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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2. 2016

타지마할

사랑은 무엇으로 완성될까

  인도에 가기로 마음먹고 휴대폰에 타지마할의 사진을 배경으로 해놓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하얀 빛깔의 타지마할. 언젠가 꼭 그 앞에 설 것이라고 생각하면 참 기분이 좋았다. 인도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인 타지마할에는 세계 어느 곳의 건축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새하얀 대리석의 빛깔과 잔잔하게 이어지는 곡선에서 아련한 슬픔이 배어 나온다. 

  꼭 아름다운 여왕의 궁전 같은 이곳은 사실은 무덤이다. 건축광이었던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자한이 사랑하는 부인이 죽자 그 슬픔을 달래고자 지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 뭄타즈마할을 따서 이곳은 타지마할이라 불린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왕궁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곳이 무덤이라는 사실에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을 떠올려본다.  

타지마할 앞에서

  타지마할을 짓는 데만 22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등 다양한 나라에서 최고의 기술자들이 모여 당대 최고의 기술과 아름다운 보석으로 이곳을 장식했다. 오랜 시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이곳을 쌓아 올렸던 샤자한을 생각하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많은 것들, 미처 해주지 못한 아쉬운 것들, 생전 아름다운 추억과 못해줘서 미안했던 것들을 그는 이 무덤에 모두 쏟아부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샤자한은 평생을 한 사람만 바라본 의리 있는 로맨티시스트일 것이다.

  하지만 좀 꼬아볼 수도 있다. 떠난 그녀를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남겨진 자신을 위해서 그는 이 아름다운 무덤을 만든 것은 아닐까? 그 화려한 보석과 아름다움이 그녀에게 닿을 수 있었을까? 타지마할이 완성되었던 22년 뒤가 아니라 사랑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던 그 순간 이미 그녀의 사랑은 완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순간을 순간대로 간직할 수 있는 성숙함을 갖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났다 해도 지난 시간들과 이루지 못한 앞날이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타지마할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연약함을 본다. 

  샤자한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 자신에 매몰되어 버릴 때가 있다. 사랑을 베풀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빠져, 혹은 내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려고 잠시 상대에 대한 생각이 아닌 내 고집을 사랑이라 착각할 때가 있다. 사랑이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을 해주기보다 정말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임을 잊게 될 때도 많다. 상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랑은 변한다. 남보다 못한 모습으로 차갑게 식기도 하고 친구처럼 편안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가족과 같은 의리로 남기도하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고 나면 절절했던 아픔도 한 장의 사진처럼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에 대한 각자의 정의도 변한다. 예전엔 나도 완전한 사랑을 바라며 모든 기억들을 두 손을 꼭 쥐듯 붙잡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에 완성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약혼도 결혼도 그 어떤 약속도 사랑의 완성이 될 수는 없다. 어쩌면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맞지 않는 말일지 모른다. 오직 눈 감는 순간에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때만이 어렴풋이 생에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었던  뭄타즈마할 왕비는 어찌 보면 비극이지만 어찌 보면 축복이다.  

  해 질 녘 루프 탑 레스토랑에 앉아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지나간 사랑들을 떠올린다. 환한 햇빛에 반짝이던 대낮의 모습과는 달리 관광객도 하나 둘, 씩 떠나고 쓸쓸한 모습의 타지마할. 그 외로운 모습에 왕비보다는 샤자한을 먼저 떠오른다. 한 장의 사진처럼 남은 나의 사랑했던 시간들도 스쳐간다. 아픈 기억도 그리운 시간들도 모두 소중한 나의 일부가 되었다. 욕심을 부려본다면 사랑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남겨진 사람이 되더라도 너무 아파하기보다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기를. 그것이 사랑의 완성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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