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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LC Press Mar 09. 2021

Paprika 몰래 듣기: 인공지능 조경 설계

김영범, 신진욱, 김유빈 / kimuyb@snu.ac.kr  



우리는 노력했으나 기성 조경가들의 설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김영범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이전까지 어떤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어. 그래서 조경학과 처음 입학했을 때 그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흥분되었어. 그렇게 디자인에 대해 처음 접하고, 1년 정도 지나니까 내가 재능이 있는지 확신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어렴풋이 조경의 꽃이라고 불리는 조경 설계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면서도, 조경이라는 분야가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 공간을 디자인해서 사람들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어떤 때에는 큰 시스템 자체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 그런 기획을 한다는 점이 나와 잘 맞고, 의미 있는 활동들이라고 생각했어. 설계하고 싶으면서도 설계는 멀리하고 싶은 아이러니가 찾아온 거지. 


신진욱  나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들이 많았고, 설계라는 분야가 안목과 경험보다는 재능과 직관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설계 수업 이후로 해왔던 것 같아.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모자란 재능과 직관을 숨기기 위해 좋은 작품들을 모방하려 했던 것 같아. 그러고 나서 보인 것들이, 모든 대중 공원을 포함한 여러 학생, 또 수많은 조경가들은 같은 모방의 과정을 거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공원의 예술적인 부분보다는 정형적인 양식이나 방식이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 공원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어. 결론적으로 일정한 조건과 규칙을 두면 누구나 대중적인 공원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2억 개의 변수는 조건과 규칙을 만들고 이것이 사람과 닮은 판단력을 만든다. 


신진욱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가졌던 꿈이 있었어. 컴퓨팅을 통한 일차 산업의 전반 저인 자동화를 생각하고 있었지. 일정한 규칙 속에 진행되는 모든 시스템은 결국 함수를 얹은 컴퓨팅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어. 그 꿈을 가진 채 조경학과에 진학했고, 공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컴퓨팅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 그러다 너를 만나서 이런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 그때 마침,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지. 인공지능에 포함된 수많은 변수가 수정을 거듭해서 마치 사람이 내리는 판단처럼 결과를 산출한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고, 어쩌면, 수많은 고려 끝에 결정되어야 하는 ‘설계’도, 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한 거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 


김영범  전공 수업을 처음 들을 때까지만 해도, 라이노와 브이레이, 그리고 포토샵만을 이용해서 뷰를 만들었었어. 그런데 전역하고 학교에 돌아오니까, 루미온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더라. 여기서 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지 확인했어. 그런데 일부 기성 조경가들은 루미온을 사용하는 것이 못마땅하신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픽의 획일화나, ‘네가 한 게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시더라. 그런데 이것은 마치 일부 기성의 기성세대들이 캐드를 쓰는 것을 보고 ‘손으로 그리는 게 진짜 설계다’라고 하는 말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사실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기존 산업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또 새로운 동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젊은 세대들의 역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어. 그러다 어렴풋이 생각만 하던 인공지능과 설계의 조합을 형과 만나서 실제로 구현해보겠다는 용기가 생긴 거지. 


신진욱  이런 생각들을 하고 나서, 수강할 수 있는 인공지능 관련 수업들을 거의 전부 신청해서 들었어. 수업을 듣고 인공지능의 역사부터 원리, 응용사례들을 공부하니 모호하게 생각하던 인공지능이 어떤 것인지 보이기 시작했어. 종류나 방식, 변수들을 알고 나니 인공지능이 조경설계를 하도록 한다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어. 데이터의 양만 많다면, 우리가 공부했던 조경 설계 방식의 모든 고려 사항들을 컴퓨터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고 조경가 못지않은 판단으로 선을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나의 길과 하나의 나무를 그 자리에 그려 넣기까지 수많은 요소가 변수로 작용하고 그것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해야 한다고 배웠었지. 그렇게 배우고 현장을 설계하는 수많은 조경가들이 남긴 길들과 식재 위치와 종류들이 누적되어 방식과 어느 정도의 맥락, 위치에 대한 당위성을 하나의 평균적 위치로 수렴시키고, 이것들을 주어진 새로운 대지와 환경에 최적화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지. 2억 개가 넘는 변수 하나하나가 곱해지고 더해지는 과정 내에서 입구 위치를 판단하고, 동선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 아직 이것이 사람보다 빠르긴 하겠지만, 더 나은 설계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나 조경학도로서 현재 조경의 발전과 동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이 기술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끝까지 가볼 생각이야.  



Team Paprika  

그렇게 우리는 팀을 구성했다. 팀 파프리카는 보편적 조경 설계의 자동화를 꿈꾼다. 조경 설계를 넘어, 건축물 내부 인테리어와 도시계획까지,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 전반에 걸쳐 모두가 최소한의 디자인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우리는 매너리즘에 안주하는 기성세대들에게, 출사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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