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마지막 장을 연출하다

1. 상실의 뒤편에서 발견한 신성한 선물

by 유정인

1. 상실의 뒤편에서 발견한 신성한 선물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김용택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중에서 -


삶은 어쩌면 잃어버림의 연속 속에서 우리를 완성해 가는지도 모릅니다. 굽이굽이 돌아온 생의 언덕 끝에서, 그들은 ‘상실’이라는 그림자와 마주했습니다. 부모를 보내고,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자식과의 거리마저 멀어지고,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자각하는 순간들. 그 상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존재를 흔드는 근원적 체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그들은 오히려 ‘살아 있음’의 다른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거친 풍파를 견디어 낸 열매들이 더 달다고 하였던가요. 삶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그들은 내면의 빛을 찾았습니다.


청자씨는 말을 잃은 뒤, 언어 대신 색과 선으로 자기 세계를 복원했습니다. “이대로는 끝낼 수 없다.” 그녀는 침묵 속에서도 결연히 붓을 들었습니다. 그림은 고통을 통과한 뒤에 남은 흔적들을 조용히 드러냈습니다. 그림 한 폭 한 폭은 ‘아픔의 기록’이자, 동시에 ‘존재의 회복기록’이었습니다. 상실을 예술로 전환한 그 손끝에서, 삶은 다시 발화(發話)를 시작했습니다.


학산씨는 병과 음성 장애로 세상과 단절되었지만, 침묵의 시간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언어를 배웠습니다. 그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내면의 말’을 찍었습니다. 영상은 그의 또 다른 목소리가 되었고, 고립의 벽을 넘어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말하자면 ‘존재의 잔향’을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영미씨는 신앙을 통해 다시 세상과 자신을 잇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신에게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로 향한 부름이었습니다.


철수씨는 상실의 무게를 봉사로 전환했습니다. 그는 고통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것을 이웃과 나누며, 고통의 의미를 다시 써 내려갔습니다.


용선씨는 젊은 날 죽음을 목도한 이후로, “살아 있는 동안은 이웃과 나누겠다”라는 맹세를 이어 왔습니다.


정자씨는 말보다 조용한 몸짓으로, ‘사는 법’이란 결국 품위를 잃지 않는 일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고통과 상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자들의 초상입니다. ‘상실’은 그들에게 전환의 문턱이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밀어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와 대화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이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이 되어가는가”를 묻는 태도.

그 질문의 반복 속에서, 그들은 상처를 ‘의미의 장소’로 변환시켰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회복 담이 아니라, 존재론적 전환의 언어입니다. 그들의 말은 상실의 서사를 넘어, 존재가 자기 자신을 새로 해석하는 ‘사건(Event)’이 되었습니다. 이때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여는 열쇠가 됩니다. 그들의 담화는 “잃음”을 “있음”으로 바꾸는 존재의 변주였던 것입니다.

절망의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그들은 낡은 껍질을 벗은 늙은 독수리처럼 부리와 발톱을 부수고 다시 날았습니다. 그 고통은 파괴가 아니라 정화의 통과의례였으며, 그 너머에는 새로운 결의 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드디어 말합니다.

“고통은 의미를 향한 시작이었다.”

이제 그들의 삶은 완결이 아니라, 통합의 여정 위에 서 있습니다. 잃음 속에서 ‘다시 있음’을 배우고, 상처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며, 고통 속에서 ‘성숙’을 길어 올린 사람들. 그것이 바로 여든 이후의 삶이고, 상실을 통과해 존재로 거듭나는 또 하나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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