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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반도체 산업

by 정준영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인공지능(AI) 시대의 개막을 알린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엔비디아의 GPU가 AI의 핵심 연산 장치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엔비디아의 주가는 어마어마하게 뛰었다. 지금은 데이터센터 AI 연산 시장의 대부분을 엔비디아가 점유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AI 컴퓨팅 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나서며, 엔비디아의 칩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6월 3일 대선을 앞두고 너도나도 AI 시대를 이끌겠다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반도체는 단순한 웨이퍼나 칩이 아니라, 데이터의 수집·처리·저장 등 정보화 사회의 모든 기반을 이루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해 왔다. 1995년 삼성은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고, 이후 스마트폰과 카메라 센서의 발전으로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강대원 박사가 발명한 MOSFET은 전 세계 트랜지스터의 90~95%를 차지한다. 카이스트는 ISSCC(국제반도체회로학회) 논문 수에서 세계 1위로, 연구 역량에서도 독보적이다.


AI 반도체 경쟁도 치열하다. GPU는 학습(Training)에, NPU는 추론(Inference)에 특화되어 있다. 엔비디아의 CUDA 플랫폼은 개발자 생태계를 장악하며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반면, 리벨리온·딥엑스 등 한국 스타트업들도 추론용 AI 칩 개발에 도전하고 있지만, 5 나노급 칩 개발에만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현실과, 엔비디아의 압도적 투자 규모(블랙웰 개발에 10조 원) 앞에서 쉽지 않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AI 연산의 병목을 해결하기 위한 혁신도 활발하다. HBM 등 고대역폭 메모리, 광통신, 전력관리, 그리고 DRAM 내부에 연산 기능을 넣는 PIM(Processor-in-Memory)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진다. 삼성과 하이닉스는 이 분야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자본 투입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기술 축적과 인재의 순환이 필수적이다. 실리콘밸리처럼 자유로운 이직과 지식 전파가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지만, 한국은 동종업계 이직 제한 등 폐쇄적인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중국 창신메모리가 삼성과 하이닉스 출신 인재를 영입해 급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인재 유출의 위험성과 동시에 개방적 생태계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결국 반도체 산업은 기술, 인재, 생태계,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이다. 엔비디아가 당분간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겠지만, 한국은 메모리, 패키지, 전력, 광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인재의 개방적 순환과 집중 투자가 뒷받침된다면, AI 시대에도 한국 반도체의 위상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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