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는 왜 힌두교 국가일까?
인도를 흔히 신의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인도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삶의 목적이자 일상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 속에 세계관 속에 종교는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인도에는 기독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시크교, 조로아스터교등 다양한 종교가 혼재해 있지만 역시 가장 지배적인 종교는 힌두교다. 힌두 문화는 인도의 정체성과도 같다. 소를 먹지 않는 것, 채식주의, 카스트제도, 윤회사상 모두가 힌두교의 문화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교와 달리 힌두교는 인도 대륙에서만 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인도에서는 어째서 이런 고유의 종교가 만들어졌고, 이렇게까지 깊은 의미를 갖게 될 수 있었을까?
바라나시는 힌두교 최대의 성징인 갠지스 강이 있는 곳답게 힌두스러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아침이면 갠지스 강에서 몸의 때뿐 아니라 영혼의 때까지 씻어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밤이면 푸자라는 성대한 종교의식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낮에도 어머니 강을 찾기 위한 신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바라나시에 위치한 황금사원을 가기 위해 내게는 너무도 똥밭 같은 골목을 힌두교 신자들은 맨발로 성스럽게 거닌다. 인도 사람들은 그렇게 항상 신과 함께 살아간다. 한 번은 내가 특별한 종교가 없다고 말하자 인도 친구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얼마나 인도 사람들의 삶에 신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힌두교의 발상과 역사를 짚어보면 참 흥미롭다. 성스럽고 초월적인 영역처럼 느껴지는 종교가 사실은 끊임없는 인간의 권력투쟁과 밀접하게 맞닿아 변화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성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이 필수요소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모여 만든 조직과 공동체 속에 자리하기에 역설적으로 종교에는 너무나 그 어떤 분야보다 세속적인, 인간의 저열한 속성들이 적나라하게 담기기도 한다. 기독교도, 불교도 마찬가지다. 창시자를 알 수 없는 유일한 종교, 가장 원초적인 종교라 알려진 힌두교는 어떨까?
지금과 같은 힌두교의 모태가 된 종교는 브라만교이다. 이 브라만교가 만들어진 시기는 무려 기원전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도 대륙에는 인더스라는 선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이 무렵 유목민족인 아리아인이 이 대륙을 침입하게 된다. 침입자 아리아인은 인도를 지배하면서 선주민이 도망가거나, 직업을 바꾸지 못하도록 철저히 단속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브라만교와 카스트제도이다. 아리아인의 침입 이전 인도 대륙에는 능력과 혼인에 따라 직업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정복민인 아리아인은 계급을 브라만(제사장), 크샤트리아(군인), 바이샤(평민), 수드라(노예) 네 가지로 나누고 선주민을 대부분 노예 계급인 수드라로 편입시켰다.
잦은 전쟁으로 제사에서 힘을 키운 브라만들은 스스로를 신과 동일시하며 이 같은 계급을 종교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에 업보와 윤회사상을 더해 사상적 기반을 더한다. 현실의 신분차별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하여 사람들의 불평과 불만을 잠재우고, 각자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면 내세에서 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것이다. 사회구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세상을 보게 하고, 취업을 못한 것은 노력 부족이라며 개인을 질책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논리와 놀랍도록 맞닿아 있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도 곳곳에서는 신흥 사상인 불교가 인기를 끌게 된다. 불교는 브라만교의 엄격한 신분제에 반발로, 누구든 명상과 사색을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대 인도 아소카왕은 불교를 장려해 스리랑카, 중동, 유럽에까지 전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힌두교의 나라가 된 것일까? 스리랑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불교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또다시 브라만들의 꼼수가 작용했다. 4세기 굽타 제국이 인도를 통일하고 불교에 밀리던 브라만들은 불교의 인기를 뒤집을 수 있는 획기적인 묘안을 궁리한다. 그러던 중 모든 종교의 교리와 잡신들까지 다 포함시켜 힌두교를 만들게 된다. 한마디로 짬뽕 종교인 힌두교를 믿으면 만병통치약처럼 다른 종교까지 모두 믿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기존의 권위와 형식을 버리고 불교의 교리까지 흡수했으며 석가모니와 예수를 포함해 물, 불, 하늘, 땅, 바다, 뱀, 소 곳곳에 신이 존재한다고 설파하며 신의 수만 3억 명이 넘는 엄청난 종교를 만들어낸다.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는 이들의 꼼수는 생각보다 잘 먹혔다. 힌두교의 엄청난 종교적 포용력은 사실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지배층 브라만들의 묘책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도인들은 힌두교를 믿으며 아침부터 밤까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삶의 모든 순간들을 3억이 넘는 신과 함께하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힌두의 인기 신을 꼽자면 머리가 넷 달린 브라흐마, 팔이 넷 달린 비슈누, 죽음의 신, 시바, 코끼리의 머리를 한 가네샤 등이 있다. 이들의 이름을 딴 게스트하우스도 바라나시에서만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정책적으로 수용되면서 국가 통치 수단으로 포교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 왕권을 강화하며 율령을 반포함과 동시에 불교를 수용함으로써 중앙집권체제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했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며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장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불교든 힌두교든, 유교든 종교가 사회 현실과 집권체제,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으며 매우 밀접하게 닿아있음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서양에서 천년이 넘는 중세시대 기독교가 그러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종교는 흔히 인간의 영역과는 분리되는 신성하고, 고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가장 저열하고, 인간적인 부패와 문제점들을 비 가시화한다. 지금도 수많은 종교가 신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과 배척을 자랑스럽고 뻔뻔하게 자행하고 있다. 물론 훌륭한 종교인들이 너무나도 많고 나는 그들의 믿음과 신념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진정 종교적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어떤 신도 섬기지 않고, 어떤 종교로도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인간이 절대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에 대한 무지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오로지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장 우선적인 원칙으로 삼는 실존주의가 오히려 가장 종교적인 논리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누가 나에게 신을 믿느냐고 하면 종교가 없다고 말한다. 무신론자인 것은 아니다. 신이 없는지 있는지는 그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종교로든 나를 명명하는 순간 발생하는 사람 사이의 구별과 배척이 싫다.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믿음보다는 동시대의 인류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한 명의 진솔하고 겸손한 인간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