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나이듦의 언어를 찾다

by 유정인

2. 희망이 없는 일은 없어,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여든 이후의 삶은 때론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신체는 점차 약해지고, 기억력과 일상 적응력은 이전만큼 쉽지 않으며, 세상은 빠르게 변해 자신이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러한 노화를 단순한 생리적 변화로 보지 않고, ‘노쇠(frailty)¹²’라는 관점으로 나누어 관리해야 할 영역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노화와 삶의 기능을 위협하는 상태를 구분함으로써, 노년기의 삶을 더 세밀히 이해하고 지원하려는 시도입니다. 청자씨, 학산씨, 철수씨, 정자씨 역시 오랜 병원 치료와 건강관리 중에 이러한 현실을 몸소 경험하며 삶의 균형을 조율하였습니다.


청자씨의 경험은 받아들임과 희망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살다 보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도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억지로 바꾸려 들지 않고 거기서 길을 찾으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해요.”

젊은 시절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 속에 마음의 여유를 찾기 어려웠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속도를 스스로 조율합니다. 청자씨에게 받아들임은 단순히 세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고 현실 속에서 가능한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변화가 점차 그녀의 삶을 밝히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졌습니다.


학산씨는 음성 장애로 오랜 시간 사회와 단절되어 깊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상 제작과 온라인 학습을 시작하면서 점차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처음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두려웠지만, 해보니 가능하더라고요.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내가 받아들이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 희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싹트는 것이며, 받아들임의 과정에서 비로소 가능성이 열립니다. 실제로 학산씨는 새로운 기술과 배움으로 세상과 연결되면서 삶의 만족과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철수씨의 이야기는 받아들임이 행동과 연결될 때 삶의 의미가 다시 빚어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는 배우자를 잃은 후 깊은 외로움 속에 있었지만, 봉사활동을 시작하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희망이 되더라고요.”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활동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 된 것입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그의 내면에 힘과 의미를 새겼습니다.


용선씨는 자녀와의 갈등과 단절로 절망을 경험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희망을 찾았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붙잡고 있으면 소용없더라고요. 그냥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어요. 그게 희망을 보는 길이었죠.”

그녀는 현실을 인정하고 가능한 행동을 선택하는 지혜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키웠으며, 그 경험을 자녀에게 전하며 삶의 방식과 지혜를 물려주고자 하였습니다.


정자씨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사건들을 마주했지만,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현실 속에서 가능한 것에 집중하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받아들이고 나니, 그제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세상에 보답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삶의 방향이 언제나 일정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길이 열리고 희망이 피어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내러티브를 종합하면, 여든 이후에도 삶은 여전히 변화와 성장의 공간을 품고 있으며, 희망은 외부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명확히 바라볼 때 비로소 삶의 길이 열리고, 작은 실천 속에서 희망이 자라납니다. 받아들임은 소극적인 수용이 아니라, 능동적인 선택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삶의 기술이며, 여든 이후의 삶에서 희망을 살아내는 핵심 언어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일은 없어.’


이 말은 노년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가장 깊은 지혜였습니다. 삶은 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 길을 받아들이는 순간 희망은 다시 살아나고, 우리는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멀리 있는 막연한 그림자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두려움이 스며들었고, 때로는 쓸쓸함이 마음을 스쳤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살아 있는 지금을 온전히 마주한 성찰과 감사, 남은 시간에 대한 책임감이 그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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