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권유로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건반 위에 손을 올렸던 순간, 알 수 없는 떨림이 있었다. 그것은 내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어느새 너무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 익숙함이 때로는 부담이 되고, 질리기도 했다. 결국 한때는 손에서 놓아버렸고, 청소년기의 방황 속에서 잠시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음악이었다.
다시 시작할 때는, 단순한 연주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더 끌렸다. 그래서 창작을 선택했고, 자연스레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생각이 생각을 낳고 또 물고 늘어지며 스스로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생각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태어나, 음악이라는 몸을 입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생각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자연스레 철학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이제는 생각하는 것을 즐기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머릿속에 뭔가를 그리며 사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걸 표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그냥 음악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좋아했던 건, '표현'이 아니라 '사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유의 끝에서 자주 마주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인간은 왜 고독한가.'
어릴 때부터 느꼈던 두려움 중 하나는 바로 ‘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도 혼자가 되기를 원했다.
학교를 다니고 사회에 속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으면서 소통하게 되는데 잘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움을 얻는 것과 동시에 맞지 않는 친구들과도 어울리게 되며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또 그걸 넘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친구들의 눈치까지 봐야 했다. 그 당시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은 가장 큰 공포였고, 무리에 속함으로써 안정을 얻었다.
그때부터였다. 프리랜서나 사업가, 또는 예술가처럼 가능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눈치를 많이 보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꿈꿨던 것은. 사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작곡가는 꽤 잘 맞는 직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런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외로웠다.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심심한 것도 있지만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끊임없이 약속을 만들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내가 ‘혼자’가 되는 것에서 완전한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혼자'도'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인간은 원래 고독하고, 인생은 늘 허무하다.
사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함께 살아야 하는 모순 속에 놓여 있다.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강해지고, 동시에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혼자일 때 강한 사람이 결국 누구와 함께 해도 강할 수 있다.
혼자일 때 고독한 사람은 결국 누구와 함께해도 공허하고, 고독하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함께 있는 순간에도, 마음 한쪽은 늘 비어 있었다. 누구도 날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나조차도, 나를 다 알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을 품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요즘 현대인들 중에도 그런 고민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예술가들에겐 더 익숙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이야기, 아니 어쩌면 나의 이야기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사실 예술가는 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특히 창작 관련해서는. 그 과정에서 오는 고립감,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외부 자극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서 그렇게 파고들어 생각을 하다 보면 남들이 생각 못 하는 부분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남들 앞에서 표출하기도 한다. 그럼 공감하고 감명받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팬이 생기고, 사랑을 받고. 점점 주위에 사람들로 가득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고독하다.
아니, 삶이 그렇게 화려해지면 오히려 전보다 더 고독해진다. 사람들은 그 작품 하나를 보고 ‘나’와 동일시하게 되기에. 그건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지만, 사람들은 결국 나를 여전히 그 ‘작품’으로만 인식한다. 그리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그 작품으로만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열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결국 더 외로워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흘려보내는 거다.
흘러가는 저 강물에 내 물건을 떠내려 보낸다.
그럼 그 물건은 이제 내 것이 아닌 걸까?
아니. 내 것이었던, 내가 흘려보낸, 결국엔 ‘나의 물건’이라고 정의한다. 떠나간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그저 내가 떠나보낸 것일 뿐이다. 나 살려고, 다시 잘해보려고. 저 강물에 그것들을 전부 흘려보냈지만 불안하다. 인생이 그렇다. 그래서 이미 떠나간 것들을 자꾸 찾고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걸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흘러가버린 것들을 잡으려 강물 속으로 손을 뻗으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물속에서 숨이 막혀버리는 순간이 온다.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이미 떠나간 것들은 흘려보내고, 우리는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새로운 강둑에 도착할 것이다.
흘려보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정의하고 기억한다. 하지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삶은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흘려보내고 나면, 꽤 후련해진다. 미련과 집착까지 놓아버리면, 사람은 한결 밝아진다.
그런데 예술가에겐, 그 비움이 곧 창작의 끈을 놓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그건 어쩌면, 자신보다 자신의 예술성에 더 많은 무게를 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술성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버튼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
사람은 누구든 가슴 아픈 사연을 보고, 듣고, 겪는다. 힘든 시기의 순간엔 예술성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아픔 속에 계속 머무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흐려지기 시작한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마음은 무너져 있을 때가 많다. 밝게 웃는 얼굴 뒤로 슬픔이 숨어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여러 감정을 동시에 품은 채 살아가다 보면, 점점 괴리감이 커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야 할까? 아니, 사람은 누구나 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상황에 따라,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얼굴들. 그것은 가면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투잡을 하듯, 마음속 역할도 나눌 수 있다. 나는 A로 살아가기도 하고, B로도 살아가기도 하며, 때로는 그 둘을 동시에 살아간다. 그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의 문제들을 비판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감정에 충분히 몰입해야 한다. 깊이 빠지고, 그 속에서 얻은 감정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면, 이제는 놓아줘야 한다. 그 감정에 계속 머물 필요는 없다. 계속 붙잡고 있으면, 결국 그 작품이 곧 '나'가 되어버린다. 사람들은 그 하나의 작품만으로 나를 판단하고, 그 이미지로 나를 정의하려 한다.
그러니까 흘려보내자.
하나를 흘려보내야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다. 계속해서 흘려보내고,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나답게 살아가는 법이기도 하다.
고독은, 우울한 것이 아니다.
외로움은, 슬픈 것이 아니다.
삶에 따라붙는 감정일 뿐, 그 자체가 결핍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껴안고 함께 걸어가야 할 것들일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인데 자꾸 그걸 부정하고 이유를 찾고, 그 감정에 슬퍼하려 하니 우울해진다는 얘기다.
그리고 남들이 보는 나로 살지 말고, 언제든 내가 되고 싶은 나로 살아가야 한다. 지금 손에 쥔 것들로 내가 아프다면, 잠시 내려놓고 흘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찾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것이 몹시 아깝게 느껴진다면, 비슷한 무언가를 다시 새로 들이는 게 낫다.
그게 정말 세상에 하나뿐인 거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왜냐면 나 역시, 세상에 단 하나뿐이니까.
나 자신을 좀 더 돌보고 사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생각은 곧 '나'를 만든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나를 탐구하는 일은 곧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된다. 그 시간은 내가 혼자 있을 때,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이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혼자 있을 때 그 사랑의 본질을 깨닫는다.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람은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