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1도, 성공과 행복의 양육비법

노블레스 오블리주 범려를 통해 보는

by 엄지언

육아서들을 읽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패턴이 있었다. 많은 육아서들이 '성공'을 주제 삼고 있었다는 것.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동분서주한다. 육아, 엄마의 삶, 아이의 삶 모두 성공적일 수 있는 수많은 팁과 공식들이 난무한다.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해야 아이에게도 좋다 라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가. 늦나이에 힘들게 하나 낳아 키우는 케이스, 많아야 둘, 혹은 전략적으로 외동으로 굳히는 집도 많다. 예전 세대보다 더, 귀한 내 아이가 '잘' 살길 바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얼 바랄까?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 엿들어 보았다.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제일 먼저 반복 기도하는 제목이 있었다. "우리 아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 건강.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행복의 기원>의 저자 서은국은 행복의 가장 밑바닥 근원은 '생존'이라 한다. 건강은 생존과 직결된다. 엄마들은 궁극적으로 아이의 행복을 빌고 있었다. 돌잡이에서 이제 장수를 기원하는 실타래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평균 수명이 낮던 원시 시대에는 -만약 돌잡이라는 게 그때도 있었다면- 최고 인기였을지 모른다. 지금 인기가 없는 건 오래 사는 게 중요하지 않아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지금은 오래 사는 것이 당연한 세대이다. 기대 수명이 높고 응당 내 아이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의식에서는 그렇지 않다. 마음속으로 매일 무사안녕을 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안다.


많은 부를 축적하거나 명예를 얻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쳤던 성공한 위인의 삶을 살펴보았다. 말년이 좋지 않은 케이스가 많았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형당했다. 노예 해방의 링컨은 암살당했다. 발명가 에디슨은 외고집으로 실패를 거듭하다 세상을 떴다.


그래도 이 세상을 위해 내 아이가 성공가도를 달리길 바랄까? 엄마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무사안녕... 세상의 부와 명예를 누리고서도 말년이 행복한 케이스는 없는 걸까? 생각하며 찾던 중 범려라는 위인을 알게 되었다. 토사구팽, 와신상담, 삼취삼산의 춘추시대 월나라 정치가이다.



왕을 보필해 오랜 전쟁에 승리하고 누릴 일만 남은 범려. 모든 걸 버리고 홀연히 떠난다. 새로 자리 잡은 곳에서 이름을 바꾸고 크게 번다. 다 나눠주고 거처를 옮긴다. 옮긴 곳에서 다시 돈을 벌어 세 번 크게 나누고 민중에게 사랑받으며 말년을 마감한다.


범려는 때를 읽을 줄 알았다. 절정에서 내려놓을 줄 알았다. 베풀 줄 알았다. 그는 누릴 만큼 누리고 말년도 행복했다. 이를 양육에서 영향받을 수 있다면 어떤 부분에 신경 써야 할까?



적절한 시기를 읽어내는 능력


때를 아는 능력은 반응성에서 나온다. 엄마들은 아이가 지금 기저귀를 뗄 때가 되었는지, 엄마로부터 떠나 독립할 시기가 되었는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안다. 두 돌이 되면 어린이집에서 같이 떼는 것이고, 세돌이 되면 분리가 가능하다 라는 공식은 평균이자 지침일 뿐, 아이마다 다 다르게 나타난다. 아이에 집중하면 아이 행동의 미묘한 변화가 관찰된다. 경험이 없어 수없이 넘겨짚더라도 막상 때가 되면 아 이때구나 라는 감이 온다. 출산과 비슷한 이치다.


절정에서 놓는 것


다 되었을 때 놓는 것은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꽉 차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과일은 익으면 떨어지고, 달은 차면 기운다. 자연은 모든 법칙을 알려준다. 이 법칙을 자연에서 배우고 놀이를 통해 사용해 보아야 한다.


베푼다


베풂은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보고로 건강과 장수에도 좋다.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명예와 부는 함께 가지 않으며, 드물게 함께 가면 화가 오기 때문이다. 수많은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나눔의 원칙을 배우는 것은 근원적으로 그게 좋은 것이라서가 아닌 생존을 위해서이다. 동화 <무지개 물고기>가 좋은 예다. 반짝이 비늘을 나누어야 속된 말로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 베풂으로 사람을 얻는다. 사람은 행복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된다.




때를 알고, 놓을 줄 알고, 베푸는 것. 이 모두 중요한데 여기서 내 눈에 보이는 또 다른 원칙이 있다.


먼저 자신을 보존하여 쌓고

그다음 주변에 나누는 것


많은 사람들이 나눔의 법칙을 중요시하여 먼저 자신을 지키는 것을 종종 잊는다. 예를 들어 아이가 놀 때 장난감으로 싸우면, 상대 아이에게 무조건적으로 양보하길 내 아이에게 강요하는 케이스가 있다. 아이가 포기하고 양보하면 잘했다고 칭찬하여, 자신의 필요보다 타인의 욕구에 민감한 아이로 양육하게 된다. 이보단 아이의 욕구를 인정해주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상대도 배려하고 자신도 챙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는 자아와 공감능력 발달에도 중요하다. 튼튼한 자아란 모래 아닌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자아는 나의 감정을 인식하는데서 시작한다. 아기들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만족감을 느낀다. 이 만족감이 바탕되어야 타인의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냥 잘 보이기 위해 맞추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공감능력이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때>의 저자 에다 르샤는 너그러운 아이가 되기 위한다면 먼저 아이의 소유권을 인정하라 한다. 자신의 소중함을 인정받아야 타인의 소중함도 인정해주며,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 양보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먼저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것을 누려보아야 진정한 나눔이 가능한 법이다.





수많은 육아서들이 성공을 이야기하지만, 엄마들이 진정으로 마음속 깊이 바라는 것은 아이의 행복이다. 범려라는 말년이 평탄했던 위인의 삶에서 성공이 뒤따르는 행복 양육의 방법을 찾아보았다. 일반적인 성공을 위한 양육과는 좀 다른 것 같다. 때를 알고, 내려놓고, 베푸는, 또한 자기 자신을 먼저 지킬 줄 아는 사람. 이는 반응성, 자연놀이, 나눔의 가치관, 그리고 소유의 경험에서 온다.


이것이 다 누려보고도 말년에 무탈할, 진정 행복한 삶의 원칙일 것이다.






생각트기


매일 내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내 아이의 행동을 보기

매일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내 내면의 목소리 듣기

때가 되면 사회의 요구에도 반응하기


생각하기


내 아이의 적기(적정 시기)와 다른, 사회에서 요구하는 적기가 있는가? 예를 들어 유치원생 우리 아이는 아무리 노출해도 아직 한글에 관심이 전혀 없는데, 주변 엄마들은 한글 공부를 어서 시작해야한다고 난리다. 아니면 거꾸로, 한글을 빨리 습득하면 우뇌 발달에 좋지 안다고 난리인데, 우리 아이는 이미 한글에 관심이 많다. 아이가 다같이 한글을 떼야하는 정해놓은 시기라도 있는 걸까?


내 아이가 자신을 먼저 챙기지 않고 타인에게 배려하는 때가 있는가? 혹은 부모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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