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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Apr 02. 2023

왜 영숙은 어장관리를 하는가?

4기 정수가 본 나는 솔로 13기

나는 솔로 13기의 영숙은 약사이다. 부산에 살고 있으며, 솔로 나라 13번지에서는 영식(역도 코치, 37세)과 영철(난초사업가, 31세)의 구애를 받고 있다.


지난주 3월 29일(수) 방송분에서 그녀는 두 남자와 함께 2대1 데이트를 하러 가던 중 차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자기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1대1 대화 시간에 영철은 누나(영숙)는 결국 최종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괜히 영식에게 마음에도 없는 희망고문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이에 영숙은 방송에 자기가 빌런으로 나올 것 같다며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영철은 빌런 맞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에 숙소에 돌아와서도 영철은 계속해서 영숙에게 농담반 진담반 디스를 거는 모습을 보였다. 겉으로 보여지는 착하고 친절한 모습 뒤에 본심을 숨기고 있다며 영숙의 이미지 메이킹과 어장 관리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출처: 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출처: 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댓글


이러한 영숙의 행동은 시청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솔로나라의 누구에게도 진정성있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며, 차분하고 지적인 여자 약사의 이미지로 밖에서 조건 좋은 남자들에게 DM을 받거나 선을 보려고 이 프로그램에 나온 거라고 했다. 지금까지 영식과 영철과의 관계를 이어온 건 그 둘을 보험으로 깔고 전문직인 상철(한의사, 35세), 영수(의사, 39세)와 커플이 되려는 전략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영숙의 음흉한 속내를 간파한 영철을 지략가 영갈량이라며 칭송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맞다. 내가 보기에도 영숙은 방송 이미지를 신경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식이나 영철이 자기가 만날 수 있는 최선의 남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특히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는 연애 상대라면 모르겠지만, 남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결혼 상대자로서는 최소한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조건과 직업을 가진 남자를 찾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방송 이후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애매한 외모와 애매한 매력으로 여기저기 끼를 부리고 다니는 헤픈 여자보다는 참하고 지적인데다 톡톡 튀는 매력까지 갖춘 전문직 여성으로 나가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출연자는 없다. 일반인이 방송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다. 연애 프로그램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그들의 외모, 말투, 스타일, 나이, 키와 몸매, 직업, 집안. 그 모든 것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평소라면 절대 듣지 않을 노골적인 인신공격들을 받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 단련되어 있지 않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몸을 사린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최대한 정제되고 연출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나도 당연히 그랬다. 나는 솔로 4기를 본 사람들은 나를 정순(사회복지공무원, 당시 32세)에게 진정성있는 순애보를 보여준 로맨티스트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모습 자체가 거짓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4박 5일 동안 나는 밖에서의 김현민이라는 인간을 완전히 잊을 정도로 이 프로그램에 완전히 몰입했다. 4박 5일 뒤에는 세상이 끝난다, 이 세상에 남겨진 건 이 여섯 명의 여자 뿐이다, 그 때 내 생각은 그거였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완전히'였느냐, 다른 생각은 단 1%도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자신은 없다. 당시 내가 첫인상 선택을 했던 여자는 정순이 아니었다. 정자(당시 28세, 치위생사)였다. 첫 데이트도 정자와 나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순으로 바꿨다. 경쟁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을 만한 상황이었다. 나도 물론 그걸 알고 있었다. '정순님은 나한테 남자로서의 호감은 없는 것 같은데, 포기해야 하나? 만약 여기서 다른 여자로 한 번 더 갈아탄다면 내 이미지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 당연히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정순에게 깊이 빠졌던 건 맞지만 빠졌던 이유 중에는 '한 번 더 갈아타면 안 될 것 같아서'도 분명 있었다. 몇 퍼센트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런 비겁한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문제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그랬어요.

- 영화 베테랑 中 조태오(유아인)의 대사


그런데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나는 순정남이다. 왜냐? 나는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13기 영숙처럼 내가 빌런이 될까봐 걱정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숙이 나, 그리고 다른 모든 출연자들과 다른 건 그들은 속으로만 생각하던 걸 그녀는 입 밖으로, 몇 번씩이나 내뱉었다는 것 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유아인이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 사람들은 몽롱한 표정으로 횡설수설 이상한 소리 할 때부터 저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우스운 건, 유아인이 구속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그런 그의 말투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예술가 같다, 자기만의 색을 가진 멋진 배우다, 하는 반응이었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이 횡설수설해도 뛰어난 연기자, 매력적인 배우라는 색안경을 끼고 볼 때는 자기만의 개성, 예술가적인 면모로 보이던 것이 범죄자라는 색안경으로 볼 때는 약쟁이의 말투가 된다. 영숙도 그렇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심지어 시청자들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지만 차마(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던 걸 말했다. 그리고 그건 프레임이 된다.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들은 이미지 메이킹과 어장관리라는 프레임으로 해석된다. 그녀가 욕을 먹는 이유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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