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여든 이후, 삶이 이야기가 되다

1. 청자씨 이야기

by 유정인

이 땅을 탈출하다


청자씨는 소리를 잃은 채, 홀로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가까이 있는 백화점 문화 교실 유화 반에 등록할 때, 건강이 온전치 못하였지만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다. 새장 밖으로 걸어 나온 그녀는 3년 반이 지나자 서서히 말문이 트였다. 그리고 의사의 소견대로 5년이 지나자 실어증에서 회복하였다. 그녀는 비로소 자기의 말을 찾아갔다.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땅에서 청자씨는 심신의 고통을 그림에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가정을 등지고 혈육과 멀어진 채, 외로움과 그리움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견디었다. 억울한 마음, 켜켜이 쌓인 설움을 색채에 담아 그릴 수 있었기에 살아낼 수 있었다. 마음을 풀어 그려가면서 그녀는 자기 삶을 돌아다 보았다. 자신의 꿈이 무너지고 견디기 어려운 모멸감이 밀려와 사랑하는 자녀들조차 품기 어려웠다. 자녀들이 자신의 진로로 고민할 때 그들의 편이 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만 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40년 전 의사의 오진과 수술의 후유증은 그녀의 건강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어쩌면 그것은 친정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결혼에서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결혼에서 벗어나고자, 부부인연을 끝내고자 떠났던 이국땅. 낯설고 서툰 언어로 살아가는 이방인의 삶이 그녀에게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자기를 마주하기 위해서, 철저히 혼자로 남는 시간을 허용했다. 낭떠러지로 내몰린 새가 부러진 날개에도 다시 날아오르려는 몸부림.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장의 유착으로 부푼 몸뚱어리, 말문이 막힌 언어 장애, 무릎관절염으로 절름발이, 하지만 절망만 할 수는 없었다.


화가가 되어 돌아오다


그녀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도 짧은 이국땅에서 최악의 밑바닥 생활로 자신을 단련하였다. 부엌 없는 방 하나를 얻고 침대 없는 맨바닥에서 뒤척이다 날이 새면 밖으로 나갔다. 그녀에게 편한 집을 두고 왜 이렇게 멀리 타국에서 고생하며 사느냐고 물었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병의 근원이었던 마음의 상처를 그림으로 풀어냈다. 그것은 자기와의 투쟁이었다.

눈물과 함께 탄생한 그림들. 눈물로 한 땀 한 땀 이어간 색채는 잃어버린 날개가 되었다. 심한 우울증의 늪에서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라는 의지가 그녀를 화가라는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그녀는 이국땅에서 홀로서기로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철들고, 초등학교 나오자 타향살이 시작하고, 이렇게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남편하고 헤어지려고 비행기

타고 해외에 가봐도 헤어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어. 헤어지려고 떠났는데 오히려 화가가 되어 돌아와서 지

금 이렇게 살고 있어. 그리고 그것도 하나님 섭리인 거 같아. 그냥 좋은 그림을 집에 걸고 좋아했지. 내가 그

림을 그린다는 거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 그냥 부러워만 했지. 어떻게 화가가 되나. 화가 소리 듣는 사람은

하늘 같이 봤어. 나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타국 가서 화가가 되었지."

홀로서기


어려서 고향을 떠나고, 결혼으로 친정을 떠나고, 실어증으로 가족을 떠나고, 자신을 찾아 다시 고국을 떠나고, 치열한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며, 청자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까지 떠나왔다. 끊임없이 떠나는 홀로서기의 삶. 건강으로 평생 고통을 겪은 그녀에게는 기적적인 홀로서기였다. 그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으나 그녀는 정규 교육도 지도도 받지 못하였고 건강의 문제로 등단 화가 활동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화가라는 말도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러나 70세가 넘어 재야 화가 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으며 정체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건강으로 인해 한동안 그리지 못하였으나 그녀가 정성을 쏟으며 오래 운영하는 카페에서 회원들과의 소통과 기도가 수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온라인으로 소통하기


청자씨는 해외에서 돌아와 인터넷 온라인 카페를 시작한 지 18년이 넘었다. 온라인으로 회원들과 만남과 소통이 그녀에게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얻게 하였다. 매일 새로운 소식을 올리고 감미로운 음악을 찾고 작품을 올리는 카페지기가 되어 슬픔과 아픔을 달래고 대장의 진통을 이겨낸다. 하루에 세 시간씩 카페에 글을 올리고 여러 자료를 모아 올린다. 만나는 회원 수도 크게 늘었고 카페는 청자씨의 분신이 되었다.

그녀에게 자식이 육신의 분신이라면 꿈은 내면에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성장시켜주는 분신으로 카페 활동을 통해 청자 씨의 꿈이 이루어졌다. 청자씨가 말하는 홀로서기의 삶은 자녀에게 아픈 엄마, 약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혼자서도 잘 살아내는 당당한 엄마, 자기를 지키는 삶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녀들과 다정하고 살갑게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것을 이제는 카페에서 만나는 회원과 소소한 정을 나누고 서로에게 따뜻하게 격려하는 몇 마디 말로 위로받는다. 카페에서 회원들과 나눔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 자존감이 올라가는 삶이 그녀에게 큰 위로와 힘이었다.


마지막 무대에 서다


그녀는 늘 건강의 적신호를 느낀다. 숨차고 어지럽다. 고관절 통증도, 순간순간 주저앉는 것도, 걸음걸이도 다르다는 것의 원인은 노쇠에 따른 건강 악화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오래지 않을 거라는, 그래서 삶의 정리를 서두르는 마음을 바라본다. 화해나 용서해야 할 사람은 없다. 그녀가 생전에 풀어야 할 남편은 이미 6년 전에 갔다. 그녀는 남편에게 맺힌 상처가 많았는데 이젠 그도 가고 나니 없다. 결혼 전 처음 만났던 날, 남편이 “결혼 조건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내가 팔려 가는 것도 아닌데 결혼에 무슨 조건이요”라고 답을 하며 미처 자기 속내를 말하지 못했다.

그때 ‘아버지같이 우리 가족을 보살펴주세요’라는 그녀의 본심을 달리 말했어야 했다. “만약 내가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를 안고 교회에 다니는 것을 허락한다. 앞으로 재산은 부부 공동명의면 좋겠고 법대로 분명해야 한다.”라고 두 가지 조건을 확실히 명시하여, 당연한 권리를 당당히 제시하면서 결혼을 수락했다면 남편은 약속을 지켰을 것이다.

30여 년 동안 헤어져 살다 떠난, 자신을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던 남편의 영전에서 그녀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내게. 왜, 왜!”라고 허망하게 되뇌었다.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가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자, 다시 돌아보며 자신이 좀 더 현명했더라면, 도망 다니지 않았더라면 부부가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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