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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Nov 30. 2023

비례대표제, 민심과 권력 중 무엇을 따를 것인가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서 한 말이다. 당 안팎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이 대표가 이에 반대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는 내년 4월로 다가온 22대 총선의 규칙을 병립형/연동형/준연동형 등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핵심만 말하자면 '비례대표 47석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다. 


이 대표가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제도 별로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 따져보자.


병립형은 거대 양당에 유리한 룰


병립형이란 지역구 253석을 지역구 투표로 정하고, 비례대표 47석은 정당 투표로 나누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처럼 거대 양당에 유리한 편이다. 


우리는 지역구 의원을 선택할 때 지지 정당도 고려하지만, '과연 이 사람이 우리 지역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느냐' 여부도 함께 따진다. 그렇다보니 힘이 약한 군소정당보다는 거대 정당의 후보자에게 표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


결국 가장 큰 파이인 지역구 253석을 거대 양당이 나눠 갖고, 나머지 47석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눠야 하니 군소정당에게는 불리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양당제를 공고화해서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연동형은 군소정당에 유리한 룰


연동형은 비례대표제를 지역구 의석과 연동한다는 의미다.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300석을 우선 나눈다. 그런데 지역구 투표 결과가 그에 못 미친다면, 모자란 만큼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식이다.


따라서 군소 정당은 정당 득표율에 가깝도록 비례대표를 가져갈 수 있다. 즉 연동형은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선호도를 비교적 잘 반영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민심에 비례해 권력을 나누는 제도라는 평가다.


변동형/연동형에 따라 차이 많나?


설명이 선뜻 이해가 안 된다면, 숫자로 보자. 변동형을 따랐던 지난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정당 투표에서 7%가 넘는 지지를 얻었다. 연동형이었다면 300석의 7%인 21석을 가져갔겠지만, 실제 정의당이 차지한 의석은 6석에 불과했다. 어마어마한 차이다.


양당 정치의 폐해를 시정하자는 차원에선 연동형이 강한 당위성을 갖는다. 하지만 거대 양당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끈끈한 브로맨스를 보인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병립형을 원한다.


하지만 비판 여론을 언제까지고 무시할 순 없다. 그래서 21대 총선을 4개월 남짓 앞두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모자란 의석수의 100%(연동)가 아닌 50%(준연동)까지만 비례대표로 채우자는 거다.


하지만 이는 쇼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을 창당하고, 민주당도 더불어시민당 만들어냈다. 이른바 '위성정당'이다. 그 결과 민주당(163석)과 더불어시민당(17석)이 총 180석을, 미래통합당(84석)과 미래한국당(19석)이 총 103석을 차지했다.


국회가 법을 만들고 법망을 피해 가다니, 이런 촌극이 어딨나 싶다.


이번 룰은 어떻게 정해질까?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각 정당의 셈법은 복잡하다. 그중에서도 선거제도 개편을 공언했던 민주당 고민이 제일 크다. 보완 없이 준연동형을 유지하면 위성정당 문제가 반복될 게 뻔하다. 그리고 국민의힘에게 의석 수에서 밀릴 거란 계산도 나온다. 


그렇다고 병립형으로 회귀하면 '이럴 거면 왜 바꿨느냐'며 유권자들이 손가락질 할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내부에선 '병립형 반대, 위성정당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탄희 의원은 이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겠다며 스스로 험지 출마를 약속했다.


신당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연동형 비례제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최근 자신의 북콘서트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면 제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장관도 (본인은 부인했지만) 합세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이들은 각자 팬덤이 많기 때문에, 정당 투표에서 많은 표를 받아 생각보다 쏠쏠하게 비례대표를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테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어쩌나?


대안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시된다. 국회의원 정수를 권역별로 인구 비례에 따라 나누고, 그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누는 방식이다. 이 경우 민주당은 TK에서, 국힘은 호남에서 당선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는 거다.


하지만 이 제도도 군소정당이 소외되는 부작용을 해소하진 못한다. 거대 양당 의석 수를 제한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양당이 기득권을 흔쾌히 놔줄 지는 미지수다.


규칙을 어떻게 정하건, 국회의원이 법망을 피해가는 꼼수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국회의원이 법의 사각지대만 찾아 다니는 기술자 집단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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