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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ul 24. 2023

[이탈리아]폼페이 최후의 날, 어느 방향으로 뛸 것인가

폼페이 당일 여행

군대에 가면 '복지부동' 자세를 배운다. 땅에 납작 엎드려 미동하지 않는 무사안일주의 공무원을 비꼬는 복지부동(伏地不動)과 발음이 같고 뜻도 비슷하지만, 군대에서의 복지부동은 핵공격 충격파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핵무기가 떨어진 방향을 등지고 땅에 엎드리되 배를 지면에 대면 안 된다. 충격파가 지면을 타고 복부로 전해져 내장을 터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양 엄지손가락으로 귓구멍, 약지로는 콧구멍을 막고 나머지는 눈을 덮어 보호한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린다. 순간적으로 압력이 커지며 눈과 고막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핵공격 시 대응방안 / 행정안전부

폭발 당시를 모면했다고 끝이 아니다. 핵무기의 무서운 점은 방사성 물질이 대거 분출된다는 것이다. 군대에선 '낙진'이라고 표현한다. 방사능이 차폐되는 대피소로 숨는 것이 최선이지만, 불가피할 경우 판초우의 같은 소재를 뒤집어써서 낙진이 신체에 닿는 것을 피해야 한다. 허나…


'이거 아주 쓸데없네?'


당시 훈련을 받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핵무기가 일단 터지면 폭발에 휘말리든 열풍에 재가 되든 방사능에 피폭되든 건물에 깔리든 비극을 피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동료들끼리 내렸던 결론은 '핵폭발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였다. 애써 도망치면서 고통 속에 죽느니 편안하게 일거에 가자는 것이다.

2000년 전 폼페이 사람들은 어땠을까?


서기 79년 폼페이. 사람들은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폼페이는 번화한 곳이었다. 벽돌로 지은 집과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빵을 사고 생활용품을 구입했다. 장을 보다가 배가 고프면 화덕에서 바로 조리해 낸 따끈한 음식과 술을 먹었다.


세탁소도 있었다. 당시 인류에게 화학제품을 만들 능력이 없었기에 이들은 천연 암모니아인 인간의 오줌을 항아리에 모아 옷을 빨았다. 공중목욕탕은 살롱 기능을 했다. 일과를 마친 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술과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고 한다. 내부 벽화와 장식도 근사했다.

(좌) 폼페이의 상수도 시설. (우) 폼페이 거리 / 직접 촬영
벽돌로 지은 집과 상가들  / 직접 촬영

폼페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상징도 활용했다. 개를 기르는 집이나 가게는 입구에 '개조심' 표시를 해놨다. 그리고 도시 곳곳엔 남근 모양이 조각돼 있다.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홍등가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번영의 상징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길도 잘 닦여 있다. 인도는 찻길보다 높게 만들어놨다. 횡단보도는 큰 돌을 징검다리처럼 설치해서 구현했다. 돌을 띄엄띄엄 놓은 이유는 마차 바퀴가 지나갈 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차를 묶어 주차하는 데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리도 뚫려 있다. 도로 중간중간엔 흰색 돌이 있는데 가이드 말에 따르면 어두울 때 길을 찾기 쉽도록 반사석 용도로 박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도로 끝엔 막다른 길임을 알리는 표지석도 있다.

(좌) 폼페이의 횡단보도. 사람들은 큼지막한 돌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갔다. 돌 사이 공간은 마차의 바퀴가 지나가는 길이다. (우) 길이 끝났음을 알리는 돌 / 직접 촬영
(좌) 마차를 주차할 때 줄을 끼워 묶는 구멍 (우) 도로 중간에 밖힌 하얀 돌은 반사판 용도로 알려져 있다 / 직접 촬영

8월 24일, 평화는 산산이 깨졌다. 베수비오 화산(Vesuvius)은 이틀에 걸쳐 시뻘건 용암과 시커먼 화산재를 뿜어냈다. 화산과 10km 정도 거리에 있던 폼페이 사람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광경을 지켜봤을 것이다.


폼페이의 원형이 2000년 동안 보존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화산재가 도시를 일거에 뒤덮은 탓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여간 짓궂은 존재가 아니다. 시민들의 마지막 순간도 남았다. 화산재를 파내면서 텅 빈 공간들이 여럿 발견됐는데, 이곳에 석고를 채워보니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시체가 썩고 없어지면서 생 공간이다.


폼페이 사람들은 화산 폭발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화산이 무엇인지,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잘 알고 있었을까? 모르고 있었다 한들 집채만 한 화산쇄설류가 무서운 속도로 쏟아지는 것을 보고 겁먹지 않을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의 본능이다.

사람들은 화산 반대방향으로 내달리다, 혹은 집에 숨어있다가 스러져갔다. 일부는 몸을 웅크린 채 입과 코를 틀어막은 자세로 죽어갔다. 호흡하면서 열풍을 들이켜 고통스러워 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산 폭발을 신의 노여움으로 여기고 기도를 올린 이도 있었다 한다.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남녀도 있었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떠올렸을까. 살아야 한다는 생각? 아니면 지난날에 대한 회한? 그것도 아니면 연인에 대한 연민? 그들은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라 천국에서 내세의 삶을 이어갔을까, 아니면 불교 윤회사상에 따라 다음 생에서 재회했을까?


내가 만약 79년 8월 24일의 폼페이에 있었다면 어느 방향으로 내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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