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체성을 찾아 떠나온 삶 – 청자씨
“내 삶은 끊임없이 떠나는 삶이었지. 어려서 고향과 가족을 떠났고, 나를 찾으러 가족과 이 나라를 떠났지.
내 삶의 팔 할은 떠나는 것이었어요.” -청자씨, 84세-
2022년 3년째 이어진 코로나의 확산으로 면역력 취약계층인 초고령 노인은 세계적으로 사망행렬이 이어졌다. 가족의 참여가 금지된 그들의 장례가 어설프게 이루어지는 것을 뉴스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팬데믹 상황인지라 외부에서의 만남이 쉽지 않았기에, 그해 4월 어느 봄날 오후 나는 인터뷰하기 위해 청자씨 자택을 방문하였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자 중문 너머 세 자녀의 학창 시절 입학과 졸업사진들이 빼곡히 담긴 대형 액자가 세로로 길게 걸려 있었다. 곱게 차린 중년 여인이 자녀들 가운데 서 있었다. 중문을 지나자 왼편으로 그녀의 작업실 문이 있고, 맞은편에 넓은 거실이 보였다. 거실에는 단촐한 가구 외 여기저기 책이 쌓여 있었고 한쪽에는 모아둔 잡지와 신문도 쌓여 있었다. 심지어 반찬을 담았던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수십 개도 대형 소쿠리에 수북이 담겨 있었다. 사각의 긴 탁자에는 쌓인 책으로 겨우 찻잔이 놓일 자리만 남아 있었다. 동향으로 창이 난 거실은 햇볕이 스치고 간 오후인지라 조금은 어두웠고 초봄의 한기가 느껴졌다. 혼자 사는 집치고는 꽤 큰 집.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첫 말문이 열리자 그녀는 쉼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왜소한 체구에서 나오는 그녀의 음성이 점차 커지면서 외침같이 느껴졌다. ‘많이 외로우셨구나.’생각이 들어 찬찬히 둘러보니 벽에 걸린 대형 가족사진과 자녀들의 결혼사진 그리고 상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간은 30여 년 전의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속에 사각모를 쓴 자녀들 곁에 옅은 미소를 띤 중년 부인 모습을 보며 그녀에게 자녀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지키기도, 자녀를 지키기도 벅찼던 시절의 슬픔이 미소 뒤에 남아 있었다.
그녀, 엄마라는 정체성
청자씨에게 자녀는 자랑이자 아픔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아들과 두 딸.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엄마라는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했다. 청자씨는 친정을 도우려고 전전긍긍하였고 자신의 존재감, 정체성의 혼란과 고통으로 건강을 잃었기에 후일 귀한 손주들을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 혈육의 정이 그녀에게인들 왜 절절하지 않았겠는가. 조선시대 법도에 맞추며 살아온 어머니의 예절교육과 생활방식은 청자씨에게 이어졌다. 자녀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하기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한 역할을 하며 성취하는 삶을 강조하며 살았고 남편과 반목과 투병으로 자녀들과 정서적인 유대감을 갖지 못하였다. 손자들에게도 할머니의 사랑을 표현하거나 살을 맞대고 지낸 경험이 없기에, 지금 그녀는 가족과 멀리 덩그러니 남겨졌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아들은 과학자가 되기를 원하였다. 남편이 경제학과를 지원하도록 강요한 날 아들은 방문을 잠그고 통곡하였다. 그 통곡을 들으며 그녀는 네가 원하는 길을 가도 좋다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하였던 자기의 처지가 괴로웠다. 큰딸이 원하던 진로를 남편의 반대로 포기하였을 때 적극적으로 막아주지 못하였다. 막내도 자기 원하는 미술 전공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면 항상 어미로서의 무능함이 숙제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질긴 투병에도 자녀에게 어미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자주 왕래하지 않아도 자녀들이 모두 가정을 꾸려 자손을 잘 키우며 살아가니 마음 든든하다. `너희들의 행복이 바로 내 행복이다.' 그것이 청자씨의 자녀 사랑이다.
입구 작업실에는 화구와 그림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자기를 지켜주는 수호신, 홀로서기를 일깨우는 힘으로 보였다. 그녀가 홀로 선다는 것 그리고 담대하다는 것은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려는 강한 욕구이자, 그녀의 어린 시절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작품을 보며 문득 ‘가시연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가슴으로 품은 소망, 아픔으로 맺힌 상흔과 같은 보랏빛 꽃심이 그녀의 모습 같아 보였다. 그녀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화가 동호회에서 발표한 작품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녀는 60이 넘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건강 문제로 작품 출품보다 화가를 지원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작업 이야기에 이어,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절박하게 살았는가에서 불행한 결혼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恨)과 같은 상처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듯, 억울하고 섭섭했던 이야기를 지속하던 그녀의 언성이 점차 높아졌다. 그러자 상기한 그녀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쳐 갔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네”라며 갑자기 그녀가 말을 멈췄다.
부모 이야기
나에게 차를 권하고, 그녀는 늘 마음의 지침을 주었던 어머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갔다. 안전기지와 같은 어머니와의 추억은 그녀를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오게 했다. 자녀들이 그녀 삶에 맛난 과실, 열매라면 그녀의 뿌리는 어머니였다.
현모양처 어머니는 붓글씨 어문에 능하였고 음식솜씨와 바느질 솜씨도 남달랐다. 말수도 적었고 수심 어린 미소와 단아한 매무새로 세상 물정 어두운 `안방 아씨'로 살았다. 반면에 고명한 선비의 막내아들로 `개화된 멋쟁이 신사'로 불리던 그녀의 아버지는 신지식을 접하여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조선 제국 유교 학자인 할아버지는 두루마기에 갓을 쓴 풍모이나 아버지는 신문명, 신지식을 받아들여 전통을 거부하고 양복에 모자를 즐겨 썼다.
청자씨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 어느 날 아버지가 한마디 말도 없이 논밭전지를 저당한 돈을 가지고 일본으로 훌쩍 떠나고 나서 일 년 후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가족은 소식이 끊어지자 모두 말수가 사라졌다. 전통적인 유교문화와 일본 제국의 식민 시기에 들어온 신사상 사이에서 지식인들이 방황하던 혼란기에 그녀의 아버지도 풍류객으로 떠돌았고 유물사관을 접하자 일본으로 떠나 조총련에서 활동하였다. 사상적인 문제로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는 삶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사뭇 다르고 서로 맞지 않은 만남이었다. 그녀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하여 원망보다 그리움이 컸다.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시골과 도회지로 이사 다니면서, 시골 냄새보다는 도시의 분위기가 더 좋았다. 아버지가 떠난 후 그녀는 춥고 허기진 어린 날에 늘 아버지가 사는 도시를 떠올렸다. 그녀는 기약 없이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한숨으로 간간이 눈물을 찍어내던 어머니의 젖은 눈시울을 보았다. 어머니를 닮아 조용하다는 외관과 달리 그녀의 내면에는 고향을 떠나고 싶고, 도시문화를 동경하는 강렬한 마음은 아버지를 닮았다. 청자씨는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는 꿈을 꾸며, 알 수 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였다.
그녀가 태어난 고향은 같은 성씨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증조부 윗대부터 오백여 년 이어온 시골 마을이었다. 여러 촌락 중에도 가장 넓은 평지로 조용한 양반촌이었다. 선비들이 흰색 도포를 입고 정자에 모여 글공부하고 이따금 뭔가를 한탄하는 큰 소리가 들려 오면 청자씨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곤 하였다. 평화로운 외양과 달리 일본 제국의 지배받는 무력한 사회, 전통을 수호하는 유교 학자 할아버지와 신문명을 쫓는 아버지 사이의 갈등, 아버지의 한량 같은 생활로 어머니의 수심과 고뇌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린 그녀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마침 마을에 들어온 예배당이 그녀의 놀이터이자 위안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