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자씨 이야기
그녀의 꿈
그녀는 어린 나이에 세상 물정 어두운 어머니를 자신이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아버지가 고향을 떠났듯이 그녀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15세에 도시로 떠났다. 당시 6.25 전쟁 후에 모두가 헐벗고 가난한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린 여자가 고향을 떠나는 것은 엄청나게 험난한 길이었다. 청자 씨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약값과 팔삭둥이로 태어나 허약한 남동생을 책임지며 어린 나이에 학생 가장이 되었다. 그녀가 남동생을 데리고 타향에서 고학하며 힘겹게 살 때, 일생을 고향을 지키며 지내고 있는 어머니는 그녀에게 마음의 나침반이었다. 힘들 때마다 어머니를 지키겠다고 다짐하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야간 학교에 다녔다. 등록금이 필요하면 매혈(賣血: 피를 파는 것)하였다. 그때 만난 간호사와 친해졌고 그녀와 같이 서울에 가서 일하며 대학에 가자고 약속했다. 야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세상에 이름을 남기겠다'라고 마음에 새겼다. 타향에서 동생을 데리고 고학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그녀는 결혼은 안중에도 없었다. 무책임한 아버지가 그렇고 허약하기만 한 남동생을 보니 결혼에 관심이 생길 리 없었다.
하나뿐인 동생은 타향살이에 심한 연탄가스 중독 후유증으로 직장과 사회생활의 적응 능력이 상실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동생을 지키고 싶었다. 타향살이가 어린 소녀 청자에게 고되었지만, 그것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꾸었던 그녀의 꿈을 꺾지는 못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선택, 결혼
청자씨는‘선비 가문 반가의 여식이 객지에서 혼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라는 양반집 법도를 강조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결혼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친정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없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23살, 혼기에 한창인 나이라 여기저기서 중매가 들어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가족의 생계와 배움에 대한 열망만이 전부인 그녀가 친정을 책임지고 결혼할 자리는 쉽게 찾기 어려웠다. 그녀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건강뿐이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둑질과 정조의 지조를 꺾는 것 외에 무엇이든 하며 하늘의 섭리를 기다리겠다는 심정이었다.
‘일찍부터 조신하게 어문 공부와 바느질이나 배울 일이지 객지를 떠돌더니 결혼도 제멋대로 하려는 집안 망칠 계집애’라는 큰아버지의 불호령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뒤로 친정을 책임져야 했기에 시댁에 혈통을 이어가는 자녀 생산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결혼을 결정하였지요. 집을 떠나는데 어머니가 가방에 긴 편지를 넣어요. 어머니는 필체가 좋은 사람이라. “아해야, 남편은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니....”로 시작하는데 조선시대 여인들의 예의범절과 행실 그리고 남편과 자식과 가정을 위한 헌신만을 강조한 내용으로 가득했지. 지금도 60년 지난 빛바랜 누런 편지를 보면 엄마를 만난 거 같아서 어머니를 떠올리고, 마음이 따뜻해지지. 인간사 변화무상치 않은 것은 없으나 엄마 사랑은 항시 새록새록 영원하지.
‘맏딸은 살림 밑천이다’라며 가족을 위해 장녀가 자신을 희생하였던 시절인지라 그녀는 친정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려 하였다. 남편이 원하는 대를 잇는다면 남도 돕는 세상인심인데 하나뿐인 처남 대학은 물론이고, 허약한 장모를 모른 척하지는 않으리라고 내심 기대했다. 신랑감은 초혼에는 감히 바랄 수 없는, 사업을 번창하게 일구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가족을 책임지는 역할이 버거웠기에 가슴 넓은 남자 만나서 아버지같이 오빠같이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외로움으로 홀로 남겨지다
청자씨는 결혼하면 늦게라도 대학에 다닐 수 있으리라던 꿈도, 교수가 되어 자아실현을 하겠다던 이상도 꺾인 날개가 되었다. 남편과 나이 차이만큼 취향과 지향하는 것이 다름을 실감하면서 본래의 옷을 찾을 수도 없고, 자기 꿈도 사라져 점차 생기를 잃었다. 남편 표정에는 불만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불평이 늘자 부부는 서로 불신의 골이 깊어갔다. 불만과 갈등으로 부부는 도망가고 쫓아가는 관계가 이어지며 멀어져 갔다. 그녀의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은 암담했다.
“내게 불만 있으면 나가라”고 (남편이) 혼자 소리 질러. “자식은 내가 알아서 키운다니까.”(라며). 그러니 내가 어디에 뭘 믿고 그 사람한테 붙어살겠다는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돈도 안 주고 교회도 못 가게 해. 자기 원하는 대로만, 친정도 못 가게 자기만 보라고, 강아지 같이 살라 하는데 내가 반려 강아지는 아니잖아요.
시름과 고통 속에 살던 청자 씨는 건강 악화로 43세에 끝내 수술대에 오른 몸이 되었고 오진한 수술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주경야독하던 청춘 시절에 때에 알맞게 식사하기 어려웠고, 허기진 채 과식과 폭식을 하다 보니 위장병을 키웠다. 그 후 그녀는 소화기관의 병으로 계속해서 시달려야 했다. 대장 연동 운동 부족으로 긴장성 마비가 오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막대기 같이 대장이 경직되면 배가 부풀어 가스가 차서 만삭의 배같이 되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비 오듯 하고 메스꺼움과 잦은 설사로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증상이 지속되었다. 심신의 질병과 고통으로 그녀는 절망 속에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