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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2. 2016

삶과 죽음이 흐르는

어머니의 강, 갠지스 

  굽이굽이 골목의 끝으로 빠져나오면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 강을 만날 수 있다. 바라나시는 그렇게 반전 매력을 가진 도시다. 빼곡하고 촘촘한 골목에 치열한 삶의 전장이 벌어지고 있다면 몇 발자국만 옮겨 강가로 나오면 마치 다른 세계처럼 성스러운 어머니 강이 펼쳐진다. 강 주변으로는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 죽 늘어서 있다. 이 돌계단을 포함한 각각의 구역을 '가트'라고 부른다. 6km에 걸쳐 100여 개의 가트가 있다. 대부분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당시 군주들이 살던 별궁이 있는 가트도 있고, 힌두교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다샤스와메드 가트,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인 마니카르니카 가트도 있다. 가트 끝에서 끝까지는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 만에 완주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맘에 드는 가트에서 종일 멍 때리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곳이 바라나시다. 가트로 구역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골목에서 길을 잃는다면 유명한 가트를 향해 나오는 것도 길을 찾는 방법이다. 

바라나시의 가트

  다샤스와메드 가트는 바라나시의 중심 가트이다. 힌두교의 의식인 푸자가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밤에 열리는 푸자는 성대한 공연에 가까울 만큼 화려하다. 캄캄한 밤을 깨우는 온갖 종소리와 치솟는 불길, 사람들의 기도하는 소리, 몸짓이 열광적으로 이어진다. 육지 쪽 계단에는 의식에 참여하는 이들이 계단을 가득 메우고 앉아있고, 강에는 푸자를 보기 위한 관강객들을 태운 보트로 채워진다. 인도에 도착한 첫날 나도 보트에 몸을 싣고 한참 푸자를 바라보았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디아도 띄웠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디아를 띄운다

  마니카르니카 가트는 바라나시에서 가장 유명한 가트 중 하나인 화장터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엄중히 금지되어 있다. 이곳에 가면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가득 쌓인 땔나무를 하나둘씩 던져 넣으며 시체를 태우는 사람들과 그를 멍하니 지켜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이곳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 한 사람이 한 줌의 재가 되어 강으로,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갠지스 강에 와서 하루 종일 이곳만 바라보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는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것이요, 누군가는 삶의 무상함을 떠올릴 것이다. 하루 종일 뜨거운 불과 씨름하며 숨을 거둔 육신을 강으로 돌려보내는 이들. 이들은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없다면 누구도 신의 곁으로 갈 수 없기에 사람들은 이들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함을 알고 있다.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슬프고 먹먹한 일이긴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 강에서 맞는 죽음은 모든 죄를 사하고 신의 곁으로 가는 죽음이기에 오히려 축복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인들에게 이곳에서 죽는 것은 큰 영광이고 화장터 바로 옆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호스피스 병동이 자리하고 있다. 몇 번이고 이곳을 오가면서 끊이지 않는 불길을 바라볼 때면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보게 된다. 언젠가 세상에 작별을 고하고 이렇게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누구를 떠올리며, 어떤 표정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까. 아마 지금 이 순간도 한 컷으로 스쳐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해하고, 원하는 것을 하며 후회 없이 한 순간 한 순간을 채워가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여행자들의 골목 벵갈리토라와 이어진 라자 가트는 가장 추억이 많은 곳이다. 내가 묵었던 숙소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놓여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이곳에 나와 짜이를 한잔 마시며 계단에 앉아 강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보면 엽서를 팔고 헤나를 해주는 인도 소녀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서로 손에 그림을 그려주고 한국에서 가져간 볼펜도 몇 자루 선물하다가 그 소녀의 집까지 가게 된 적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비해 영악해 보이는 깜찍한 아이들이지만 막상 집에 가보니 그냥 장난기 많은 딸들이었다. 아침엔 학교를 가고 방과 후엔 이렇게 엽서도 팔고 헤나도 해주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소녀의 집에는 처음 본 여행자에게도 따뜻한 짜이와 쿠키를 내어주시는 부끄러움 많은 어머니와 갓난 아기가 있었다. 밤이면 라자가트에서는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거리공연을 펼쳤다. 은은한 조명 아래 기타,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가트에서 즉흥적으로 열린 작은 음악회

    아시가트는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맨 끝에 위치해서 인지 다른 가트와는 달리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맛집이 많아서 좋았다. 이곳에 가면 인도에서 맛보기 힘든 아메리카노를 꾸덕한 치즈케이크와 함께 마실 수 있고,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달콤함 애플파이도 먹을 수 있다. 바라나시에 머물면서 골목도 강가도 지겨울 때 아시가트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꼭 한국에 있는 카페에 와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색다른 기분전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조금만 더 가면 베나레스 힌두대학이 가까이 있어 대학로처럼 이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다샤스와메드가트에서 걸어오면 넉넉잡아 한 시간 정도 걷는 거리라 산책 삼아 걸어오는 것도 좋다.  

  매일 새벽이면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한 일출 보트를 타려는 사람들이 나와 있고 그 시간이 지나면 계단은 목욕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정신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정화시키는 인도 사람들 만날 수 있다. 몇 걸음 옮기면 삶을 마감하는 이들의 영혼이 불타오르고 한 밤이 되면 살아있는 이들의 성대한 종교의식을 볼 수 있는 곳. 인간과 신의 끊임없는 교감과 영혼이 흐르는 갠지스 강과 가트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한번 와보면 누구라도 그리워할, 세상에 둘도 없을 그런 곳. 언젠가 많이 지치고 세상에 찌들었을 때 다시 이곳을 찾아 내 모든 죄를 씻어버리고 싶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 그런 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다짐해본다.        

바라나시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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