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by 엄서영

누군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조용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친구들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는 미안함과 애틋함으로 버무려진, 갚지 못할 부채 같은 것이다. 다른 엄마들의 넘치는 모성애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들과 나의 차이가 전생일까 생각한다. '나는 왜.' 생각하며 소주를 홀짝이면 혀 끝에서 씁쓸함이 감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나도 친구들 엄마 밑에서 옴팡 사랑만 받으며 살 수 있을까.


나의 생물학적 어머니, 순희는 취약한 나르시시스트였다. 자기가 최고이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되는 이유로 항상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지목했고, 내내 억울하고 슬퍼했다. 그녀의 인생은 언제나 불운한 성장 배경과 잘못 만난 남편으로 가득 찬 구렁텅이였고, 자신을 건져내야 할 구원자로 나를 지목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기한이 없는 채무 이행 요구서를 어린 내게 내밀었다. 내내 사랑이 고팠던 나는 기꺼이 그녀의 희망이 되기로 한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순희의 슬픔을 받아내던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헛헛한 웃음이 난다.


순희에게 결혼은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란 그녀에게 남편 재훈이 마련한 신혼집은 호텔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IMF는 예고 없이 찾아왔고, 대기업 월급봉투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어린 나의 눈에도 신문을 펴놓고 구직공고만 째려보던 재훈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어느 날부터 재훈은 집에 거의 들어오질 못했다. 화물트럭 운전석이 재훈의 새로운 거처가 되어 재훈은 길에서, 타지 낡은 모텔에서 고단한 잠을 청했다.


순희는 수입의 수직 낙하를 견디지 못했다. 재훈이 잘 나갈 때도 가난의 허기를 채우느라 저축 한 푼 없던 그녀에게, 남편의 실직은 일종의 배신이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재훈을 깎아내렸다.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


재훈은 순희가 마트 캐셔나 식당 일처럼 정직한 월급을 받는 일을 하기를 바랐지만, 순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순희는 화장품과 카드를 파는 방문 판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순희는 아줌마들과 어울리며 영업이나 인맥 관리, 유희로 밤을 채우기 시작했다.

"엄마 언제 와? 배고파."

"엄마 늦어. 외상으로 시켜 먹어."

부모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우리 남매는 식은 김밥과 중국집 외상값으로 배를 채웠다.


"우리 아빠가 너네 외상값 빨리 안 갚으면 이제 배달 안 해준대."

학교 복도에서 마주친 중국집 아들 영수가 부러 큰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딱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순희의 휴대폰 문자함에서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다."는 낯선 남자의 문자를 보게 된다. 배신감에 몸을 떠는 나에게 순희는 되려 목소리를 높이며 버럭버럭 따져 물었다.

"네 아빠가 무능해서, 네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아서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데, 왜 너는 엄마 마음을 몰라주니?"

말문이 턱 막혔다. 외도까지도 배우자 탓을 한다고? 자식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다고? 그러면서도 순희의 외도가 재훈의 탓이라는 말을 납득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그 일은 나만 아는 비밀이 되었다. 그 어린 내가 또다시 순희를 두둔한 것이다.


그녀에게 가해자는 항상 타인이고, 피해자는 오직 자신뿐이었다. 항상 자기만 애달프고 자기만 안쓰러워했다. 돌아오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는 어둠 속 어린 삼 남매는 순희를 힘들게 하는 존재들일뿐이었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그 논리를 주입받아 순희가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존재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교사가 되어 교실에서 다른 부모들을 마주하며 비로소 순희의 실체가 바로 보였다. 아이의 준비물 하나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자식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보다 크게 여기는 그 평범한 모성애를 보며 깨달았다. 부모로서 살 수 있는 최악의 궤적, 그게 바로 순희였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그리고 너무 아프게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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