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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 장벽' 뒤에 '기후 장벽'

당신은 외계인을 본 적 있는가?

by 정준영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주의 과학 문명에 대해 몇 가지 생각 거리를 제시한다. 광활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지구에만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분명 인류보다 더 발달한 문명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문명이 발전해도 빛의 속도를 극복할 순 없고, 따라서 시간여행 또는 순간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증거 중 하나로 꼽힌다.


시각을 좀 틀어보면 그 정도로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 문명은 필연적으로 멸망한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과학계 일부에선 그 원인이 '우라늄 장벽'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봤듯이, 인류가 원자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인류 멸망의 시계는 확 앞으로 당겨졌다. 어느 과격한 국가나 정치 집단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핵 버튼을 누르게 되면, 핵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지구가 황폐화될 거란 이론이다.


그런데 류츠신의 소설 「삼체」에서 그리는 미래는 조금 다르다. 지구가 외계인의 침공으로 멸망하게 될 거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삼체인들의 운명을 보자. 삼체 행성엔 태양이 3개 존재한다. 이 조건에서 천체의 운동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그려지고(소위 '3-body problem'), 이 때문에 삼체 행성은 순식간에 아주 덥거나 추워져서 문명이 일순간에 멸망하곤 한다. 그러다가 상대적으로 기후가 온화한 항세기엔 문명이 부활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 극한의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삼체인들은 행성 전체가 하나의 단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되자 과감하게 삼체 행성을 버리고 지구로의 이주를 결정, 우주여행을 시작한다.


물론 지구가 속한 태양계엔 항성이 하나뿐이고 삼체 행성과 달리 천체의 운동은 규칙적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더할 나위 없이 생명체가 살기 좋은 곳이다. 달리 말하면, 인류가 욕망을 주체할 수 없고 탐욕을 얼마든지 부릴 수 있는 조건이다. 인간은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 더 편하게 살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화석연료는 연소 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로서, 지구의 열이 우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우리는 초기에 이것을 '지구 온난화'라고 불렀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었고, 어찌 보면 더 이상 불필요한 수준까지 문명을 과하게 발전시켰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는 차곡차곡 대기에 쌓였고, 지구온난화는 '기후위기'로 발전했다. 지구촌은 전에 없던 기상 이변을 겪으면서 신음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짧아졌다. 아열대성 기후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한국에서도 스콜이 내린다. 겨울엔 기습폭설로 온 도로가 마비되고 있다.


현재 인류가 문명의 다음 단계로 여기고 있는 인공지능(AI)과 그에 필요한 대량의 데이터센터는 지구를 태우는 거대한 아궁이가 될지도 모른다. 생성형 AI는 일반적인 웹 검색보다 수십 배까지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이러한 AI 서비스를 운영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국가 단위의 에너지 수요 증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냥 가만 놔두면 멀쩡할 지구를 인구의 욕망이 병들게 만들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종의 멸망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핵전쟁에 따른 우라늄 장벽보다 '기후장벽'이 더 현실적인 위기일 지도.

기후대응 강제기구의 필요성


그럼 삼체인들처럼 지구인들도 기후장벽에 대응하기 위해 하나의 단위로 똘똘 뭉쳐야 하는 것 아닐까? 현 국가주의 체제에서 그렇게까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기후위기 관련 강제력을 갖는 기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지구엔 이런 조직이 없다. 기후위기에 대해선 UN 산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연 1회 개최되는 COP(Conference of the Parties) 회의가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파리협정으로 각국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국가 자율 감축목표) 제출, 보고가 의무화됐지만 법적 강제력이나 제재 수단이 없고 목표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실질적 처벌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지난 7월 23일 모든 국가가 과학적으로 타당한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취해야 할 법적 책임이 있다고 밝힌 것은 고무적이다. 파리협정 1.5도 목표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법상 불법 행위가 된다고 한 것이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 국가들의 법적 의무를 명확히 한 역사적인 자문 의견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구속력이 없고 처벌도 불가능한 권고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일부 지역, 블록 단위 강제 조치는 이뤄지고 있다. 유럽연합(EU) 등 일부 지역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배출규제 등으로 자체적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IMO(국제해사기구)는 해운부문에 구속력 있는 넷제로(Net-Zero) 기준을 적용 시작한다. 그럼에도 지역적·산업별에 그치는 한계가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나 유럽의 CBAM이 실상은 타국에 무역 장벽을 세우는 '녹색 보호주의'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오히려 죄수의 딜레마 관점에서 보면, 각 국가는 탄소 감축을 충실히 시행하는 것보다 탄소를 배출하는 편이 더 이득인 상황이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 내부의 '분배적 정치'는 이를 악화시킨다. 분배적 정치란 정치인이 지지를 얻기 위해 국가의 자원이나 정책적 비용을 특정 집단에게 배분할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말한다.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당장의 난방비 인상이나 산업계의 반발을 피하고, 표를 얻기 위해 탄소 감축보다는 탄소 배출 노선을 취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아라.


온실가스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이산화탄소 기체는 전 세계 대기로 퍼져서 기후를 바꾼다. 따라서 한 국가만의 노력으론 효과가 미진하다. 이런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전 세계적 정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임승차자는 앞으로도 만연할 수밖에 없다. 급기야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하는 지도자까지 등장했다. 더 편하게 살고 싶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장벽을 더 높게 쌓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제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와 그 취지를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G7, EU 등을 중심으로 기후클럽을 만들어서 감축 목표와 탄소세 이행을 공동 약속한 뒤 미이행국에 무역 제재, 관세, 투자 제한 등 실질적 경제적 불이익을 부과해 실효성을 챙기고 집단 규율 체계로 확장하자는 논의가 있다. 또한 글로벌 기후재판소를 신설해서 국가별로 감축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판결과 법적·경제적 제재를 부과하자는 안도 있다. 시민사회·법학자들은 기후위기 관련 “국가 책임의 실질 구제” 및 “손해배상” 기능까지 포함하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강제기구가 장기적으론 인류의 번영에 더 도움 될 수 있다. 기후대응은 초기에만 비용이 들뿐 기술이 발전하면 이익으로 돌아온다. 강제기구는 '정권 등이 바뀌어도 정책은 변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시장에 줌으로써,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녹색 투자를 꾸준하게 촉진하는 최고의 경제 부양책일 수 있다. 자본과 기술이 녹색 산업으로 쏠리게 만들고, 이는 다시 저탄소 인프라 구축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강제력이 지속될수록 사회 구성원들은 새로운 규범에 적응하고, 저항 비용보다 순응 이익이 커지는 구조가 형성되어, 시간이 갈수록 더 적은 통치 비용으로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기후 대응이 가능해지는 '자기 강화적 선순환'에 진입하게 된다.


신화 속 율리시스는 사이렌의 치명적인 노랫소리를 듣고도 살아남기 위해, 선원들에게 자신의 몸을 돛대에 단단히 묶으라고 명령했다. 유혹에 홀려 미친 듯이 결박을 풀려고 할 미래의 자신을 알았기에, 이성이 멀쩡할 때 미리 '풀 수 없는 구속'을 설정한 것이다. 지금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이 '율리시스 계약(Ulysses Contract)이다. 당장의 경제적 편안함과 선거 승리라는 사이렌의 노래는 너무나 달콤해서, '자발적 의지'나 '느슨한 협약'만으로는 결코 저항할 수 없다. 인류 문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마지막 열쇠는, 우리의 욕망을 통제할 '우리 자신을 향한 강제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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