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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r 24. 2024

그렇게 꼰대가 된다.

버르장머리 없는 MZ세대 ㅅㄲ들

요즘 10대들에게 자주 보이는 증상이라는 글을 봤다. 요즘 애들은 타인을 인격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게임 화면속 NPC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가령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가 빨리 나오지 않을 때 불만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 씨발, 알바 새끼 존나 굼뜨네."하면서 그 불만을 대놓고 토로하는 건 다른 문제다. 그러면 알바생이 불쾌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격체기 때문이다. 게임 화면 속 NPC는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막말을 하든지 미리 프로그래밍되어있는 대사만 기계적으로 읊어댈 뿐이지만 현실의 인간은 우리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실시간으로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MZ세대들은 그걸 모른단다.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말을 실컷 해놓고, 상처받았을 줄 몰랐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그런 것 같았다. 내 10대 시절에는 타인과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다. 음식점에 가면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는 대신 카운터에 가서 점원에게 주문을 해야 했고, 공부를 할 때는 인강을 듣는 게 아니라 학원 강의실에 앉아서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으며,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는 카톡을 보내는 대신 친구네 집에 전화를 걸어서 "지훈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 지훈이 친구 현민이인데요. 지훈이 좀 바꿔주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말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표정과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소통을 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겐 그럴 기회가 부족하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배달의 민족, 사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쿠팡, 심심할 때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외로움을 타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라면 1달 동안 사람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 세대에 비해서 대인 관계 능력이 부족할 것이다. 근육도 쓰면 발달하고 안 쓰면 퇴화하듯이 상대방과 면대면 소통을 많이 해보지 못한 요즘 애들은 우리 기성 세대에 비해 상대방의 감정을 미리 헤아리고 배려하는 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정말인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7년째 제약 바이오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 동안 많은 병원을 다녔고, 많은 원장들을 만났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약 영업 힘들지 않냐고 한다. 원장들이 영업사원에게 선을 넘는 부당한 요구들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 없다. 금품이나 향응을 요구하는 경우도 없고, 성접대를 요구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그런 걸 입에 올리는 원장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특히 젊은 의사들은 더 그렇다. 영업 사원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아버지뻘 되거나, 개인적으로 친한 게 아니라면 반말도 안 한다. 안 써주면 안 써줬지, 갑과 을이라는 입장 차이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런 건가? 우리 세대는 지금의 10대들에 비해 면대면 의사 소통을 더 많이 해봤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 만큼은 아니다. 우리 세대는 친구를 만날 때 집에 전화를 걸어서 "지훈이 어머니, 안녕하세요?"하며 말을 걸었지만 우리 아버지들은 직접 집에 찾아가서 문을 두들겼다. 면대면 의사 소통은 아버지 세대가 훨씬 많이 해봤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 세대는 상대방의 감정을 섬세하게 배려하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데 우리만큼 능하지 않다.(물론 그들은 조직에 대한 헌신, 가정에 대한 책임감 등 우리 세대보다 더 뛰어난 점들을 갖고 있다.) 그건 왜 그런 건가? 상대방 얼굴을 자주 볼 수록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하게 된다면 군대는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겠네? 거기서는 휴대폰도 메신저도 없이 24시간 붙어있잖아?


오히려 반대로, 면대면 의사소통을 하지 않을수록 상대방의 감정을 더 배려하게 될 수도 있다. 상대방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상대방의 표정, 호흡의 높낮이, 어조, 혈색 등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반응할 수 있다. 한편 전화 통화를 하면 목소리 밖에 안 들린다. 표정이나 낯빛 같은 시각적 요소는 배제된다.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한편 카톡을 하면 목소리라는 청각적 요소까지 사라진다. 글자만 남는다.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 혹여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지 않도록.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소통을 해왔다는 건 오히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보지 않고도 그들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할 수 있을 정도의 소통 능력을 길러왔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들이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데 능숙한 세대이건, 오히려 상대방을 인격과 표정이 없는 NPC처럼 취급하는 세대이건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그들과 말을 섞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 여자 친구는 35살이고, 우리 부서에서 가장 어린 친구는 31살이고, 축구팀에서 가장 어린 친구는 33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제일 문제다. 나는 MZ세대와 말 섞어볼 일이 없다는 것. MZ세대를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MZ세대는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을 듣고 뇌피셜로만 추측하고 있다는 것. 그런 말들을 아무리 들어봤자 장님 코끼리 만지는 꼴 밖에는 안 된다.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장님은 "이건 기둥이야!"라고 말하고, 귀를 만진 장님은 "이건 부채야!"라고 하듯, MZ세대에 대한 글들을 아무리 읽어봐야 본질에 가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모든 건 직접 봐야 아는 법이다.


그런데 어찌할 방법이 없다. 나는 바쁘다. 돈 버는데 바쁘고, 몇 명 되지도 않는 주변 사람들 건사하는데 바쁘고, 글 쓰는데 바쁘다.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과 직접 관계를 맺어볼 여력이 없다. 그러니 그냥 장님 코끼리 만지는 짓을 할 수 밖에 없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극적인 말들만 듣고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하며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꼰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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