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 얘기 좀 끝까지 들어보세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일했던 직장에서 나를 인터뷰하고 채용했던 내 직장 상사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말이야, 난 네가 동양인이라서 뽑았어. 동양인들은 머리가 좋고 성실하잖아?"
이 날 집에 가서 이 말을 차별성 발언으로 인사과에 신고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왜냐면 난 세상에 좋은 인종 차별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뽑았을지 몰라도 다른 곳에서는 같은 이유로 날 뽑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국은 그냥 넘어갔다. 사실 나도 이게 차별성 발언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렇듯 편견과 차별, 스테레오 타입의 경계는 모호하다.
내가 이렇게 장황한 밑밥을 까는 이유는 바로 우리 수학 선생님을 거론하기 위해서다. 잠깐! 이 말을 하는데 미국 생활 좀 했다고 "우리"라는 말이 어색해진 일화가 떠오른다. 얼마 전에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우리 엄마"라고 하기에 "우왓? 뭐야! 저 남녀주인공 엄마가 같아?!"라고 생각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한국어 "우리"는 영어로 "Our"만이 아니고 "My" 로도 쓰인다는 걸 잠시 잊었다.
아무튼, 난 우리 수학선생님이 흑인 남성이라서 좋다. 물론 흑인 남성이 수학선생님일 수 있다. 근데 난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미식축구 선수가 수업에 들어온 줄 알았다. 몸짓도 크고 말투도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의 억양이 아니라 흑인 특유의 리듬감이 있고 껄렁껄렁(?) 하시다. 아니다 다를까 주말에는 아들의 학교에서 풋볼코치도 하신단다.
그래서 난 선생님이 좋다. 스테레오 타입은 나쁘다거나 몸집이 큰 흑인 남자도 당연히 수학 잘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라며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사이 등치가 크고 말투가 요란한 흑인남자로서 수학을 공부하며 선생님이 맞서 싸워야 했던 차별은 진짜였을 것이다. 내가 외국인 티가 나는 영어를 구사하며 미국에 사는 동양인 여성으로 매일매일 마주치는 차별을 나 말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듯 말이다.
얼마 전에 유퀴즈에 나오신 서진규 박사님이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어 그 모든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셨다는 말을 하신 게 생각난다. 우리 수학선생님을 보며 많은 학생들도 갖가지 자신만의 이유로 동기 부여와 희망을 얻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런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