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에서 알을 떠 왔다. 알에서 올챙이가 태어났다. 총 5마리. 이 아이들을 살뜰히 키웠다.
냇가의 물을 수시로 떠 와 갈아주었다. 바깥의 온도와 맞게 키우려고 베란다에 두고 창문을 상시 열어두었다. 밥 한두알을 넣어주다가 물이 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고기 밥으로 대체하였다.
그렇게 올챙이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점점 커졌다. 조금 지나자 뒤에 무언가 조그만 두 개가 나왔다. 뒷다리! 뒷다리가 나왔다며 아이들은 흥분했다. 조금 더 지나자 영락없이 앞다리가 나왔다.
이때부터 걱정이 시작되었다. 작년 개구리가 앞다리가 나오고 난 후. 꼬리가 짧아지고서. 물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크고 납작한 돌을 넣어주었었다. 개구리가 뭍으로 나올 수 있어야 산단다. 개구리가 되면 올챙이 때와 숨 쉬는 구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구리는 죽었다. 개구리는 돌을 찾지 못했다. 조그만 물통 안에서. 물통 벽을 기어오르려다 못 오르고 죽은 듯했다. 돌에 올라와 있을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헤맸다.
그 기억이 났다. 혹시 개구리가 죽을까 봐. 어서 물에 풀어주어야 했다.
아이들과 부랴부랴 개구리를 데리고 갈 준비를 했다. 다음날 개구리를 풀어줄 예정이었다. 총 두 마리가 먼저 개구리가 되었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한 마리는 사라져있었다. 꼬리가 아직 좀 있어서 그 아이는 물통에 넣어두었었는데. 위로 튀어 오른 걸까? 베란다를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근처에 있어도 너무 작아서 찾기 힘들 듯했다. 결국 개구리 하나와 나머지 개구리가 되려는 올챙이 3마리만 데리고 출발했다.
냇가에 도착해 풀어주었다. 개구리를 보내며 올챙이 때 생각이 났다. 가만히 있다가 내가 다가만 가면 꼬물꼬물. 아이들이 참 좋아했는데. 가만히 추억하다 문득 생각이 났다. 흔히들,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한다. 아무렴!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할 수밖에. 개구리는 올챙이와 너무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달라.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함은, 신분 낮은 사람이 지위가 높아지면 지난 힘든 시절 기억 못 한다는 뜻이다. 혼자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닌데 자기만 잘난 줄 알고 살피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도 이 속담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직접 키워보니 좀 생각이 달라진다. 개구리가 올챙이처럼 살면 숨쉬기조차 힘들다. 그래서 작년의 개구리는 죽었다. 개구리는 개구리로서 개구리의 삶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올챙이 적 운운하며 끌어내리는 사람들은 오히려 질투가 나는 것 아닐까? 성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아닐까?
물론 자신이 난 자리를 기억하고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야 한다. 더욱이 그 자리에 가기까지 영향을 준 은인들에게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니까. 변화를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기. 그래야 개구리도 살고, 동료들도 평안해지는 길 아닐까.
마지막 인사는 짧았다. 계속 베란다에서 어딘가 죽었을 개구리 하나가 생각났다. 다녀와서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안녕인가 보다.
둘째는 아직도 베란다에 가면 올챙이?라고 물어본다. 올챙이는 풀어줘서 이제 없어 라고 대답했다. 여전히 올챙이가 보고싶은가 보다. 내년에 또 냇가에 놀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