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딸딸 아들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난 내 인생은 존재 증명의 연속이었다. 세상에 나와 첫울음을 터뜨렸을 때, 병실에는 축복 대신 정적이 흘렀다. 내가 계집아이로 태어나서 엄마는 울었고, 할머니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 네 살배기 언니는 갓 태어난 나를 보며 천진하게 읊조렸다. “아들이어야 할무니가 좋아하는데.” 내 탄생에 대한 첫 리뷰였다.
옛날 책처럼 아랫목에 두었는데도 살아남았다는 설화 같은 이야기는 없다. 나의 부모는 상심은 하였으나 시간으로 나를 키웠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공기처럼 느꼈다. 내게 사랑은 꽁으로 주어지지 않고 따내와야만 하는 월급 같은 거라는 걸.
내내 화목하지도 않았으면서 설상가상으로 우리 집엔 늘 돈이 없었다. 돈이 없어서 화목하지 않았던 걸까? 남들은 때마다 턱턱, 자꾸만 더 넓어지는 집으로 이사만 잘 가던데 나는 엉성히 늙어가는 언덕배기 주택에 발목이 묶여 벗어나질 못했다. 낡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겨울 외풍은 매서웠고, 몸을 벌벌 떨며 잠드는 밤마다 나는 존재의 지긋함을 버텼다. 그런 집안에서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신분증은 공부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머리가 좋았다. 내가 하는 만큼 성적이 곧잘 나왔다. 내 노력만큼 정직하게 따낼 수 있는 유일한 인정이었다.
시험이 끝난 날, 빳빳한 성적표를 낡은 식탁 위에 탁 내려놓는 순간만큼은 우리 집 공기가 바뀌었다. 비로소 부모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고, 서늘했던 집안에 온기가 돌았다. 조부모의 눈에도 기대라는 생경한 빛이 서렸다. 그 찰나의 인정이 필요했다. 그게 날 무너뜨리지 않고 버티게 했다.
기뻤지만, 개천에서 난 용이 되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어린 나를 짓눌렀다. 엄마는 오랜 불행을 나에게서 보상받을 것이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너 아니면 엄마는 죽는다." 그런 무서운 말로 나를 독려했다. 딱 그렇게밖에 못 자란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양육이랄까.
의사나 변호사라도 돼서 떼돈을 벌어서 집안을 일으키는 그런 엔딩을 따냈어야 했는데 월급 받아 나 하나 먹여 살리기도 허덕이는, 겨우 교사가 되었다. 첫 발령 후 받은 월급 명세서의 숫자는 초라했다. 몇 안 되는 숫자를 보고 있자니 심장이 종이 조각처럼 쪼그라졌다. 충분히 사랑받지도 못한 채, 이제는 집안을 구원할 능력조차 없는 어중간한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그 거대한 무력감 앞에서 나는 오래될 슬픔에 잠겼다.
슬픔을 곱씹을 시간조차 사치였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내게 도착한 건 꽃다발이 아니라,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담긴 대출 요구였다. 사랑을 월급처럼 따내야 했던 아이는, 가족을 위한다는 착각에 빠져 연봉이 넘는 빚을 내는 호구가 된다. 그것이 내가 배운 생존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