사 돕느라 옷도, 머리도 엉망이었는데, 나는 엄마를 보고 손을 흔들려던 찰나, 엄마는 나를 보고는 다른 좁은 골목으로 피하셨다. 혹시라도 헝클어진 모습 때문에 내가 부끄러워할까 봐 피하신 것이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엄마가 후줄근해 보여도, 옷을 잘 차려입고 있어도 내게는 늘 똑같은 엄마고, 사랑하는 엄마다. 남들에게 얕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엄마, 그래서 남들에게 힘든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 엄마.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가 원하는 우아한 백조로 살다 가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