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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un 19. 2022

[스페인]태양의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1일 차

2022년 6월 11일부터 18일까지 다녀온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후기를 두서없이 끄적여보려 합니다.


#1일차


휴가까지 위협한 러시아


지난 3월 29일. 아내와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행 에어프랑스 왕복 항공권을 질러버렸다. 가격은 둘이 합쳐 210만원 정도. 코로나19로 여행이 금지됐다가 풀린 지 얼마 안 됐던지라 가격이 적당한지 판단이 어려웠지만, 향후 항공권 티켓팅이 박터질 거란 와이프의 판단에 두 눈 질끈 감고 결제했다.


가는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서 11일(토) 아침 9시5분에 출발해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1시간15분 동안 환승, 저녁 5시10분 스페인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오는 비행기는 18일(토) 바르셀로나에서 아침 9시50분에 탑승해 1시간25분 동안 환승, 다음날인 19일(일) 아침 7시10분에 인천국제공항 도착할 예정이었다.


요약하자면 연차 첫날 아침에 비행기를 타서 휴가 마지막 날 아침에 도착, 한나절 쉰 뒤 다음날 출근할 수 있는 최적의 계획이다.


그런데 이틀 뒤, 돌아오는 항공편 일정이 일요일 오후 1시10분 바르셀로나 출발-월요일 아침 7시10분 인천국제공항 도착으로 변경됐는 메일이 왔다. 이렇게 다녀오려면 대체휴무를 하루 써야 했기 때문에, 차라리 일정을 하루 단축해 토요일에 돌아오는 쪽으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우리는 여행 일정을 짜며 얼른 휴가가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한 5월 중순쯤 됐을까. 아무 생각 없이 메일함을 열었더니 한 달 전쯤 에어프랑스에서 'Important'라는 제목으로 보낸 메일을 발견했다. 코로나19와 러시아 영공 우회 등의 상황 때문에 항공 일정이 토요일 새벽 2시25분 인천 출발, 그다음 토요일 저녁 6시 인천 도착으로 바뀐 거다. 스페인 체류하는 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환승 대기 시간이 각각 5시간40분, 8시간25분 가량 생겼다.

말이 토요일 새벽이지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러 짐을 챙기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가야 했다. 또 돌아오는 날 토요일에 한국에서 잡아 놓은 약속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환승 대기 시간이 암담했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있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우리는 양호한 수준이었다. 하루 넘게 환승 대기하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좋은 점도 있었다. 긴 대기 시간 동안 파리 시내를 구경하고 오는 '레이오버'도 가능해 보였다. 물론 출입국 절차와 파리-공항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서너 시간 정도밖에 여유가 없지만, 그게 어딘가. 프랑스를 덤으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레이오버 일정을 촘촘히 짜 보기로 했다.


공항에만 와도 이렇게 좋다니


대망의 휴가 전날. 운 좋게 제시간에 퇴근해 집에서 체크 리스트를 다시 훑었다. 그리고 대한민국-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보며 야근하는 아내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내는 밤 9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향했다.

자정 즈음의 공항은 매우 조용했다. 우리가 이용할 항공사인 에어프랑스의 체크인 카운터에만 사람이 좀 있을 뿐이었다. 제도적으론 여행이 풀렸다곤 하나 현실은 아직 코로나19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다소 까다로운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시 백신 예방접종증명서를 필참 해야 하고 한국인은 국내 입국 시 PCR 또는 신속항원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런 절차 때문인지 온라인 체크인이 불가능했다. 에어프랑스에 문의한 결과 실제 코로나 규정으로 공항에서 온라인 체크인을 닫아두는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우리는 체크인 카운터 직원에게 여권과 예방접종증명서를 제출했다. 직원은 슥 훑어보더니 짐을 부치라고 한다. 그리고 다행히 좌석도 붙어있는 자리로 배정됐다.


*참고) 예방접종증명서는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도우미 누리집에 접속해 전자민원-예방접종증명서 메뉴로 들어가면 출력할 수 있다. 해외여행 시엔 영문 버전으로 뽑아야 함!


보안 검색대를 지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설레기 시작했다. 서양 사람들도 너무 반갑다. 정말 얼마만의 해외여행인지 모르겠다. 아내와는 코로나19 시작 직전인 2019년 말쯤부터 연애를 시작했던지라 신혼여행을 포함해 국내만 엄청 다녔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면세점 매장이 모두 문을 닫았다. 퇴근해서 바로 오느라 저녁을 못 먹어 매우 허기진 상태였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249번 게이트 근처 4층에 24시간 편의점과 스타벅스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빵과 커피, 물을 사고 의자에 앉아 주린 배를 채우며 SpTH(스페인 특별검역신고서)를 작성했다.


*SpTH 작성법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SpTH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 뒤 알맞게 정보를 기입하면 된다. 스페인으로 출발하기 3일 전부터 작성할 수 있는데, 항공편과 좌석을 기입해야 하기 때문에 체크인 이후에나 쓸 수 있다. 하지만 딱히 어려울 게 없으므로 비행기 타기 전에 해도 충분하다. 제출하면 QR코드가 발급된다.


의외의 마주침


비행기를 타러 탑승 게이트로 걸어가는 길, 웬 운동복을 입은 남자 무리가 무빙워크 반대편에서 오길래 쳐다봤더니 가슴에 파라과이 축구 대표팀 마크가 달려있다. 이날 2골을 넣은 알미론 선수도 있었다. 경기는 밤 10시 언저리에 끝났는데 곧바로 공항으로 온 모양이었다.


드디어 비행기 탑승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탔다. 기내에서도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지만 이미 익숙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비행기가 뜨고 한 시간쯤 뒤인 새벽 3시30분쯤(한국시간) 기내식이 나왔다. 메뉴는 닭고기에 감자가 곁들여진 요리와 빵, 샐러드, 케이크다. 맥주와 함께 먹는 기내식이 감개무량하다. 해외여행이 금지됐을 때 한반도 상공만 돌면서 기내식을 먹는 상품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영화 한 편 보고 자다 깨다를 몇 번 반복했는데도 도착까지 시간이 꽤나 남았다. 엉덩이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의자를 아무리 뒤로 젖혀도 누울 순 없는 이코노미 좌석의 한계다. 몇몇 승객들은 화장실 쪽 복도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거나 음료를 마시며 몸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2시간 전쯤 마지막 기내식으로 빵을 준다. 따뜻한 커피와 피자빵, 코울슬로 조합이 매우 훌륭하다. 프랑스 국적기다 보니 빵을 많이 주는 것 같다. 에어프랑스는 처음 타보는데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아내는 고등학교 때 불어를 전공했다며 승무원에게 계속 불어로 말을 거는데 그저 귀엽다. 승무원들은 대체로 중년 나이대로 보였다. 남자들은 머리가 훤칠하게 까졌고 여자들도 넉넉해 보였다. 키 크고 늘씬한 여성 승무원만 고집하는 일부 국가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CDG)에 도착했다. 해외 노선은 보통 2 터미널을 이용하게 된다. 공항이 워낙 크다 보니 한 터미널 안에서도 셔틀버스로 이동하기 때문에 잘 확인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또 같은 2 터미널이라도 근거리 비행편이 다니는 2F 터미널 면세점은 입점 브랜드 수나 종류가 적다. 즉 우리가 관심 있는 명품 브랜드는 장거리 비행편이 모인 2E 터미널에 있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는 5시간40분 뒤에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프랑스는 현재 대중교통과 교실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상태다. 서양 사람들처럼 바에 앉아 맥주와 함께 식사를 즐기고 싶었지만, 본격적인 즐거움은 바르셀로나로 미루기로 했다.


우리는 캐주얼해 보이는 일식당에 들어가 돈가스 카레 덮밥과 초밥, 롤을 샀다. 근데 가격에 비해 밥은 딱딱하고 고기는 눅눅하니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샤를 드골 공항 환승 구역에 갈 일이 있다면 일식은 피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케이크를 한 조각 먹었다.


드디어 도착한 바르셀로나

맑으면서 강렬한 햇살이 매력적인 도시


오후 5시16분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BCN)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입국 절차는 간소했다. 거의 짐만 찾고 바로 나온 것 같다. 코로나19 때문에 까다로울 줄 알고 긴장했는데 부질없었다.


공항 지하에서 아에로부스(Aerobus) 티켓을 사고 버스에 탔다. 아에로부스는 A1과 A2 노선 두 가지가 있는데 1 터미널을 이용하면 A1을, 2 터미널을 이용하면 A2를 타면 된다. 티켓을 신용카드로 살 때엔 PIN 번호(카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우리는 바르셀로나 IN/OUT 일정이기 때문에 왕복권을 구매했다. 티켓이 영수증처럼 생긴 종이로 나오기 때문에 잘 간수해야 한다. 착각해서 버리기 십상이다.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생각보다 덥지도 습하지도 않았다. 화사한 햇살에 가로수 나뭇잎 그림자가 산들거린다.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미세먼지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우리나라 날씨도 이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하늘이 탁해진 걸까.

아에로부스를 타고 한 30분 정도 후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인 카탈루냐 광장에 도착했다. 카탈루냐 광장과 람블라스 거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팬데믹이 언제였는지, 있긴 했는지 의심될 정도의 인파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피부가 하얀 사람 까만 사람 노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광장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이다.


한편으론 긴장도 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이탈리아 로마, 프랑스 파리와 함께 '소매치기 3 대장' 도시로 알려져 있다. 구글 맵스를 보며 숙소를 찾아가는 길, 스마트폰과 캐리어를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몸 앞쪽으로 돌려 멘 크로스백의 잠금장치를 수시로 확인했다. 너무 주변을 경계한 나머지 옆에서 아내가 한 말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첫날 숙소는 'Booking.com'을 통해 '호스탈 파리지엥'이라는 곳으로 잡았다. 잠만 자면 됐기 때문에 시설보다는 입지를 보고 골랐지만, 그게 전부였다. 외부엔 간판도 없이 상호를 적어 놓은 A4 용지 달랑 한 장 붙어 있었고, 객실 방문은 나무 재질인데 잠금장치는 문고리에 달린 똑딱이뿐이었다. 방 안엔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다. 1박 요금은 126유로로 한화로 18만원 정도. 사장이 경찰 신원 확인 용도라며 여권을 사진 찍어 갔는데, 꺼림칙하다. 대충 짐만 정리하고 바르셀로나의 저녁을 즐기러 나갔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식사는 'Santa Anna'라는 타파스 바에서 먹었다. 우리는 해물 빠에야(일종의 볶음밥)와 새우 감바스 그리고 레몬 맥주를 시켰다. 빠에야는 소금 간이 좀 셌지만 먹을 만한 정도였다. 우리나라 볶음밥처럼 기름진 느낌은 아니다. 고슬고슬하니 담백한 것 같으면서도 짭조름하다고 해야 할까. 감바스는 가격에 비해 양과 질이 매우 우수했다. 역시 타파스의 나라다. 음식들이 싱그러운 맛의 레몬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 이렇게 먹었는데 가격은 32.60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4만5000원 정도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살짝 싼 느낌이다.


2차의 민족답게 한 잔 더 마시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거리를 아무렇게나 걷다가 한 아이리시 펍에 들어갔다. 여행이 다 끝난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거지만, 당시 걸었던 방향은 인파가 모이는 레이알 광장과는 반대쪽이었다. 그래서인지 펍엔 여행객보다는 현지인이 대부분인 느낌이었다. 축구 유니폼을 입고 혼자 바 자리에 앉아 경기를 시청하는 손님도 있었다.

파울라너와 기네스 생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500cc는 족히 돼 보이는 컵에 맥주가 한가득 담겼다. 15년 전 독일에서 마셨던 1000cc짜리 '헬 매스(Hell mass)' 잔이 생각났다. '이게 유럽이지!' 하면서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허겁지겁 술을 마시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 사람들은 맥주를 차 마시듯이 홀짝홀짝 음미하고 있었다.


술을 추가 주문하는 손님도 거의 없었다. 한국이 생각났다. '원샷'하지 않으면 쏟아지는 눈초리, 술맛을 느끼기도 전에 내가 맛이 가버리는 혹독한 음주 문화. 생각해보면 한국인들은 술을 취하기 위한 도구쯤으로만 여기는 게 아닐까. 이런 자아성찰(?) 끝에 유혹을 뿌리치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영수증에 적힌 숫자가 놀랍다. 한 잔에 6유로. 우라 나라였으면 기네스 생맥주가 한 잔에 얼마였을까. 역시 유럽은 유럽이다.

술집에서 나오니 그제야 바르셀로나에 밤이 내려앉았다. 여름의 스페인은 저녁 9시30분은 돼야 해가 진다. 거리엔 어둠과 함께 좌판이 깔렸다. 부채나 기념품, 아이들 장난감도 있었지만 대부분 소위 '짝퉁' 제품들이었다. 상인들은 샤넬 루이뷔통 구찌 디올 등 명품 가방과 나이키 운동화를 주로 팔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품을 구매했다. 잘은 모르지만 유럽에 소매치기가 많다 보니 정품을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다.


람블라스 거리 곳곳에 즐비한 야외 테이블은 대부분 만석이었다. 거리 곳곳의 벤치나 연석에도 삼삼오오 모여있다. 사람들은 맥주나 샹그리아 또는 칵테일을 한 잔씩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며 바르셀로나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그중 일부가 되고 싶었지만 아직은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내일은 오늘보다 편히 바르셀로나를 즐길 수 있길 바라며 허름한 숙소에 고된 몸을 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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