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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Mar 25. 2022

우아하고 위선적인 영국인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아주 적극적으로


영국에서 생활하며 조금 더 가까이에서 약간 더 깊이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니 이들에게는 멋진 부분, 본받을 만한 점도 많지만 결코 좋게 볼 수 없는 씁쓸한 특징들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니 그런 특성들이 섬나라라는 특징, 그리고 식민지를 거느렸던 제국 출신이기 때문에 갖는 부분들이다.


영국이라는 국가, 그리고 대체적인 영국인들의 성격 밑바탕에는 이기적인 아이 같은 얄미운 부분이 있다. 이들은 멋지고 좋은 것만 취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부분에서는 살짝 빠져나간다. 지저분한 뒤처리를 해야 할 때는 이미 행방을 알 수 없다. 분명히 누군가는 이런 지루한 부분도 견뎌야 하고, 더러운 오물을 손에 묻혀 가며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멋지고 좋은 부분은 반드시 내 것이어야 한다는 특권의식이 있다.


섬나라인 영국 사람들은 ‘베이스캠프’와 ‘탐험지’를 물리적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브리튼 섬 안에서도 북부 스코틀랜드와 서쪽 웨일스 지방은 ‘UK’ 한 통으로 묶이는 데 대해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브리튼 섬의 입구에 위치한 잉글랜드는 예로부터 ‘좋은 것은 모두 들여오고, 더럽고 귀찮은 것은 모두 섬 밖으로 몰아내는’ 방식으로 살았다.



먼저, 귀중한 것은 모두 우리 섬 안에 다 갖다 놓으려 했던 역사를 보자.

영국인들은 전 세계를 돌며 가장 멋지고 훌륭하고 이국적인 보물들은 모두 잉글랜드로 빼앗아 오거나 사들여 왔다. 대항해시대, 르네상스부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인 보물 수집은 유럽 왕실과 귀족들의 경쟁적인 취미였다. Cabinet of Curiosities, 즉 ‘호기심의 방’이라고 불리는 사적인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16세기 유럽 전체를 관통하는 취미였다. 자연과학, 예술품, 이국적인 유물과 생물 표본 등 광범위한 컬렉션은 수집가의 안목과 재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수준을 과시하는 전리품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수집품들은 시대와 장소에 따른 분류체계를 정교화하면서 현대적 개념의 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구글에서 찾은 'Cabinet of curiosities'의 이미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귀중한 소장품이 많은 박물관은 단연 프랑스의 루브르 그리고 영국의 브리티시 뮤지엄일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예술이 꽃피고 전 세계로 항해를 시작했던 그 시기 최고 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네덜란드나 독일에서도 유력 가문의 컬렉션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지만 국가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규모 면에서 프랑스와 영국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추측으로 이 두 나라 중에서도 대중에 공개된 컬렉션 외에 Private collection까지 합치면 프랑스보다 영국이 훨씬 더 우위에 있지 않을까 싶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일찌감치 왕족과 귀족들의 수집품이 혁명세력에 몰수당해 대중에 공개되는 굴욕(?)을 겪었지만, 영국은 한 번도 폭력적인 방식으로 소장품을 몰수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자의로 기부하거나 대중에 공개한 소장품만으로도 유수의 박물관 운영이 가능하다.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영국에서는 정말 수많은 인류사의 보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 이집트의 보물들은 모두 영국에 있다. 현지에 남아 있는 것은 유적 터와 도저히 옮길 수 없는 뼈대 정도라고 한다. 뿐만 아니다. 중동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 페르시아나 오스만 제국의 유물들도 풍부하다.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기록들과 서양 문화의 근간이 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을 모조리 섬 내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볼 수 없는 사적인 소장품도 많을 것이다. 영국에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워진 과거 귀족들의 저택과 영지를 공공 기금이 사들여 보존하고 일반에 개방한 것이 많은데 이런 곳을 구경하다 보면 남아 있는 기록물을 통해 과거 영국 귀족들의 왕성한 수집욕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일반인으로서 영국 부유층의 사유 예술품의 수준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미루어 추측이 가능한,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예전에 어쩌다 우연한 기회로 남아프리카에서 큰 규모로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영국 출신 소유주의 케이프타운 별장을 잠깐 구경한 적이 있다. 5~6개 별도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공간들은 각기 중세 유럽풍, 빅토리안 스타일, 오리엔탈풍, 모더니즘 등 완전히 서로 다른 컨셉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각 방마다 손님이 머물 수 있도록 침실과 서재 등이 있었고 웬만한 미술관 못지않게 (컨셉에 맞는) 풍부한 예술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나와 남편은 우연이 이어진 신기한 기회로 약 30분 그곳을 구경했는데, 최고 수준의 부자들은 이런 별장을 전 세계 곳곳에 두고 사는구나 싶었고 그곳을 실제로 보는 것이 무슨 영화 속 한 장면을 체험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 작품들의 가치나 진품 여부까지야 내가 알 수 없지만 만약 거기 있던 마크 로스코만 진품이었어도 금액이… (말잇못)

기회 있을 때마다 유명한 미술관을 어지간히 찾아다녔는데, 그간 내가 봤던 것들(박물관이나 미술관, 미디어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 것들)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깨달은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 외 최초의 만국박람회(1951년 런던), 세계 최초의 런던 동물원(1828년) 등도 전 세계 신기하고 좋은 것은 모두 잉글랜드, 런던으로 가져오려는 욕심에 다름 아닌 것 같다.



이번에는 반대로 더럽고 흉한 것들은 쏙 섬 밖으로 치워 버리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한 번 보자.

영국은 오랫동안 자국 내의 범죄자들을 자신들의 소중한 섬에서 식민지로 쫓아내 ‘청소했다’. 1777년까지 미국에 있는 식민지 주로 4만 명의 범죄자를 유형 보낸 바 있고, 미국이 독립전쟁을 시작하자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냈다.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16만 명이 넘는 범죄자를 이곳으로 쫓아냈다고 한다.사실 오스트레일리아 초기 개척의 역사는 대부분 이때 보내진 영국 범죄자들의 실적이다. 이들은 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하루 12시간이 넘는 가혹한 노동을 하며 거친 황무지를 개척하는 노역을 했고, 형기가 끝나면 대다수가 정착금을 받아 그곳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초기 개척 범죄자의 사진을 레이블로 활용한 호주 와인도 있다. 심지어 꽤나 유명한 와인이다.


이런 역사 때문에 호주 이민자들이 범죄자의 후손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일부 남아 있는 것 같다. 영국 역사물을 보다 보면 호주 출신에 대한 영국인들의 묘한 멸시가 있고, 아직도 이런 고약한 농담이 있다.   


  호주 이민국에서 어느 영국인이 호주로 이민을 가려고 절차를 밟고 있었다.
  영국인: 이민을 가려고 하는데요... 결격 사항이 있나요?
  이민국 직원: 어디 보자... 모두 정상이고, 큰 사건은 없고... 가장 중요한 게, 범죄 기록이 있나요?
  영국인: 어? 이상하네. 아직도 범죄 경력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나요?


브렉시트로 이어진 이민자 반대 정서 및 영국의 난민 정책도 이런 특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공존, 자본주의 등 서구 사회의 온갖 고귀한 가치는 모두 자기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밀려들어오는 저임금 동유럽과 남부 유럽 출신 이민자는 싫고, 시리아 등 중동에서 밀려들어오는 이민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2015년 난민 위기 때 영국은 특히나 난민 수용에 인색하여 주변국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으로 밀려오는 난민들의 마음속 1순위 종착지는 압도적으로 영국의 비중이 높은데, 그러다 보니 불법으로 들어오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는다. 영국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 가며 도버 해협을 넘으려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감시를 프랑스 정부에 위임했다. 유럽 대륙에서 애초에 출발하지 못하도록 프랑스 칼레 항에서 막으라는 것이다. 가난하며 범죄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이슬람 이민자를 받기는 싫지만, 우아하지 못하게 손에 피를 묻혀 가며 감시와 체포, 구금, 강제송환 같은 비인도적인 처사를 직접 하기는 싫다는, 참으로 영국적인 대처이다.


유럽 공동의 문제 해결이 필요했던 때에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쉽게 EU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 물론 브렉시트는 영국 내에서도 반대파와 찬성파가 첨예하게 오랜 시간 싸웠던 문제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국인들은 강경파 보리스 존슨을 선택했다. 이들에게는 마지막까지 함께 남아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파트너십, 의리, 책임감보다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자국 중심주의가 더 크다.


과연 이들이 환경 문제라는 전 지구적인 이슈에 대해서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출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불과 4개월 전 영국 글래스고에서 유엔 기후변화 총회가 열렸고 영국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그린’ ‘지속가능’ ‘환경’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이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진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고상한 이야기만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영국은 생활폐기물 처리사업도 일찌감치 민영화되었는데, 가구별로 처리업체에 처음부터 장기간(보통 연단위)의 계약을 하고 비용을 미리 지불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개별 가구에서는 재활용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그나마 음식물쓰레기 분리까지는 한다 해도 (사실 그마저도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철저한 분리수거는 상상할 수 없다. 영국인들의 플라스틱 사용량도 전혀 환경을 고려하는 사람들이라고 느껴지지 않으며, 여전히 이곳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패스트 패션의 천국이다. 이렇게 발생하여 수거된 쓰레기는 대부분 가난한 나라로 수출한다. 여전히 섬 밖으로 버리면 된다는 식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엄청난 쓰레기 수출국이므로 이런 비난을 하면서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영국에 온 지 3개월 차, 선망과 기대감이 충만했던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보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영국인들의 모습, 그러면서도 고상한 이미지만은 고수하고 싶어 한 겹 아래 추한 현실은 짐짓 모른 체하는 위선적인 부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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