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철수씨 이야기(3)
삶의 끝에서 피어난 회복의 시간
철수씨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자신과 같은 고통 속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되돌려 주고자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을,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싶었다. 환자와 가족의 슬픈 이별을 함께하며, 그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되었다. 봉사활동을 통해 그는 애도의 과정을 거쳐 아내가 떠난 의미를 스스로 재구성했고, 남은 삶을 봉사로 채우며 언젠가 아내 곁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사별의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기도하며 나누는 시간은, 상처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었던 자신을 치유하는 일이기도 했다. 철수씨는 봉사를 통해 아들과 아내의 죽음이 남긴 의미를 되새기고, 그들이 이루지 못한 삶의 일부를 이어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 아들과 아내를 연이어 떠나보낸 경험은 철수씨의 내면에 깊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을 딛고 한 걸음씩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에게는 곧 의미 있는 사명처럼 다가왔다. 남겨진 사람으로서 떠난 이들의 몫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진지한 성찰은, 상처로 무너진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했고, 그는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애도의 과정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충격과 부정,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몰려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수용과 적응의 단계로 나아간다. 이 과정을 거치며 개인은 이전보다 더 깊고 성숙한 내면을 갖게 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이라 부른다. 철수씨 또한 그 긴 여정을 겪으며, 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말없이 봉사하며 자신의 상처를 세상에 풀어놓고, 동시에 타인의 슬픔을 품어 안았다. 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이보다, 상처를 통과한 사람들이 더 깊은 성장을 이루어내기에, 철수씨의 삶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섰고, 고통을 딛고 피어난 희망을 삶 속에서 보여주었다.
멈춤이 없는 봉사활동
철수씨는 가족과의 사별이라는 반복적인 외상 경험과 지속되는 암 치료로 인한 건강 상실을 겪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느낌, 타인과의 관계, 인생철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이러한 변화는 자기 초월의 과정으로 이어졌다. 그의 신념, 즉 ‘누군가를 돕는 적극적인 행동’은 자연스럽게 그의 생활 규칙이 되었다. 암 치료와 회복과정에서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봉사를 통해 단련된 체력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에 기인한다. 이웃과 사회를 돕는 그의 적극적인 행동과 봉사활동은, 단순한 나눔을 넘어 철수 씨 자신에게도 깊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일상이 된 봉사활동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길이 되었다. 복지관 식당에서 일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에 있을 때보다 삶의 활기를 온전히 느꼈다. 일머리가 있어 필요한 일을 알아서 처리하니 직원들의 신뢰와 인정을 받았고,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큰 만족감을 얻었다. 이처럼 철수씨가 가족과의 사별 이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봉사활동은 그의 고통과 역경을 극복하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철수씨는 평생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라는 아버지의 유지를 신조로 삼고 살아왔다. 그 신조는 점차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 봉사하는 삶으로 이어졌다. 그는 봉사 활동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소외감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여 자기효능감이 향상되었다. 그리하여 생산적 활동을 유지하는 봉사 활동하는 순간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은혜로 다가온 보상
그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노인복지관 식당에서 미리 준비를 도왔다. 봉사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에는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개인 시간을 가지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토요일이면 사물놀이 동호회에 나가 꾸준히 연습했고, 이따금 경로당이나 노인정, 요양원을 찾아 봉사하기도 했다. 그의 성실함은 해마다 만 육천 시간에 달하는 활동을 기록했다. 그 공로로 그는 복지관 관장, 시장, 도지사로부터 자원 봉사상을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모범적인 봉사자로 인정받았다.
젊은 시절 사회생활을 함께하며 어울렸던 지인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다. 학교 동창도 대부분 떠나고, 남은 친구들조차 건강 문제로 만남이 끊겼다. 고향 친구는 한 명만 남았고, 한때 함께 만나 즐기던 친목회원들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매일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언젠가는 아내 곁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한 곳에 담고 살았다. 그동안 받은 상장들을 방 벽에 선반을 만들어 올려놓고, 매일 올려다본다. 그는 그것을 천국으로 가는 ‘노자’, 저세상으로 가는 길에 필요한 마음의 준비로 여기며, 남은 삶을 성실하게 살아간다.
철수씨는 매 주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기도를 통해 세상을 떠난 이들과도 유대감을 이어갔다. 언젠가는 아내, 어머니,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저세상으로 가는 마음으로, 그는 아침마다 성서를 필사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가며, 2024년 연말에도 10여 년 이어온 자원봉사자 상을 받았다. 그는 평소 “자원봉사 활동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다 떠나고 싶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소망을 이루었다. 2025년 초, 노환으로 3개월간 시름시름 아프며 가족과 작별 시간을 보냈다. 그는 어느 따뜻한 봄날에, 89세의 나이로 아내 곁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