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여든이후, 삶이 이야기가 되다

2. 학산씨 이야기

by 유정인

2. 전통에 기억을 남기다 – 학산씨


“자서전을 준비하며 조상들의 행적과 후손에게 가르쳐줄 유훈, 산소관리, 제사, 주변의 친척들과 문중을 정

리하였지요. 그것이 문화유산을 지키는 의미 있는 일임을 알게 되어 여러 가지 다양한 자료를 첨부하여 기록

하였어요.” -학산씨, 82세-


2022년 2월, 코로나의 확산세가 극심하던 시기였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공공장소를 기피 하던 날, 나는 학산 씨의 자택을 찾았다. 아파트 거실에는 커다란 TV와 소파 세트, 창가에 빽빽하게 놓인 화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범한 풍경 옆에는 병원용 수액 거치대와 약통이 놓여 있었다. 일상과 병이 공존하는 자리는, 삶과 죽음이 늘 가까이 있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그는 열 살 아래의 직장 후배가 코로나 확진 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망하게 가는구나, 이렇게 한순간에 끝나는구나.”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과 죽음의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이미 후두암 후유증으로 음성 장애와 식도 기능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는, 그 소식 앞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한층 더 짙게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침묵이 짙게 드리운 공간에서, 나는 그의 건강을 조심스레 묻는 인사로 대화를 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5년 전, ‘돌아보는 내 발자국, 자서전 쓰기 집단상담’ 자리였다. 그때 그는 후두암 수술의 깊은 상흔 속에서, 더 이상 음식을 삼키지 못한 채 튜브로 영양을 이어가야 했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세상과의 다리를 스스로 끊고 고립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침묵은 단순한 소리가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 전체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무게이자, 삶과 죽음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인간 실존의 언어였다.


돌아보는 내 발자국


학산씨는 살아남았으나, 삶이 그에게 남겨준 것은 더 이상 이전의 자기 모습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는 약해진 시력과 빠져나간 치아, 목소리가 흐려지고 음식조차 삼키기 힘든 몸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운명이 부여한 형벌 같았다.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집 안에 스스로 가두었다.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고독은 그의 하루를 잠식해 들어갔다. 하늘이 자신을 데려가 주길 기원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자 남은 것은 원망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처럼 다가온 한 장의 공고를 보게 되었다. 노인복지관의 ‘자서전 쓰기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그는 그저 시간을 메우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서전 쓰기에 참가하여 지난 삶을 정리하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린 시절 유년기, 청장년기, 노년기를

돌아보고 그 시절 경험을 떠올렸지요. 난생처음 써보는 글이라 두서없었으나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기록하

면서 점차 구렁텅이에 빠진 곡충(곡식을 축내는 벌레)에서 재미나게 사는 할아버지로 변해가는 경험을 했

어요. 나는 지난 이야기를 쓰며 고통과 슬픔과 후회와 자책 속에서 울고 웃으며 서너 달을 어찌 지내는지

모르고 지냈지요."

자신의 생을 풀어내는 순간, 오랜 세월 응어리로 있었던 회한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마음의 매듭이 하나둘 풀어지자, 그는 다시금 인간 세상의 따스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고립된 한 개인에서, 다시 살아 숨 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책이 나오고 나누어주니 평소 뜸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지인들이 연락이 와서 소소하게 출판 기념회도 열

며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낀 시간이었어요. 죽었던 내가 세상에 다시 살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그 후 그는 글쓰기에 취미를 붙여, 다섯 해 동안 삶의 조각들을 기록하며 노트 서른 권을 채워나갔다. 그 노트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세월이 빚어낸 성찰과 내면의 울림이 켜켜이 쌓인 한 사람의 영혼의 흔적이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수필집 출간을 준비하며, 글과 사진을 나란히 두어 삶의 결을 더욱 깊이 새기려 계획하고 있다. 글이 곧 호흡이 되고 기록이 곧 기도가 되어버린 지금, 글쓰기는 그에게 하루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시작을 여는 의식과도 같다.


마음의 엉킨 실타래를 풀다


학산씨는 투병하던 세월이 남긴 약시로 눈앞의 사람조차 뚜렷이 구별하기 어려웠고, 언어의 불편함으로 소통이 막히자 매사에 긴장하며 예민한 삶을 이어갔다. 어린 시절, 장손으로 집안의 중심에서 사랑받고 귀히 자랐던 그였기에, 돌연 자신이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격지심은 사소한 말에도 상처로 번졌고, 상처 입은 마음은 다시 날 선 말로 되돌아가 자식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결국, 큰아들의 가족은 발길을 끊고 말았다.

그의 삶은 그렇게 ‘받아들임’과 ‘거부’의 경계 위에서 흔들렸다. 인간이란 누구나 상실과 불완전함 앞에서 존엄을 지키고자 몸부림치지만, 그 몸부림이 때로는 가장 가까운 이에게 고통을 준다. 학산씨의 서사는 단지 한 노인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상처 앞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거울과도 같다.

그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은, 할아버지가 무릎에 앉은 손자에게 집안의 풍습과 문화를 차분히 들려주는,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로 건네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들네가 발걸음을 끊자 삶은 공허해졌고, 그 허무가 그의 하루를 갉아먹었다. 학산씨는 그렇게 의욕을 잃고 생의 빛을 잃은 채 지냈다. 하지만 심리상담을 통해 다시금 내면의 등불을 찾았고, 마침내는 스스로 어둠을 딛고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앞산도 다니고, 흰 구름과 산새와 동무하고 탄천으로 내려오면, 오리의 날갯짓과 왜가리의 외로움도 보고,

물 건너 오리의 물결에 어리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되지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 꽃이 피는 시기.

그것을 사진에 담아 영상을 만드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학산씨는 영상 편집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며, 뜻밖의 ‘창작의 기쁨’을 만났다. 화면 위에서 흘러가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다 보니, 마치 인생의 조각난 순간들을 새롭게 엮어내는 듯했다. 학창 시절 즐겨 듣던 클래식 음악은 그의 작업에 영혼을 불어넣는 배경음이 되었고, 오래된 취미는 늦은 나이에 다시금 꽃을 피웠다. 창작에 몰입하는 시간은 그에게 세상을 새로 보는 눈을 열어 주었다. 혼자서 노니는 즐거움 속에서 그는 자유를 맛보았고, 영상 속 이야기를 매개로 지인들과 다시 연결되며 세상과 관계를 넓혀 갔다. 창작의 리듬에 몸과 마음이 잠겨 들자 세속의 욕망은 저절로 희미해졌다. 그는 이제 더 큰 것을 탐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을 낮추고 내려놓으며, 어려운 이웃과 친척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나눔을 실천하는 데 기쁨을 느낀다. 영상 한 편 한 편을 완성하는 손길처럼, 그의 일상은 작은 선행과 섬세한 배려로 채워지고 있었다.

"만일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면 나도 그동안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고 술과 미식을 즐기며 여기저기 먹으러

다녔을 거예요. 재산 증식에만 관심을 두고 친구들과 투자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든지 재산을 늘리려 정보

를 찾아다녔을 거고요.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나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나도 욕심을 내며 열심히 재테크

에 힘쓰며 욕망의 노예가 되어, 얼마를 더 늘릴까만 생각하고, 어려운 가족 등 주위를 돌아본다던가 자연을

깊게 관찰하지는 못할 거예요. 장애가 생긴 이후 내 삶이 정 반대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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