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원자력 발전은 과학적 토론보다도 주로 정치적 논란의 영역에 있었다. 과거 정권에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을 때 서울대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학생들을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원자력 전공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할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근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인공지능이 전기 먹는 하마로 등장하면서 원자력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미래 전략의 핵심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치적인 논란은 예전보다는 덜한 것 같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가 없다.
사실 원자력 발전은 생각보다 안전하다. 후쿠시마, 체르노빌 같이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사고 탓에 원자력에 대한 불안이 여전하지만, 현재는 안전 설계와 규제가 크게 강화됐다.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 확률은 항공기 추락이나 벼락에 맞을 확률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핵반응은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지구 내부의 맨틀 대류와 화산활동도 핵반응에 기인한다. 즉 지구 자체를 거대한 천연 원자로라고 볼 여지도 있는 것이다. 방사성 붕괴로 방출된 에너지는 지구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원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서만 안전하게 운용할 의지가 있을 때의 얘기다. 나치의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원자 분열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연구는 이제 최소한의 노력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생성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독일인이 다른 민족들보다 우위를 차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다"라고. 즉 어느 문명이든 우라늄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연합군의 합동 공격으로 나치가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구상엔 핵탄두가 1만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제든 인류가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것이 인류가 아직까지 외계인과 접촉하지 못한 이유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외계 문명을 만날 정도가 되려면 우주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해야 한다. 그 정도 문명이면 이미 우라늄을 이용하는 단계를 지났을 것인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쥐게 된 문명이 서로의 탐욕을 위해 결국 핵전쟁을 일으켜서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라늄 장벽'이다.
그런데 지금 인류는 이보다 더 시급한 장벽에 먼저 부딪혔다. 이를 '기후장벽' 또는 '지구온난화 장벽'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믹스에서 원자력 발전을 적절히 운용하는 묘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SMR(소형모듈원자로)이 주목받는다. SMR은 소형화·표준화된 공장에서 제작되기 때문에 건설 단가가 낮고 안전성이 매우 높다. 방사성 물질의 양도 적어 사고 시 피해가 제한적이며, 실제로 미국 뉴스케일(NuScale)은 인구 밀집 지역 내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SMR 기술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청정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석탄화력 대체, 데이터센터, 산업열 공급, 해상 운송 등 다양한 융합 적용이 가능하다. 지구와 인류가 존속하기 위해선 원자력의 바른 이해와 과학적 접근이 더욱더 중요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