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하기

Easing 함수와 로버트

나의 시선에서의 이야기

by maus x maus


어느 개발자의 이름을 늦게 알게 되었다


1999년 초여름, 밴쿠버에 살던 시기였다.

현지 신문인 밴쿠버 선 구인란에서 Monkeymedia라는 회사의 디자이너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회사 대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었다.

며칠 뒤, 나는 그 작은 사무실을 찾았다.


대표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플래시 개발자와 함께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플래시는 디자인과 기술의 최전선에 있던 도구였고,

그의 말 속에는 자부심과 불만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구인을 해도 지원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 개발자가 독일로 휴가를 간 사이 그의 이메일 계정을 확인할 일이 생겼다고 했다.

아웃룩을 열어본 순간, 대표는 어떤 패턴을 발견했다고 했다.


비영어권 이름을 가진 지원자들의 메일은 열어보지도 않은 채 모두 휴지통으로 직행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내 메일 역시 그 휴지통 속에 있었고,

그 덕분에 뒤늦게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대표는 이어 그 개발자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출근하고, 오후 4~5시면 퇴근하며,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는 사람이라 함께 일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었고,

나는 그 다음 날부터 출근했다.


마음속에 먼저 그려진 얼굴


그 개발자가 돌아오기 전까지,

대표는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곧 그를 내보낼 거라는 이야기,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자신의 파일을 요청하면 절대 응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 시절 회사는 대표와 그 개발자, 단 두 명뿐이었다.

그 말들을 계속 듣다 보니,

나는 그 개발자를 아직 만나보기도 전에 하나의 인물로 규정해 버렸다.


인종차별적이고,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이며,

협업이 불가능한 사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온전히 타인의 말로 만들어진 이미지였다.

실제로 내가 그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하루 반나절에 불과했다.


독일 휴가에서 돌아온 그는 대표와 면담을 한 뒤,

눈에 띄게 기운이 빠진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불러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작업이 담긴 CD를 내 이메일로 보내줄 수 있을까?”


그 순간,

대표가 반복해서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마치 각본처럼,

대표가 경계하던 상황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그때의 선택


지금처럼 오픈소스가 자연스러운 시대와 달리,

당시에는 코드와 디자인 파일 하나하나가

곧 회사의 핵심 자산이었다.


나는 그의 이메일 주소만 받아 적었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단정할 수 없다.


나는 그 회사에서 약 2년 6개월을 일했고,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알려준 것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대표와 더 오래, 더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보게 된 것들이 있다.

사실과 다른 말들,

사람을 돈의 가치로 판단하는 태도,

뒤에서 쉽게 흘러나오는 험담,

그리고 과장된 이야기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 개발자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오직 대표의 말만 들었고,

그 말 위에 판단을 쌓아 올렸을 뿐이었다.


그 개발자가 떠난 뒤,

대표는 그의 작업물을 보여주었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쉽게 구현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소박할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단순한 언어로 이런 걸 만들 수 있다고?


이름을 알게 된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문득 그 개발자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이름을 검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Robert Penner였다.


그는 Easing Function이라는 함수를 만들어 공개했고,

그것은 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플래시에는 기본 기능으로 탑재되었고,

플래시 컨퍼런스의 연사로도 초청되었다.


나는 대표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Penner가 대단한 걸 만든 것 같아요.”


대표는 잠시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이게 돈이 돼?”


그 말이 그의 정체성을 설명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이라도 응원의 마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뒤늦은 이해


2025년 12월.

Easing 함수는 여전히 수많은 소프트웨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그 움직임의 감각은

바로 그가 만든 함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한 사람을 너무 이르게 판단했고,

한 시대의 중요한 장면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늦게나마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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