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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Mar 24. 2022

게으름에 대한 변명

런던의 봄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늘,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무언가가 차고 넘쳐서,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의 생각은 아니고 어디선가 그 비슷한 글을 보고는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내 생각으로 받아들인 것 같은데, 요즈음처럼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존중이 중요한 때 참 부적절하게도 디테일한 출처와 원본 문구는 다 잊어버리고 저런 메시지 하나만이 내 안에 남아 있다.

 

심지어 저런 생각은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조차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늘 보고서 작성을 시작하는 착수 시점이 늦은 편이었다. 다만 (오해를 예방하기 위해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제출 기한을 못 맞추는 일은 없었다. 사회생활 초에 선배로부터 들은 ‘퀄리티는 자존심, 납기는 생명’이라는 말이 프로페셔널의 멋진 자세 같아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업무가 주어지면 일단 제출기한을 확인했다. 3시간짜리, 하루짜리, 일주일짜리, 한달짜리 등 과제의 무게와 시급성에 따라 기한은 다양했다. 대체로 나는 거의 대부분 과제에서 약속된 기한 중 반 이상이 다 지나도록 한 글자도 채워 넣지 못했다. 놀고 있는 것은 아닌데 남들 보기에는 노는 것 같아 보였을 것이다.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소소한 (심지어 개인적인) 딴 일들을 하면서, 때때로 뉴스나 책으로 관련된 내용을 좀 찾아보거나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고, 끄적끄적 낙서나 그림을 그리거나 했다. 계속 딴짓을 하고 있지만 머리 한구석에는 계속 과제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의식 차원이 아닌 상태에서 뇌를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계속 가동시키는 상태인 것 같다.

그러다 제출 기한이 턱밑에 차오르면 미친 듯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들 중 쓸만한 내용들을 쏟아내듯 타이핑한 다음, 주된 줄기들을 건져 올리고 구조를 맞춰 배열한 다음 쏟아냈던 세부내용을 적당히 편집해서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다.


내가 해야 할 과제들은 부서의 특성상 딱 떨어지는 답이나 명확하게 설정된 규격이 없는 보고서 작성이 많았다. 아니, 사실은 내가 ‘할 일이 뚜렷하고 프레임이 명확한’ 업무를 못 견뎌했으므로 점차 그런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 더 맞는 설명일 것이다.

내 안의 허영심은 그걸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업무를 좋아했다’라고 말하겠지만 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규격과 틀을 못 견뎌했던 것이었다. 비록 수증기 분자처럼 마음대로 유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은 못 가졌지만 앞, 뒤, 옆 빽빽하게 방향까지 지정되어 바르르 떨기만 하는 얼음 속 물 분자여야 하는 것은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예측 가능한 중력의 영향력 아래에서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는 여기저기 탐색해 볼 수 있기를 바랐고 필요하면 그릇의 모양을 바꾸는 정도의 자유도는 있기를 바랐다. 흐르는 물 정도가 되고 싶었다.

(미칠 것 같았다, 라는 표현은 유치한 드라마 퀸 같은 느낌이라 쓰기 민망하지만 20대 때에는 실제로 그런 비장함과 극단성이 있었다.)




맥락 없는 자기 고백은 사실 긴 변명에 다름 아니다. 꾸준히 글을 올리겠다고 생각했지만 보고서처럼 제출시한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보니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오늘 브런치로부터 ‘꾸준한 글쓰기’를 독려하는 푸시 알람을 받고 보니 어떤 변명이라도 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간 한두 달, 영국에서 이곳의 시스템과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들을 쓰다 보니 ‘언제 무슨 상황에서 한국과 다른 차이점이 느껴졌다’가 ‘무엇이 이런 차이를 유발했나?’라는 질문으로 넘어가더니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들은 무엇이며, 변하지 않는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심오한(?) 주제로 넘어갔다.

이런저런 구글링을 하다 보니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겼다. 영국에서의 두어 달, 종이 책이 아니면 싫다는 20세기인이면서 영어 원서는 못 읽는 토종 한국인인지라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전자책 계정을 활성화하고 결제해서 몇 가지 책들을 읽었다.


개미를 연구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라는 책을 열심히 탐독했고 유럽 문화와 언어에 능한 조승연 작가의 ‘플루언트’라는 책도 흥미롭게 읽었다. 예전에 보다가 너무 계통이 없다고 생각했던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도 다시 보고 있다. 몇 번 추천받은 적이 있었으나 관심이 가지 않았던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도 읽고 싶어져 한국에서부터 주문해 두었고, 에드워드 윌슨이 퓰리처상을 받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도 주문해 두었다. (이상하게 이 두 책은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 지금 영국은 봄이 한창이다.

어둡고 흐리고 습한 겨울을 지나 햇살이 가득한 영국의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에게 지금은 봄을 만끽하고 산책을 하고, 잔디에 머플러를 깔고 앉아 책을 보고, 그림을 끼적거리고, 밤에는 넷플릭스를 보고, 카페에서 멍하게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깨달으며 뭔가를 메모하는 시기이다.

위대한 학자들과 작가의 책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하고 배우고 내 생각을 수정하고 있지만 아직 건져 올릴 만한 생각,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키는 글쓰기를 매일매일 달리기를 하듯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치열함과 절실함과 성실함은 내 깜냥에 흉내조차 낼 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아직 내가 깨닫지 못한 지혜, 배우지 못한 지식, 경험하지 못한 멋진 것이 너무 많은 것일지도 모르지. 지금 같은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여기는 어린아이처럼, 그저 이 시기를 즐기다 보면 조만간 다시 물이 흐르듯 소박한 나의 깨달음들이 흘러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 마지막으로 변명 한 번 더.

딱히 대단한 곳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동네에서 마주하는 런던의 봄 풍경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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