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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Mar 14. 2023

나의 몸 마주하기

바디워크숍 후기

지난달, 다정한 연구소에서 열린 온라인 바디워크숍을 진행했다.  처음 인터넷에서 ‘한 번도 여성을 위한 성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여성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문구를 보고 잠시 멈추었다.  성인이 되어서 가끔 했던 생각 이었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봤더라면 좋았을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교육은 부재하다시피 하는 실정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나마 낫겠지 싶었던 유럽 국가들에서도 여성이 성교육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실 안에서 찰나처럼 이뤄진 성교육은 남학생 위주였고, 그나마도 하나의 그냥 ‘쉬어가는 시간’ 이자 끝나고 나면 장난이나 칠 수 있는 시간 정도였다.


성에 대해 무지했던 나의 20대를 돌아보며, 지금이라고 크게 나아진 것 없는 지금의 나를 보며 바디워크숍 참여를 결정하였다. 3주간 금요일 저녁, 회차마다 4-5명의 소수 인원이 온라인에 모여서 함께 ‘불금’을 보냈다. 첫 번째 회차의 주제는 ‘몸 마주하기’였다. 스스로, 혹은 타인이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 몸에 대한 경험과 감정을 돌아보았다. 그 감정을 들여다본 후 외형을 넘어 기능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가장 먼저 답한 질문은 ‘거울에서 내 몸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어딜 보나요?’였다.


나는 어렸을 때 2차 성징이 남들보다 조금 빨랐다. 또래 아이들보다 먼저 나온 가슴이 나는 창피했다. 이 감정 또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받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나는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 주먹으로 가슴을 때렸다. 그 결과로 가슴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흔히 말하는 ‘새가슴’에 머물렀다. 이는 고스란히 20대에 나에게 큰 콤플렉스를 안겨주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 야생이 펼쳐졌다. 당시에는 지금만큼 민감하고, 의식이 발달된 시절이 아니었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서로의 신체 부위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평가의 화살을 날렸다. 당시 유행하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지금은 범죄자가 된 참가자가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를 불러 그 노래가 한참 유행하고 있었다. 노래 가사중 ‘작은 가슴을 모두 모두어~’하는 부분을 내 앞에서 남자 선배들은 웃으며 부르곤 했다. (물론 나도 만만치 않은 대응을 했기에 억울하지는 않다.) 




그렇게 나는 20대 내내 작은가슴 콤플렉스를 지닌 채 지냈다. 20대 초반에는 열심히 ‘가슴뽕’을 채워 다니기도 했지만 몇번 하다 보니 그건 ‘쿨하지 않다’고 느꼈다. 20대 후반이 되자 그냥 ‘없는 대로 살자.’라는 마음으로 작은 내 가슴마저 조금씩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이런 나의 가슴콤플렉스를 잊게 해준 것은 다른 신체 부위에 대한 집착이었다. 20대 후반, 약간의 식이와 약간의 운동을 병행하면서 식스펙이 생겼다. 워낙 마르고 근육이 없지는 않았던지라 11자 복근은 쉽게 생겼었는데, 식스펙이 생기니 당시에는 복부에 집착을 하고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거울을 볼 때 가장 먼저 가는 시선은 가슴에서 저절로 복부로 옮겨가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운동도 예전처럼 하지 않고, 건강한 식단을 노력하고는 있지만 다이어트 때문은 아니기에 예전 같은 복부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전히 배가 볼록 나오면 한 끼를 굶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체중계 위에 발을 올린다. 하지만 ‘바디 포지티브’라는 슬로건아래 또 다른 압박을 주고 싶지는 않다. 있는 그대로의 몸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되, 그렇지 못한 날의 내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싶다. 


두 번째 시간은 ‘성 마주하기’ 시간이었다. 여성의 생식기를 들여다보고 각각의 이름과 기능들을 알아보았는데, 놀랍도록 아는 것이 적은 나를 발견했다. 미리 배송받은 아기 상어 클레이로 우리는 각자의 생식기를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클레이 사장님은 아기 상어 클레이가 이렇게 쓰이실 줄은 꿈에도 모르시겠죠.”라고 웃으며  ‘생식기 토크’를 나누었다. 여기에 적지는 못하지만, 한 분께서 ‘이건 아무한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인데요..’라며 나눠준 이야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나중에는 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시간. ‘여성의 몸으로 겪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월경’, ‘여성 질환’ 등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하였다.  내가 공유한 이야기는 ‘나의 초경을 기억하나요?’에 대한 답변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한참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화장실을 갔는데 팬티에 피가 묻어있었다. 나는 언니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이게 초경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큰언니의 초경 때 엄마가 딸 셋을 불러 앉혀놓고 ‘언니가 여자가 됐다.’며 조촐하게 ‘축하’를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말하기 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창피해서 영원히 숨길 수 있다면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생리대가 필요했으니 저녁밥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엄마, 나 밑에서 피가 나와.” 그 말을 들은 엄마는 한숨을 쉬며 “아휴, 또 돈 들어가게 생겼네.”라고 말하였다. 안 그래도 수치스러웠던 나는 더한 수치심을 느꼈다. 아직도 이 이야기를 밖으로 꺼낼 때 눈물이 찔끔 나오는 걸보면 아마도 나의 내면의 상처가 덜 치유된 것 같다. 하지만 먹고살기 힘들었던 당시의 부모님을 지금 원망하면 뭐 하겠나 싶다. 이제 그 마음의 책임은 나인 것을. 이날 다른 분들의 위로와 더불어 마지막 활동이었던 ‘생리대 꾸미기’를 하였다. 나는 반짝이 풀로 생리대에 “I’ve got your back” 이라고 큼직하게 적었다. 어린 나에게 “내가 너의 뒤에 있어.”라고 응원과 위로의 마음을 담아. 


워크숍에 함께 하셨던 분 중에 몸이 조금 불편하셨던 분이 계셨는데,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 주며 어렸을 때부터 불편하였던 본인의 몸을 스스로가 얼마나 미워했는지, 사실은 지금도 온전하게 사랑해 주지 못하는 마음을 말씀하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내 삶의 투쟁을 보여주는 역사책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눈물이 조금 나왔다. 내 몸만큼 나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게 있을까, 앞으로는 나의 역사책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겠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체중계에 올랐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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