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모바는 왜 유죄일까

ENA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본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

by 정준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7월 28일 법원에서 퇴근한 후 저녁 뉴스를 보며 소파에서 뒹굴거린다. 밤 9시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와 채널을 40번으로 돌린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보는 날. 이날 에피소드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주제다. 전날 '어린이 해방군 사령관' 에피소드에 비하면 좀 더 현실적인 내용이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양정일은 IQ 65의 지적장애인 신혜영과 모월 모일 숙박업소에서 성관계를 갖는다. 이후 누군가의 고발로 양정일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 4항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 혐의로 체포된 뒤 법정에 서게 된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더 엄하게 처벌된다. 형법상 준강간 형량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지만 성폭력처벌법이 적용되면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양정일은 이 사건에서 어떤 판결을 받게 될까?


해당 에피소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글에선 드라마에 제시된 내용만을 다루기로 한다.


죄의 성립 요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
①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형법」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④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


즉 양정일이 유죄가 되려면,

양정일은 신혜영이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할 수 없음을 이용해 간음했어야 한다. 이 같은 요건들이 충족되는지 여부는 법원에 제출된 증거를 통해 재판부가 판단한다.


재판에 나온 증거들


피해자 신혜영이 IQ 65의 지적장애인이라는 점은 다툼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리고 신혜영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진술한다. 증인대에 선 정신과 의사는 경찰 진술서에 나타난 신혜영의 진술이 일관적이고 신빙성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반면 반대신문에선 피해자가 사건 당시 성적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변호사가 "지적장애인의 경찰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성적자기결정권은 없었다고 보는 건 모순 아니냐"며 지적하자 의사는 "지적장애인이 스스로를 지키는 힘은 약하다는 걸 말한 것"이라고 답한다. 즉 둘은 별개로 따져봐야 할 문제이고, 지적장애인에겐 성폭력과 일반적 성관계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일리있는 말이다.


또 재판 중 양정일이 과거에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다른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비슷한 행각을 벌였다는 사실이 제시된다. 또 양정일은 신혜영에게 신용카드를 만들도록 하고 데이트 비용을 전가시켰다는 의혹도 받는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양정일의 유죄가 입증될 것만 같다.


한편 변호인들은 양정일과 신혜영이 서로를 '혜모바(혜영이 밖에 모르는 바보)' '양모바(양정일 밖에 모르는 바보)'라고 칭하며 대화를 나누는 커플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화면을 증거로 제시한다. 사건 이후에도 일반적인 연인처럼 대화하는 모습을 볼 때 두 사람의 성관계는 합의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정적으로 피해자 증인신문에서 신혜영은 양정일이 처벌받길 원하지 않으며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진술한다. 이로써 판세가 피고인 측으로 기우는 듯해 보였다.


그런데 검사의 반격이 이어진다. 성관계 후 신혜영이 손등을 긁어 상처를 낸 사진을 공개했다. 즉 원하지 않던 성관계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자해했다는 논리인데, 신혜영은 괴로워하며 증인신문을 그만하겠다고 한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린다.


배심원들은 무죄 평결했는데…판사는 왜 유죄 판결?


해당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극 중에선 배심원들이 양정일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린다. 구체적으로 배심원들의 평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혜모바와 양모바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며 성관계는 합의 하에 이뤄졌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장은 혜모바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다. 그런데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리는 게 가능할까?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46조 5항에 따르면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다(참고로 배심제인 미국·영국 등에선 평결을 따라야 한다).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릴 때 피고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뿐이다(동법 제48조 4항).


배심원의 평결이 감경 사유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어쨌든 재판부는 양정일에게 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왜?


지적장애인 상대 성범죄 사건에선 진술의 신빙성, 사건 당시 항거불능 여부 판단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재판부의 판단 근거가 나오진 않지만, 합의하에 성관계했다는 신혜영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나 신혜영이 당시 성적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을 것이라 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양정일은 제대로 재판 받은 것일까?

아님 괘씸죄로 처벌받게 된 억울한 사람일까.


우선 현직 판사에게 문의해봤다. 판사는 자신이라면 피해자의 진술을 좀 더 비중 있게 고려했을 것이라면서도,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판결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거라며 말을 아꼈다.


이미선 동양대 경찰범죄심리학 교수가 2020년 7월 발표한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 특성과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선고된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 하급심 판결 전체 716건 중 무죄는 6.0%, 자유형 53.5%, 집행유예는 36.7%로 나타났다. 100명의 피고인 중 4명만 무죄를 받는단 얘기다.


한편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된 성범죄 사건 무죄율은 2020년 기준 48%에 달한다(대법원 자료). 이것만 보면 장애인 대상 사건에 다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형량 측면을 보자. 판사는 양형에 고려할 요인을 따져 기본·감경·가중 영역 중 하나를 선택하고 이후 구체적인 형량을 정하는데, 장애인 대상 강간은 기본 영역이 징역 72∼108개월, 감경 영역은 48∼84개월, 가중 영역은 96∼144개월로 설정돼있다.


그런데 이 교수가 2020년 10월에 발표한 ‘지적장애인 대상 성폭력 사건의 양형과 감경 사유’를 보면 기본 영역의 평균 형량은 65.07개월이었고 감경 영역은 41.76개월, 가중 영역은 89.6개월이었다.


신혜영의 처벌불원 의사가 있었으니 해당 사건이 감경 영역에 해당한다고 보면 양정일은 평균(41.76개월=3.48년) 보다 낮은 형량(2년)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다시 질문. 양정일은 억울하게 옥살이하게 된 것인가, 아니면 재판부의 지나친 재량으로 가벼운 형을 받은 것인가. 명확하게 예/아니오로 가를 순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이 2심 3심까지 가는 것이고 연구도 진행되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이 실제 사건을 대리한 「나는 왜 그들을 변호하는가」의 저자 신민영 변호사는 책 166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민은 여전했다. 진술 번복이 있어도 심지어 피해자가 나서서 피고인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말해도 유죄라면 도대체 피고인이 무죄를 받을 수 있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