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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어워드의 화려한 권위와 비즈니스 카르텔

by maus x maus

디자이너라면 디자이너로써 목표가 있을거다.

높게 평가되는 디자이너 업적, 대기업 소속, 디자인 어워드 수상, 자신만의 회사 만들기 등..


그 중 디자인 어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써본다.


연말연시가 되면 굴지의 대기업들이 쏟아내는 보도자료로 뉴스란이 도배된다.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20관왕 달성", "세계 3대 디자인 상 석권". 기사만 보면 국내 기업들이 전 세계 디자인 트렌드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든다.


왜 이렇게 상을 많이 받지? 혹시 상을 퍼주는 건가?



이 합리적인 의심은 사실이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디자인 어워드들의 화려한 명성 뒤에는, 기업의 인정 욕구와 어워드 주최 측의 수익 모델이 정교하게 맞물린 거대한 비즈니스 카르텔이 존재한다.




1. 나노 단위로 쪼개진 '승리'의 카테고리


일부 대기업들이 매년 수십 개의 상을 휩쓰는 비결은 단순히 제품이 압도적으로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그들이 '어디에' 출품했는지를 봐야 한다.


주요 어워드들은 수익(출품비) 극대화를 위해 심사 카테고리를 극한으로 세분화했다. 실제 수상 목록을 뜯어보면 흥미롭다.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 디자인뿐만 아니라 가짜 엔진 소리(Sound Design)내비게이션의 서체(Typography)로 상을 받고, 신제품 발표회의 기념품 패키지나 주주총회용 연차 보고서(Annual Report)까지 출품해 상을 받아가기도 하는거 같다.


기업은 빈집털이하듯 틈새 카테고리를 공략해 수상 실적을 늘리고, 어워드 사는 "반려동물 장난감"이나 "달력" 같은 카테고리까지 신설해 상을 줄 명분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2. 권위의 가격표: "입금하셔야 상을 드립니다"


이 권위에는 명확한 가격표가 붙어 있다. 우리가 아는 유명 디자인 어워드들은 자선 단체가 아닌 철저한 영리 기업이다.


입장료: 심사를 받기 위한 접수비(수십~수백만 원)는 기본이다.

통행료: 일부 어워드는 예선을 통과하면 본선 심사를 받기 위해 또 돈을 내야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텐가?"라는 매몰 비용의 심리를 정확히 타격한다.

수상비: 이것이 핵심이다.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은 곧 청구서다. 상장과 트로피를 받고, 그 유명한 '수상 인증 로고'를 마케팅에 쓰려면 최소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 이상을 결제해야 한다. 돈을 내지 않으면 수상은 취소된다.


상 하나에 최소 천만 원 단위. 대기업의 거대 마케팅 예산으로는 '껌값'에 불과하지만, 그 대가로 얻는 'World Class'라는 타이틀은 가성비 최고의 홍보 수단이 된다.



3. 왜 아무도 이 쇼를 멈추지 않는가?


이 기묘한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유는 참여자 모두가 이득을 보는 윈-윈(Win-Win) 게임이기 때문이다.

어워드 사: 권위를 팔아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챙긴다.

기업 실무자: "디자인이 좋다"는 주관적 평가 대신, "해외에서 상을 받아왔다"는 객관적 지표로 사내 평가와 승진(KPI)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기업 경영진: "우리 브랜드가 세계적인 수준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주와 소비자에게 던질 수 있다.


반면, 이미 확고한 브랜드 철학을 가진 일부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러한 어워드 출품에 시큰둥하다. 그들은 스스로가 이미 업계의 기준(Standard)이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내고 남에게 평가받아 훈장을 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 애플, 테슬라, 페라리는 시큰둥할까?

이들은 이미 기준(Standard)이거나 신념(Cult)을 가진 브랜드이기 때문인거 같다.


애플 (Apple): "우리가 곧 기준이다": 애플은 자신들이 만든 디자인이 곧 세계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외부 심사위원에게 "우리 디자인 잘했나요?"라고 물어보고 평가받을 필요를 못 느끼는건 아닌지? 애플의 비밀주의: 어워드에 출품하려면 출시 전에 도면이나 상세 컨셉을 제출해야 하는데, 애플은 줄리 만무하지 않은가?


테슬라 (Tesla): "제품이 마케팅이다": 일론 머스크는 광고와 마케팅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상이 없어도 소비자가 줄을 서서 사는데 굳이?"라는 태도. 실제로 최근 출시 테슬라 모델에는 차량 전면에 테슬라 로고를 제거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차량 형태만 봐도 누가 봐도 테슬라인지 알기 때문에 굳이 브랜드 로고를 넣을까? 하는 의도가 알려지며 소소하게 화제된 적이 있다.


초호화 브랜드 (롤스로이스, 에르메스 등): 이들은 대중적인 어워드 로고가 붙는 것 자체가 오히려 브랜드 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명품 가방에 '굿 디자인 수상'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과 같은 이치이지 않을까? ㅎ



[+ 부연설명]

사실 애플은 상을 받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페라리는 심지어 상 받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들이 디자인 어워드에 무심하다고 느꼈을까? 여기에는 '상을 받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받은 상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들도 트로피를 수집한다

우리의 짐작과 달리, 글로벌 톱티어 브랜드들의 수상 실적은 화려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애플(Apple):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와 영국의 D&AD를 특히 편애한다.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백 개의 트로피를 가져갔으며, 최근(2023~2024)에도 아이폰과 애플워치로 최고상인 '골드(Gold)'를 휩쓸었다.


페라리(Ferrari): 디자인 상에 진심이다. 페라리의 디자인 총괄 플라비오 만조니는 레드닷 어워드 시상식에 직접 참석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을 즐긴다.


테슬라(Tesla): 모델 S, 모델 3, 슈퍼차저 등으로 꾸준히 본상을 받아왔다.


즉, 그들은 출품을 안 하는 게 아니다. 경쟁의 링 위에 올라가긴 한다. 하지만 링에서 내려온 뒤의 행동이 우리네 기업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스티커는 디자인을 해칠 뿐

국내 기업이 상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티커 제작이다. 제품 박스, 홈페이지, TV 광고에 붉은색 'Winner' 로고를 대문짝만하게 박아 넣는다. 소비자에게 "이거 좋은 거니까 믿고 사세요"라고 외치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을 보라. 수백 개의 상을 받았지만, 애플제품 박스 그 어디에도 'iF 수상' 스티커는 붙어 있지 않다. 홈페이지에서도 수상 내역을 찾으려면 구석구석을 뒤져야 한다.


애플에게 수상은 소비자를 꼬시기 위한 마케팅 도구가 아니다. 그들에게 트로피는 '업계 동료들에게 받는 인정(Peer Review)' 정도의 의미에 그친다. 무엇보다 애플은 자신들의 제품 그 자체가 완벽한 브랜드라고 믿는다. 그 순결한 여백에 남의 회사(어워드 사) 로고가 끼어드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디자인을 해치는 행위일 뿐이다.


성능이 아니라 '예술'을 증명하다

페라리의 태도는 럭셔리 브랜드의 정석을 보여준다. 그들은 일반적인 '본상(Winner)' 수십 개를 나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페라리는 오직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the Best)', 즉 대상만을 노린다. 페라리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달리는 예술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워드에 출품하는 이유는 "우리 차가 빠르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트랙에서 증명하면 된다.) 그들은 "우리 차는 미학적으로도 완벽한 조각품이다"라는 사실을 공인받기 위해, 즉 미술 대회에 나가는 마음으로 출품한다. 그래서 그들은 1등 상이 아니면 마케팅에 크게 활용하지 않는다. 명품은 '개수'로 승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품이 마케팅인데 굳이?

테슬라의 침묵은 일론 머스크의 실용주의 철학에서 기인한다. 머스크는 돈 써서 하는 마케팅은 죄악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테슬라도 상을 받긴 한다. 파트너사가 대리 출품을 하든, 내부 디자인 팀이 하든 결과는 나온다. 하지만 테슬라 공식 계정이나 머스크의 트위터(X)에서 "우리 디자인 상 탔어요!"라고 자랑하는 꼴은 보기 힘들다.


"상이 없어도 소비자들이 알아서 줄을 서는데, 굳이 돈 들여 광고할 필요가 있나?" 이것이 테슬라의 태도다. 그들에게 어워드 수상은 엔지니어링의 결과물일 뿐, 그것을 포장해서 다시 광고비로 쓰는 비효율은 용납되지 않는다.


4. 마치며: 현명한 소비자의 눈


결국 이 화려한 수상 실적은 해당 기업이 아직 증명할 것이 남았다는 반증이자, 실무자들의 치열한 생존 전략의 산물이다.


소비자인 우리는 이제 어워드의 화려한 로고를 보고 무조건 감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제품의 절대적인 우수성을 보증한다기보다, 그 기업이 마케팅에 이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는 성실함의 증표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물론 수상자들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 비싼 비용을 내던 안내던 그 노력만큼은 가짜가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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