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여든 이후, 삶이 이야기가 되다

2. 학산씨 이야기

by 유정인


후손에게 전하는 가족 전통


그는 평생 무엇 하나에 온전히 몰입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어울려도 스스로의 열정보다는 남을 따라 흉내 내며 시간을 보냈다. 내기바둑에 잠시 마음을 기댄 적도 있었지만, 불씨처럼 번진 열정은 이내 사그라졌다. 장구 소리, 산길의 숨결, 낚싯줄 끝의 설렘도 그에게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골프채를 잡았을 때조차, 오르내리는 스코어와 함께 마음의 파동도 잦아들었고, 결국 병마 앞에서 손을 놓아야 했다. 이렇듯 삶의 긴 여정에서 그를 끝까지 붙잡아 준 취미나 즐거움은 드물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몸과 마음의 조건에 자신을 맞추어, 제한된 섭식으로 일상을 조절하고, 고요히 글을 쓰거나 영상을 제작하며 몰입의 기쁨을 누린다. 그 모습은 한 인간이 가장 자기답게 살아가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글을 쓰는 일, 영상을 빚어내는 일, 이따금 손자가 찾아와 나누는 웃음과 대화는 삶이 선물한 새로운 기쁨이었다. 어느덧 그는 아버지가 걸었던 수도승 같은 삶을 자연스레 이어받아, 침묵과 사유로 일상을 채워가고 있었다. 매일 써 내려가는 문장은 그의 존재를 깊이 뿌리내리는 땅이 되었고, 그 속에서 그는 가족의 역사와 자신의 근원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모든 세상 욕심을 버리고, 홀로 남게 되니, 잔잔한 기쁨이 찾아왔어요. 나는 혼자 놀지만 언제나 즐거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까. 이젠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모든 걸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어요.

나도 도인이 되어가나 봅니다. 허허허."


엄부자모


아버지는 엄격하고 완고하여 평생 술 담배 모르고 노는 것과 노래하는 것 등 잡기도 없었다. 젊어서부터 한정된 사람만 만나고 물가 등 세상 물정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청탁이라도 하면 아예 만나지 않는 청렴한 공무원이었다. 아버지는 50대에 간염으로 장기 입원하게 되어 세무공무원을 사직하고 면에서 90세가 넘기까지 40여 년 동안 세무사로 일하였다. 그는 운동과 생활 등 모든 것을 규칙적으로 하여 수도승같이 지냈다. 성실하고, 검소한 삶. 한마디로 모범 가장이었고 애국 시민이었고 모범납세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행동규범에 벗어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품이라 그에게는 늘 어려운 존재였다. 90세 넘기까지 혼자 살면서도 자기관리로 건강을 유지하여 자식들 도움 없이 사신 아버지가 존경스러운 면도 있으나 아버지와 달리 자신은 술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했으며, 특히 건강을 해친 자기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이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회고하면 늘 마음이 편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어머니는 자상하고 풍류를 즐기는 멋쟁이셨고 깔끔한 성품에 친화력이 좋아 남들과 나누고 더불어 살기를 좋아하셨다. 아버지와 집안을 중간에서 조절하며 잘 이끌었다. 그리하여 집안이 늘 화목하였다. 어머니는 입담이 좋아 늘 사람들을 웃게 하여 인생을 즐겁게 사는 분이었다. 살림도 잘하지만 베풀기를 좋아하여 장사에게 깎는 법이 없어 시장가면 인기 많은 단골이었다. 엄한 아버지 앞에 주눅이 들지 않도록 어머니는 언제나 그의 편이었다. 그는 사람 좋아하고 풍류를 즐기는 어머니의 성품을 닮아 어머니와 통하는 면이 많았다. 그러나 일할 때만은 엄격하고 때로는 깐깐한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매우 철저하였다.


결혼과 일


청년기에는 부모님의 물심양면 지원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취직하였다. 할아버지는 양반을 좋아하여 그가 18세부터 손주며느리를 물색하였다. 학산씨는 결혼 전에 소개로 몇몇 여성을 만나기도 하였으나 몇 번 만나 자기 마음에 들어도 어른들의 승낙받아야 하는 조건이 까다롭고, 집안의 반대가 뻔해서 몇 번 만나고는 이내 헤어졌다. 할아버지가 오래 공을 들인 신붓감과 만나 어른들이 서두르며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큰 고민 없이 집안에서 점찍어 준 규수와 만났다.

그는 조부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그 뜻을 따랐다. 아내와는 결혼 전에 데이트하며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할아버지가 공들인 집안인데 신부의 어머니가 흡족해하여 결혼이 신속히 이루어졌다. 학산씨 부부가 신혼여행 다녀온 후 아내는 본가에서 신부 수업차 석 달쯤 머물렀는데 부잣집 딸답지 않게 알뜰하고 온순하여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두 아들이 태어났고 양가에서 지원해주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며 30여 년간 가족 부양을 위하여 성실히 일했다. 그가 맡은 일은 재정을 담당하는 회계업무로 평소에 치밀하고 꼼꼼한 성품에 맞는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 회계업무 외에 금융기관에 돈 빌리러 다니며 굽신거리고, 여기저기 힘 있는 사람들에게 비위를 맞추고, 세무서에는 세금 걸린 것을 빼 달라고 사정하는 업무가 많아 심적으로는 고생이 많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일이 그에게 고달픈 일상이 되었다.

그는 대가족 속에 자라면서 가족들과 어울리며 살아왔기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 대접하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았다. 회사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매일 야근하고 때에 따라 밤새워 일하며 회사업무에 헌신하여 건강이나 가족을 돌보지 못한 삶으로 얻는 보상이었다. 그 당시 회사원의 삶이 그랬다. 자기 인생의 주관을 따르기보다, 상황에 따라 회사에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정신없이 달렸다. 그렇게 사회생활에 쫓기듯 살다 보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어 후일 후회하였다.

학산씨는 익숙한 업무 속에서 안일과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 권태가 찾아왔다. 그는 관리자로 근무하면서 변화와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여, 직장 생활 말년에는 방심에 따른 여러 악재와 스트레스가 많아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그는 30여 년 삶의 중심이었던 일터를 구조조정의 여파로 떠났다. 그는 사직하며, 젊음을 바치고 인생을 걸었던 자기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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