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며칠간 나를 편히 쉬게 해주었던 소박한 방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배낭 하나에 한 달 짐을 구겨 넣었다. 마지막으로 목욕재계도 하고, 버려야 할 물건들은 버리고, 새롭게 늘어난 짐들을 쑤셔 넣으며 채비를 했다. 내일 새벽이면 바라나시 공항으로 향하고 잠깐 델리에 들른 뒤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한 달이라는 인도에서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옥상에 올라가 가만히 갠지스 강을 바라보던 기억, 하염없이 강가를 걷던 일, 골목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흥정하다 언성을 높였던 적, 화내다가 어이가 없어서 그저 웃음이 나왔던 일, 말도 안 통하고 어딘지도 몰라 난처했던 때가 생각났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느꼈고,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어디에서도 겪을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일들도 겪었다. 혼자 이렇게 낯선 곳으로 떠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여행한 것도 처음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닥치는 대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지난 시간들이 이제 마무리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꿈같기도 하고, 너무 빨리 지나버린 것 같기도 했다. 한마디로 싱숭생숭하달까. 그런 생각에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겨우 잠에 들어서도 계속 몸을 뒤척였다. ‘이렇게 돌아가면 다시 언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아마 평생 오지 못할지도 몰라. 한국에 가면 요 며칠 바라나시에서의 나날들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겠지.’
새벽같이 눈을 떠 항상 가던 라자가트로 향했다. 모든 짐을 싸서 내 키 만한 배낭에 짊어진 채였다. 마지막으로 바라나시의 일출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늘 안개가 끼어 있거나 늦잠을 잔 탓에 한 번도 제대로 떠오르는 태양을 본 적이 없었다. 늘 마시던 짜이집 앞에서 배낭을 옆에 내려놓고 계단에 앉아 강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배낭을 멘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며 대성통곡을 해버렸다. 그렇게 울어본 것이 언제가 마지막인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어린아이처럼 마구마구 울었다. 숨도 잘 쉬지 못한 채 헐떡이며 우는 내 모습이 꼭 엄마를 잃은 다섯 살 난 아이 같았을 것이다. 일출 보트를 타러 나온 온갖 관광객과 인도인들이 나를 에워쌌다. 무슨 큰일이 난 줄 알았나 보다. “니혼진 데스까?” 일본인, 중국인, 인도인 할 거 없이 나에게 와서 울지 말라고 걱정 섞인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잇츠 오케이.. 아임 오케이.. 엉엉엉”
울면서 그 와중에 일본인 아니라고, 괜찮다고 대답하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한참을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날 지켜보던 한 인도 사람이 물었다.
“너, 떠나기 싫구나.”
“예스.... 아이 돈 원트 투 리브 흐헝헝헝헝”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떠나는 것이 아쉬워 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복합적인 심경의 폭발 같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제자리인 것만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변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인도의 갠지스 강물 한 방울이면 모든 죄가 씻어진다는 말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지난 죄는 아니더라도 26년 인생에 지난 사랑들, 아픈 기억들을 다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난 헤어짐이나 끝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두려워했다. 졸업식,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시간들. 모두가 겪고 이내 익숙해지는 작별의 순간들이 나에게는 몇 배 더 힘들고 어려웠다. 욕심이 많아서일까. 붙잡으려 억지를 부린 적도 많았다. 그래서 모든 이별을, 모든 순간들을 무거운 배낭처럼 온몸으로 지고 살아왔던 것 같다. 아무리 털어버리려 해도 털어버릴 수 없던 그 미련들을 갠지스 강이라면 떠내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지난 시간들을 한 장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인도 여행에서의 나날은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보다 더 정신없는 삶의 전장에서 명상은커녕 매일같이 싸우고, 걱정해야 했다. 웃기도 하고 조바심 내기도 하고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여행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다른 나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돌아가면 마주할 일상도 그대로, 나도 그대로 인 것 같았다. 그게 허무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게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더 이상은 내가 이전에 나 일 수 없음을, 이제는 정말 원치 않아도 변해야 하는 시점임을 갠지스 강 앞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갠지스 강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지금 당장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여도 그렇게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인생의 사소한 진리를 몸소 부딪치며 깨지며 받아들이고 있다고.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직면하며 잘하고 있다고 자라고 있다고. 그래서 그렇게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펑펑 울었나 보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바라본 강가에서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통곡하는 나에게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내려주는 위로 같았다. 신은 예수도, 부처도 아니고 밝게 떠오르는 태양 속에, 몸을 감싸는 바람 속에, 드넓은 하늘과 땅, 그리고 나 자신 안에 있다는 인도인 친구의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