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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2. 2016

바라나시, 벵갈리토라

삶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곳

  바라나시의 첫 난관은 숙소 찾기로 시작된다. 기차역에 내려서 릭샤를 타고 갠지스 강 주변으로 가긴 했지만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는 두발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골목이 좁아서 릭샤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꼬불꼬불 골목은 마치 미로 같다. 바라나시에서 머무는 열흘 동안 주요하게 했던 일 중 하나가 이렇게 골목을 누비는 일이었다. 벵갈리토라라고 불리는 여행자 골목에는 신기한 것도 참 많아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하루를 다 보낼 수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한 때 새로운 사상과 문화, 예술이 화려하게 꽃 피웠던 배움의 땅이기도 하다. 지금도 힌두 문화와 사상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행자들도 이곳에서는 짧은 일정이라도 여러 가지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 여러 곳에 요가 스쿨이 있고, 타볼라나 시타르 같은 인도의 전통악기를 가르쳐 주는 음악교실도 많다. 

  바라나시의 골목에는 없는 것 빼곤 다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좁은 공간에 모든 것이 즐비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음악이든 요가든 배울 수 있고 맛있는 라씨와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신기한 구경거리도 체험할 수 있으며 소나 개 같은 동물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나 역시 그렇게 벵갈리토라 골목에서 바라나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과 일상을 마주했다. 

  길을 가다 코브라를 상자에 넣고 다니며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를 만나면 못 이기는 척 몇 루피를 건네고 사진을 찍었다. 라씨 가게 아저씨가 하루 장사할 요거트를 개시하자마자 소 한 마리가 큰 혀로 한입 핥는 웃지 못할 광경을 마주치기도했다. 아저씨는 힌두교도라면 누구나 신성시한다는 소를 거침없이 손으로 내리쳤고 주변 사람들은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아저씨를 말렸다. 아저씨가 그 부분만 살짝 걷어내고 요거트를 계속 팔았다는 소소한 비밀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라씨를 한 잔 사들고 또 골목을 누비는 것이 나의 낙이었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고 나서 무료해지면 음악학원에 들렀다. 악기를 사지도, 등록하지도 않았는데도 인도 사람들은 “노 프라블럼”이라며 내 발길을 붙잡았다. 여기 한국인 친구가 싯타르를 몇 일째 배우는데 실력이 일취월장이라며 기다렸다가 구경하라고 가라고 해서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 사이 대만, 중국에서 온 여행객들을 만났다. 본국에서부터 가져온 바이올린과 기타가 범상치 않은 이들이었다. 무슨 노래든 신청만 하면 들려주겠다기에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중국어 노래를 신청했다. 한국으로 치면 이미자 정도 되는 중국 국민가수의 노래인데 ‘위에량 따이비야오 워더 신‘이라는 제목으로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는 뜻의 사랑노래다. 어떻게 중국노래를 아느냐며 신기해하더니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바라나시의 골목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가는 곳이었다.

"쳐봐도 돼요?"

  절대 안 깎아준다며 까칠하게 굴던 향수 가게 청년. 늘 같은 골목을 지나치다 보니 어떤 날은 내게 빨간 인도 전통의상이 정말 잘 어울린다며 연신 ‘뷰티풀’을 외쳐댔다. 마지막 날 내가 떠난다고 하니 까칠하던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장미향의 인도 전통 향수를 선물해 주었다. 향수 가게에서 일하는 것은 아버지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고 베나레스 힌두대학에서 따볼라를 전공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미리 알았다면 그의 연주를 보러 갔을 텐데 아쉬웠다.

  내게 인도 영화음악 CD를 팔았던 아저씨. 처음에 200루피를 제시하고 깎아달라고 하니 네가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라고 한다. 시세를 모르는 나는 갈팡질팡하다가 확 반값으로 후려쳐 100루피를 부른다고 불렀다. 그러자 “오께이! 헌드레드 루피! 그건 네 거야!” 너무 흔쾌히 수락하는 모습에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100 루피면 한국 돈으로 1700원. 2000원도 안 되는 돈이니 나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CD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CD를 사고 “유 해미, 미 해피(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를 외치며 이제 우린 프렌드(친구)라며 페이스북 친구까지 맺고 돌아왔다. 

  돌아와 인도인 친구에게 100루피에 샀다고 CD를 자랑하자 친구가 말했다. “이거 일리갈리 카피드 원!(불법 복사한 거야).” 100루피는커녕, 20루피를 주고도 안 사는 불법 복제 CD라는 것이다. ‘또 당했구나!’ 사기를 치고도 쿨하게 페이스북 친구를 맺은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리니 역시 화가 나기보다 웃음이 먼저 난다. 그런 물건을 팔고도, 네가 행복하다면 자신도 행복하다며 그건 네가 정한 가격이라고 당당해할 음악 가게 아저씨. '음악만 잘 나오면 됐지. 정품이 무슨 소용이냐 no prblem!'을 외치게 되는 나를 보니 인도 생활에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벵갈리토라의 좁은 골목에 출동한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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