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큰 나무가 된 지팡이 1-2
잃어버린 지팡이 2
그 일이 있고 나서 연이어 군고구마통 사건이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오면 작은 흙마당이 있고 비탈길이 있었다. 비탈길에 누군가 버린 군고구마통이 놓여져 있었다.
그 낡은 군고구마 통을 잡고 흔들흔들 노는 것이 재미있어 한쪽 발을 땅에 딛고 군고구마 통을 굴리며 놀았다.
어느 날 그만 너무 세게 굴려 군고구마 통이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군고구마 통과 내가 하나 되어 떼굴떼굴 굴렀다. 비탈길로 떨어지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몇 바퀴를 돌아 아래쪽 땅에 닿았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내가 군고구마 통을 꽉 잡고 있어서 같이 굴렀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부모님한테는 군고구마 통 굴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괜히 걱정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고구마 통 굴린 모습을 본 누나가 엄마에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아빠는 지팡이를 구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지팡이를 잃어버렸다. 정신없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놀다가 어느 날 보니 지팡이가 안보이는 것이엇다.
지팡이를 잃어버린 것을 안 누나들은 한마디씩 했다.
“얼마나 돌아다니면 제 다리를 잃어버리니?”
“힘들지도 않니 ? 그만 좀 움직여라.”
지팡이를 잃어 버려서 아빠에게 혼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잃어버릴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지. 돈도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 지팡이를 잃어버리면 다른 것을 얻을거야.”
나는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지팡이가 없어진 첫 날은 무척 불편했다. 마치 왼쪽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팡이 대신 손으로 무릎을 짚고 다녔다. 1달이 지나자 그렇게 걷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그냥 지팡이 없이도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누나들이 한 마디씩 했다.
“너 지팡이 없이도 잘 걸어다니네. 대단하다”
“그동안 지팡이는 폼이었나?”
“지팡이 짚으면 할아버지 같으니까 지팡이 없이 걸어다녀라.”
어느 날 엄마와 아빠가 말씀하시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이 집은 너무 위험해서 이사 가야겠어.”
“저 옆에 시민 아파트 새로 지었는데 아주 좋대.”
“그러게요. 애가 다치고 군고구마 통을 굴리고 안좋아. 절벽 위에 벽도 금이 가서 위험해.”
그러나 나는 이 집이 좋아 이사 가기 싫었다. 우선 방이 긴 기차 같아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아서 좋았고 세상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사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 이사 안가면 안되요? 군고구마 통 안굴리고 벌레를 잡지도 않을게요. 이사 가지 마세요.”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면 좋잖아. 여기서 살면 위험해. 절벽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하루 빨리 이사 가야 해.”
결국 1달 후에 이사 가기로 했다. 그렇게 갑자기 날짜가 정해질 줄은 몰랐다.
토요일에 새로 이사 갈 시민 아파트를 엄마와 함께 가보았다. 콘크리트로 된 큰 4층 건물인데 1층에 열두 집이 똑같은 모양으로 있었다.
우리가 살 집은 4층이었다. 컴컴한 동굴같은 긴 복도를 지나 맨 끝 집이 우리가 살 집이라고 했다. 이 집도 지금 사는 절벽 위의 집처럼 끝 집이었다.
멀리 남산이 보였다.
둥근 지붕의 건물이 남산도서관이라고 큰 누나가 가르쳐 주었다. 가까이로는 동대문도 보이고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31층 빌딩인 삼일빌딩도 보였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갈수록 절벽 위의 집을 떠난다고 하니 아쉽기만 했다.
이 집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았었다.
동생과 목욕을 하고 물을 닦지 않고 방바닥을 뒹굴던 기억이 난다. 물 묻은 몸이 미끄러워서 빙글빙글 잘도 굴러간 거였다. 엄마는 먼지 다 묻는다고 하면서 화내지는 않고 다시 씻어주셨다. 우리는 또 방바닥을 발가벗고 뒹굴며 까르르 웃었다.
또 동생이 응아, 해놓은 노란 덩어리에 성냥개비를 꽂아놓고 놀았다.
겨울에는 아침마다 공동수도에서 물을 받아먹었는데 길게 줄을 서서 물을 받았다. 우리 집은 너무 높은 곳이라 물이 잘 안나왔던 거였다.
그래서 양철통을 양쪽 어깨에 메는 지게에 지고 물을 받아먹었다. 베트남 사진에서 많이 보던 어깨에 메는 그런 지게 같았다.
드디어 1달이 지났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짐이 많지 않아서 이사는 금방 끝났다.
이사 온 첫날 밤, 잠이 안 왔다. 우리 집이 아닌 거 같고 편하지 않았다.
아파트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그런지 무척 시끄러웠다. 옆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다 들렸다.
나는 뒤척이다가 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 와서 예전에 살던 절벽 위 집에 가 보았다.
절벽으로 가는 길가의 집들이 이미 다 부서져 있었다.
검고 진득한 것이 땅 위에 있었고 냄새가 지독했다. 나무판자, 천막천 쪼가리 등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한 달 전까지 살던 집에 가보니 이미 부서져 있었다. 집터만 남아 있고 지붕과 벽은 다 없어졌다.
발 아래 바로 절벽이 보였다. 절벽 아래를 보니 낭떠러지가 보였다.
집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집이 없어지고 바로 절벽을 보니 무서웠다. 이런 곳에서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에서 있었던 재미있었던 일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여기 저기 둘러 보았다.
“어, 저건 뭐지?”
구석에서 나는 낯익은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 내가 잃어버렸던 지팡이였다.
여기 있었구나. 어떻게 지팡이가 집터에 있었지.
나는 반가워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군데 군데 상하고 벗겨졌지만 내가 1년을 짚고 다녔던 지팡이였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히려 지팡이를 짚는 것이 더 불편했다. 뭔가 걸음에 박자가 안 맞는 것 같고 손에 뭔가가 들려 있으니 거추장스러웠다.
오랜만에 짚어서 그런가?
다시 지팡이를 짚고 걸어보았으나 두 걸음 걷기가 힘들었다.
나는 지팡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지팡이를 절벽 아래로 던졌다. 지팡이를 그냥 여기다 두면 누군가 쓰레기처럼 치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절벽 아래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팡이를 짚지 않고 절뚝이며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발걸음도 가볍게 무사히 다 내려왔다.
예전에는 지팡이 없으면 걸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잘 걸어다니니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다. 나도 이렇게 잘 걸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지팡이 없이도 잘 걸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의 말씀대로 나는 지팡이를 잃고 무엇을 얻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