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도 이혼했으면 좋겠다

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by 엄서영

남편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칼칼하게 끓인 버섯찌개와 쿠팡에서 주문한 양념 갈비를 노릇하게 구워 먹는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회사에서 있었던 소동에 대한 대화, 간간이 터지는 웃음소리. 내 원가족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이다. 나에게 부부의 식사란 모름지기 서늘한 침묵이거나, 비릿한 욕설이거나, 혹은 피가 섞인 비명이었다. 지금의 내가 누리는 이 고요한 식사가 내 생애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라는 사실을 실감할 때면, 어린 나를 꼭 끌어안아 꺼내오고 싶다.


순희와 재훈, 그러니까 나의 엄마와 아빠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부터 평화롭게 숨 쉬며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식탁은 언제나 전쟁터였다. 여기서 의문은 대체 어떻게 자식을 셋이나 낳았냐는 것인데, 그건 장손이라는 거대한 족쇄가 건 부채 의식이었다고 치자. 딸 둘을 먼저 세상에 내보낸 뒤, 아들을 낳는 일은 그들에게 의무이자 굴레였다.


순희는 재훈에게 자꾸만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재훈이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조차 수화기 너머로 그 욕설이 동료들에게 들릴 것이라는 걸 어린 나도 알았지만, 순희는 입에서 터져 나오는 천한 단어들을 거를 생각이 없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야. 미친 놈. 한심한 병신아."


마치 너는 이 정도의 수치와 모멸을 당해도 싸다는 식이었다. 그런 말을 남편에게 쏟아내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어느 정도 자라 순희의 행동에 의문을 품을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물었다. 왜 아빠에게 욕을 하느냐고. 순희는 기다렸다는 듯 쏘아붙였다.


"네가 몰라서 그래. 네 아빠가 신혼 때부터 나를 얼마나 방치했는지. 그 인간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순희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폭력으로 정당화했다.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들리도록 저주를 퍼붓는 행위가 과연 과거의 방치로 설명될 수 있을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순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조각의 주저함도 없이 네 아빠의 잘못을 주장했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 어린 나는 자꾸만 넘어가곤 했다. 아빠가 너무 나쁜 사람이라서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게 된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 나이엔 엄마를 잃는 것이 곧 세상을 잃는 것이니까. 엄마라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나는 엄마의 증오를 내 영혼의 한 조각에 옮겨 심었다.


재훈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순희의 욕설은 잦아들 줄 몰랐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중학생 때, 학원 수업을 마치고 밤 10시에 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순희는 기다려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 뒤에도 소식이 없어 다시 거니, "너 알아서 와"라는 서늘한 문장만 남기고 다시 전화를 툭 끊었다. 나는 불안을 끌어안고 밤길을 내달려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홉 살 남동생 준호는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숨이 넘어가도록 울고 있었다. 마룻바닥엔 핏자국이 툭툭 떨어져 있었다. 재훈은 왼손 엄지를 휴지로 감고 있었는데, 흰 휴지는 이미 붉은색이었다. 순희의 부어오른 볼 역시 빨간색이었다. 온통 빨간색의 자극으로 혼미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데리러 오라고 해서 이 사달이 났잖아."


순희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고. 그러고는 집을 나가려 했다.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순희가 지금 나가버리면 다신 못 볼 것 같다는 느낌. 나는 가방을 멘 채로 순희의 종아리를 잡고 엉엉 울었다. 준호도 곁에서 "엄마 가지 마" 하고 내 말을 따라 하며 울었다. 순희는 우리를 공허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도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쌍자음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준호가 그날 밤의 전말을 들려주었다. 재훈은 퇴근하여 막 저녁을 먹고 있었고, 순희는 나를 데리러 가라며 재훈을 몰아세웠다. 피곤하다는 재훈에게 순희는 또다시 독설을 퍼부었다. 그까짓 돈 벌어오면서 유세냐는 식이었다. 재훈의 주먹이 순희의 뺨을 내리쳤고, 순희는 더 악을 쓰며 재훈의 부모까지 저주했다. 재훈의 폭력이 연거푸 이어지자 순희는 부엌에서 과도를 꺼내 들었다. 실랑이 끝에 재훈의 엄지손가락 두툼한 살점이 툭, 떨어져 나갔다.


아홉 살 배기가 늘어놓을 이야기로는 토이스토리나 해님달님 동화 같은 게 어울렸겠지만, 내 동생 준호는 누나에게 부모가 칼부림을 벌인 시궁창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왜 그 어리고 작은 아기가 그런 이야기를 내뱉다 잠들어야 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준호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혹여 순희가 영영 나갈까 봐, 준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봐 겁이 났다. 그땐 그랬다. 부모라는 이름의 울타리가 나를 찌를지언정 절실했다. 그 불완전한 성벽이라도 없으면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질 것만 같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들의 전쟁은 여전히 깊은 밤을 가로질렀다. 지겹고 역겨웠다.


"그냥 이혼을 해라. 제발 좀 해."

참다못해 뱉은 말에 순희는 딸이 엄마 편을 안 들어준다며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나는 간절히 그들이 각자 살기를 바랐다. 아빠랑만 사는 지영이와 엄마랑만 사는 윤지가 부러웠다. 보육원에 버려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지긋지긋한 화약고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끝내 이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늘 이렇게 말했다.


"다 너희들 때문에 참고 사는 거야."


그들이 우리를 위해 견딘다는 지옥 속에서, 나의 영혼은 형태도 없이 바스러지고 있었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은 사실 서로를 더 깊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기 위한, 그리고 그 지옥에 우리를 함께 가두기 위한 견고한 성벽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 성벽 안에 갇힌 채, 그들의 시궁창 같은 노래를 매일 들어야 했다. 심장을 조마조마 떨면서, 할 수 있는 건 눈을 꼭 감는 것 밖에 없는 여러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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