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안녕.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네. 너무 오랜만이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야. 언니에게 하는 인사가 이렇게 오랜만인 이유는 언니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하면서도 정작 나 역시 언니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저 분노에 빠진, 그리고 그걸 정의감이라고 착각한, 나 자신에 취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언니를 향한 그리움을 활자로 적어내는 게 오랜만이어서 소름이 돋는 걸까? 후자였으면 좋겠다. 후자라고 믿고 싶네.
언니. 언니가 가고 지난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에겐 많은 일이 있었어.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나에게 있었던 일만 말해보자면…. 역시 가장 큰 일은 지긋지긋한 가족을 떠나 저 멀리 독일에 갔다왔다는 거겠네.
그런데 웃긴 건, 독일에 갔다가 혼자 라는 게 미치도록 서러워서 죽을 것만 같아 두 달 만에 돌아왔다는 거야. 정말이지 내 인생에 있어 완벽한 실패담이었지. 물론 지금은 나름 자랑스러운 실패담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정작 외로움에 사무쳐 날 품어줄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한 한국에 돌아와서도 행복하지 않았어. (사실 진정 행복한 삶이란 게 있는 걸까, 의문이긴 해.)
독일에서 돌아오고 2년 동안은 엉망이었어. 특히 내 책상은 더더욱. 그토록 지긋지긋한 독일에서 떠나왔는데도, 내 생각과 영혼은 여전히 독일에 있더라. 웃기지, 그토록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독일에선 눈물과 초콜릿으로 밤을 지새우던 애가 정작 한국에선 독일을 그리워했다는 게. ‘내가 왜 돌아왔지. 왜 나만 적응을 못 했지. 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아, 이제 내 본성을 발견한 건가. 난 원래 성취라는 걸 하지 못하는 아이였던 거야.’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어.
그다음 해에는 기대도, 절망도 없는 시간이었어. 그저 이 밤이 지나면 내 숨이 끊어져 있길 바랐어.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밤이 지나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거라는 걸 너무나도 선명하게 알고 있어서 끔찍한 밤들이었어. 그렇게 잠에 들지 못해 뒤척이던 날들이 계속 이어졌지.
언니, 언니에게 인사한 지 너무 오랜만이라고 해놓고 내 근황만 늘어놓느라 말이 길어졌네. 벌써 편지 한 장을 거의 다 써버렸어. 내가 너무 수다쟁이가 되어버려 놀랐지? 그런데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봐.
언니도 몰랐지? 언니가 봤던 나는 그저 착하고, 어른 말 잘 듣고, 심부름 잘하는 착한 애였잖아. 명절 때도 다 같이 떡국을 먹고, 고기를 구워 먹다가도 누가 사이다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그걸 나가서 사오란 말을 듣고도 투정을 부리면 안 되고 마트에 나가서 사와야 하는 아이. 결국은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그런 아이.
그런데 있잖아 언니, 난 사실 그런 애가 아니었어. 그딴 건 부당하다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왜 나만 그래야 하냐고, 소리치고 화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어. 그리고 세상 사람들 여기 보세요, 콩가루 집안이 여기 있어요, 이렇게 떠벌리면서, 나 말고 또 다른 콩가루 집안에 사는 힘든 이들에게 서툰 위로를 건네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었어.
그걸 불행인지 다행인지 언니가 떠나고서야 알게 됐어. 언니의 죽음을 통해서 말이야. 그래서 난 요즘 그렇게 살고 있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간으로. 그래서 이렇게 수신인도 없는 편지를 쓰고 앉아있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편지를. 이 편지를 받고도 답장조차 보낼 수 없는 대상에게 보내는 편지를 말이야.
언니. 언니는 속상하지 않았어? 언니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것 말이야. 나는 그 일이 아직도 너무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고 또 속상해. 속상해, 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만큼 속상해. 나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를 앞서간 자식의 장례를 치르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말을 단호하고 명백하게 받아치고 싶어. 당신의 딸이라도 그렇게 말할 거냐고. 물론 그 사람은 돈이 없는 우리 가족을 위해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입을 딱 한 대만 때려주고 싶어. 그건 우리에게 진정 위로가 아니었거든. 그리고 교회를 다니다면서도, 그렇게 지극히도 유교적 발언에 고개를 못내 끄덕인 우리 가족의 모순성에도 싸대기 한 대만 날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사실 언니의 죽음을 언니네 집에서 애도하는 3일 동안에도 분노의 순간은 내내 있었어. 언니의 죽음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이는 Y의 뻔뻔한 태도와 언니의 존재를 그저 한없이 무해한, 아니 언니를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긴 했을까 싶은 그 설교, 언니를 순진무구한 ‘천사’로 묘사한 그 전도사의 위로 섞인 설교도 날 화나게 했어. 언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천사가 아니였잖아. 언니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 있었잖아. 그런데 왜 사람들은 언니의 기쁨과 슬픔, 기호는 다 지워버린 채 그저 언니를 착하디 착한 천사로만 호명하는데 급급했을까? 난 그게 언니를 위한 찬사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게 다는 아니었지. ‘은진이가 왜 J 엄마보다 더 슬퍼 보여?’라는 한 어른의 우스운 발언도 있었어. 근데 있잖아 언니, 슬픔의 무게를 비교할 수 있는 거야? 그걸 꼭 비교해야만 하는 거야? 난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굳이 굳이 비교하려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언니 그때의 복잡한 감정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 순간들 이후로 내가 깨달은 게 있다면 말이야. 세상은 숨을 쉬는 데도 똥을 누는 데도 죽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참 뭐 같다는 거. 그래서 그때부턴 난, 아니 사실 한참 전부터 난, 이런 세상을 계속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하며 이 세상에 의문을 품고 있었어. 다만 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분노를 시작했던 것 같아. 그래서 언니에게 이런 말을 내뱉는 내가 역겹지만, 언니에게 고마워. 분노를 표현할 수 있게 된 내가 나는 퍽 좋거든.
언니. 난 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분노를 감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됐어. 사실 내 별명이 냉혈한이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슬픈 이야기를 해도 눈물이 나오질 않는 거야. 아니, 마음속으론 진짜 슬펐거든? 그런데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질 않는 거야. 그래서 수련회 캠프파이어 때도 울지 않는 유일한 아이가 나였어. 그래서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내 별명은 냉혈한이었어.
그랬던 내가 이렇게 울고 웃고 화내고 소리를 지를 수 있게 된 건 다 언니 덕분이야. 내가 너무 시끄러워졌다고 속상해하지 마 언니. 사실 언니는 그런 거로 속상해하지 않을 사람이란 것도 알지만, 이제라도 울고 웃고 화내고 소리를 지를 수 있게 돼서 난 살 수 있었어.
그래서 너무 이기적이지만, 고마워 언니. 나에게 언니는 여전히 너무 그립고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고맙고, 미안한 존재라 그냥 마구잡이로 고른 편지지에 가장 먼저 언니의 이름을 썼나 봐.
언니에게 쓰는 편지라고 해놓고 언니의 안부는 묻지도 않은 채 내 이야기만 늘어놓아 미안해. 우리 서로의 안부는 조금만 나중에 묻기로 하자. 언니도 그걸 바랄 걸 알아. 나 조금만 더 견뎌볼게. 언니. 나 기특하지? 나도 알아. 늘 고맙고, 사랑해. 보고싶고 미안하고. 그래도 이만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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