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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2. 2016

세상에서 제일 야한 사원

카주라호의 미투나 상 구경하기

 카주라호는 인도를 대표하는 유적지 중 가장 에로틱한 도시로 유명하다. 요즘의 하드코어 한 포르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온갖 체위의 조각상인 미투나(Mithuna)들이 수없이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성애서로 이름 높은 <카마수트라>의 원전이 이 카주라호의 조각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미투나 조각상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한다는데.. 나는 인도에 오기 전부터 가이드북을 뒤지며 이곳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눈으로 꼭 보리라!!  

 아그라에서 밤기차를 타고 카주라호로 갔다. 기차 안에서 심한 감기에 걸려 몸이 정말 안 좋았다. 기차 두 칸 중 위 칸에 누워 잠을 한숨 자고 나면 아침에 카주라호에 도착하는 일정인데, 정신이 혼미했다. 하지만 아침에 카주라호 도착하자마자 미투나 상을 만날 기대에 아픈 것도 낫는 듯했다. 

  신성해야 할 사원에 성행위 조각상이 공공연히 전시돼 있는 탓에 카주라호의 조각상들은 많은 금욕주의자들의 분노를 샀다고 한다.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는 ‘모두 부셔버리고 싶다!’고까지 말했다고. 종교와 성이라는 기묘한 접합에 호기심은 더욱 커져갔다. 카주라호의 유적들은 1000년 전 이곳에서 번영을 누렸던 찬델라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전성기에는 85개나 되는 사원들이 카주라호를 가득 채웠는데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지금은 22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모두 사라지지 않고 22개의 사원이 남겨진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22개의 사원이 남겨질 수 있었는지는 고고학자들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라고 한다.  

  카주라호는 아주 작은 도시다. 볼 것이라곤 사실 힌두 사원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힌두 사원은 가장 많은 사원이 모여있는 서부 사원군과 반대편에 위치한 동부 사원군 그리고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부 사원군 세 군데로 나뉜다. 이 작은 도시에 이틀이나 머물 계획을 세운 탓에 카주라호에 있는 모든 사원군뿐 아니라 동부 사원군에 위치한 카주라호 마을과 가이드북에도 잘 나와있지 않은 외진 곳에 있는 라네 폭포까지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남녀교합상인 미투나는 대부분 서부 사원군에 있다. 서부사원군에 있는 조각상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작업이다. 말과 성행위하는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여자상, 남성과 여성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뒤얽혀 성행위를 하는 충격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하지만 외설적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역시 ‘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역시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 놓인 문제라는 것을 실감한다. 외벽에 그려진 조각상이 쭉쭉빵빵 서구적인 8등신 미녀의 사진이라면 느낌은 천지차이였을 것이다. 둥글둥글하게 풍만한 몸을 하고, 흙으로 구워진 채 사원 벽에 붙어있으니 정말 무슨 종교적 의식 같기도 하고 민망함 없이 관찰이 가능했다. 

카주라호의 미투나 상 

  간디와 더불어 이슬람 금욕주의자들은 사원의 조각상이 종교적이지 못하다며 역정을 냈겠지만 천 년 전 힌두교인들이 봤다면 참으로 억울하고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참된 종교란 느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느끼고 타인과의 육체적 합일을 이루는 것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의미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다.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잠정적으로 여겨지는 진리를 맹목적으로 믿으며 다른 생각과 삶을 파괴하려 든다면 그만큼 어리석고 폭력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민망해하는 우리를 비웃듯 당당하고 성스러운 자태로 성행위를 보여주는 천 년 전의 조각상들 앞에서 우리의 오만함과 편협함을 성찰하게 된다.   

해질 녘의 카주라호

 작은 마을인 만큼 자전거를 이용하면 카주라호의 곳곳을 편하게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타는 기름칠 잘 된 자전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울퉁불퉁한 길에 삐걱삐걱 굉음을 내는 자전거를 타기란 초보자에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사원뿐 아니라 마을로 들어서면 이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카주라호에는 씽씽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한국말로 사기를 치는 인도인들도 많기 때문에 늘 주의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소박한 마을의 정취에 취해 있을 때면 한글학교가 있으니 들러서 후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오기도 하는데 모두 관광객을 노린 거짓말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남부 사원군에 도착할 때쯤엔 이미 너무 많은 사원을 봤기 때문에 거의 지쳐있었다. 일정이 남았다면 라네 폭포를 방문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사원군과는 꽤 떨어져 있어서 약간의 거금을 주고 릭샤를 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원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가이드가 함께 동행하며 곳곳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폭포 아래 강가에서 짧은 시간 배를 타볼 수도 있다. 이틀이나 할애할 만한 곳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막상 카주라호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참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미투나 조각상과 얄미운 사기꾼이 살고 있는 소소한 마을, 그리고 반전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웅장한 라네 폭포까지.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카주라호였다.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다는 카주라호의 라네폭포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카주라호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기념품이다. 이곳에서만 살 수 있다. 카마수트라 원전과 각국의 언어로 친절하게 번역된 번역본 카마수트라, 카마수트라 그림이 그려진 카드, 미투나 조각상 마그네틱, 각종 체위로 움직이는 성행위 열쇠고리를 말이다. 주변에 꼭 필요할 것 같다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잔뜩 사서 손에 쥐어줘 보자. 강렬한 선물로 평생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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