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베트남 하노이 여행 중 들렀던 바(Bar)다.
밴드가 한쪽에서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명곡 <Just The Two of Us>를 공연하고 있었다. 벽 선반엔 고급 양주들이 늘어섰고 바텐더들은 능숙한 손동작으로 칵테일을 제조했다. 직원은 제법 유창한 영어로 주문을 척척 받아냈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현지인 손님들은 술과 음악을 즐기며 아이폰에 이날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테이블마다 인사하며 가게가 맘에 드느냐고 묻는데, 차림새에서 제법 부티가 났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라, 그런데 여기 사회주의 국가 아닌가? 부자가 있을 수 있나?'
사회주의는 국가가 경제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사회적인 평등과 균형을 추구하는 이념이다. 이론상 자유주의와 대척점에 있지만, 현재 엄격한 사회주의 국가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대부분 어느 정도 시장 경제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베트남은 1986년부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채택했다. 값싼 노동력을 장점으로 최근에는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정보통신(IT) 생산기지로 부각되고 있다. 2022년 베트남의 휴대폰 수출 규모는 60억달러(약 7조7000억원)에 육박한다. 반도체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게 베트남은 점점 중요한 나라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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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1978년 모스크바 주도의 중앙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원리를 도입했다. 중국식 사회주의인 '개혁 개방' 정책이다. 그는 농업을 시작으로 산업과 금융 분야에서 개인 기업을 육성했다.
골드만삭스 전 최고경영자(CEO)이자 미국의 74대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M. 폴슨 주니어는 덩샤오핑에 대해 "실용적인 지식과 의지, 무자비한 실리주의로 무장해 중국 국내총생산을 20년 동안 거의 두 자릿수에 가깝게 성장시켜 수억명의 국민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십수억 인구라는 거대 시장을 무기로 무섭게 성장해 지금은 G2 국가로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중국이 소련식 사회주의를 고수해 왔다면 과연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한국은행 자료반면 북한의 경제상황은 심각하다.
북한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전 산업을 통제한다. 북한이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이유는 분단 상황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남북은 이념을 이유로 갈라졌다. 일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김씨 일가는 남한과 체제를 선명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면 아무래도 체제 결속이 쉽지 않을 테니까.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어 국제사회를 적으로 돌리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스스로 생산해서 소비할 수밖에 없게 됐다. 좋은 말로 자립 경제고, 현실은 고립 경제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선 농업 말고 달리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엔 기후 여건도 좋지 않았다. 지난해 북한 국내총생산(GDP)은 -0.2%로 뒷걸음질 쳤다. 2019년 잠시 0.4% 반짝 회복했지만 이듬해 코로나19가 터졌다. 북한은 2020년 상반기 국경을 봉쇄했고 2020년 GDP는 4.5% 곤두박질쳤다.
북한의 2022년 대외교역 규모는 15억9000만달러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면서 전년도 7억1000만달러에서 2배 이상 늘긴 했지만, 그래봤자 대북제재 전 기간 연평균의 23.3% 수준밖에 안 된다. 게다가 교역의 대부분이 수출이 아닌 수입이고 이마저도 중국이 97%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한때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은 30배 가까이 벌어졌다. 지난해 북한 국민총소득은 36조7000억원인데, 북한 인구 2566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143만원이다. 1년 소득이 우리나라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한 달 치 월급보다 적은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늘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린다. 국제 비정부기구(NGO) '개발 이니셔티브(development initiative)는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북한 인구를 1040만명으로 추산했다. 전 세계에서 14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통일이 현실화할 때 남북한 경제 격차를 메꾸기 위해 엄청난 자원이 들어갈 것이다. 남한의 경제 수준이 하향 평준화될지도 모른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진통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과연 통일이 가능할까? 지금 상황을 보면 요원하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