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사유 중 "진지한 반성"에 대하여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컨설턴트 전세사기 사건에 대하여,
빌라왕 사건에 가담한 사람 vs 보통의 갭투자자에게 물건을 소개해준 사람
유죄를 인정할까, 무죄를 주장할까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는지 여부를 양형 사유 중 하나로 판단하는 것은 정당한가
기존 임대인과 임차인의 전세계약, 새로운 임대인(매수인)과 기존 임대인(매도인) 사이의 매매계약을 동시에 진행하고, 그 전세보증금과 매매대금의 차액을 상당히 적은 금액 또는 0원(이른바 "무갭")으로 하여 거래를 진행하는 것을 이른바 동시진행이라 한다.
동시진행이 항상 전세사기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아파트, 고급 빌라에 대하여도 이른바 갭투자의 방법으로 동시진행은 자주 쓰이던 방식이다.
동시진행 중 전세사기가 문제되는 사건을 두 가지 케이스로 나누어서 살펴보려 한다.
첫번째 유형은 이른바 수십채의 빌라, 오피스텔을 1명의 매수인(소위 바지 명의인)이 매수한 경우이고, 두번째 유형은 매수인이 1~2채의 빌라, 오피스텔을 매수한 사건이다.
빌라, 오피스텔을 수십채 매수한 "빌라왕" 사건에 가담한 경우
-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최근 공인중개사 또는 중개보조원과 관련된 형사 사건을 자주 취급하고 있다. 그 중에는 소위 "전세사기"에 연루되어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게 된 사건들이 많다.
아무런 재산도, 소득도 없는 사람이 수십채의 빌라나 오피스텔을 매수하는 유형의 사건을 소위 "빌라왕" 사건이라 한다. 빌라왕 사건의 경우 빌라왕의 사기 범행에 적극 가담한 컨설턴트 또는 중개보조원이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는 도의적 차원, 형법적 차원(법이론적 차원), 소송기술적 차원에서 모두 그러하다.
우선 도의적 측면에 대해 본다. 1명의 매수인이 수십채의 빌라나 오피스텔을 무차별적으로 매수하는데, 그 매수자금을 임차인의 임차보증금으로 터잡은 경우, 공인중개사로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임차인에게 손해가 발생할 것을 예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임차인이 소위 hug 보증보험에 가입하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1) hug 반환보증에 따른 대위변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2) hug 반환보증에 따른 대위변제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도 있으며, (3) hug 반환보증의 대위변제가 실제 이루어질 때까지 시간이 소요되어 그 임차인의 부동산 관련 거래(분양, 매수, 임차 등)에 악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임차인의 hug 반환보증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공인중개사 또는 중개보조원이라 하여도 도의적 책임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형법적으로는 어떨까.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와 관련하여, 매수인(새로운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사기죄로 처벌받는 것은, 임차인을 상대로 매수인의 변제자력을 기망했기 때문이다. 빌라왕은 수십명의 전세보증금을 지렛대로 삼아, 수십개의 부동산에 레버리지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따라서 전세가격이 조금이라도 하락하는 순간, 수십채의 부동산에 연쇄적으로 역전세가 발생하게 되는바, 빌라왕은 보증금을 모두 변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수인과 공인중개사는 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기망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는 수십명의 임차인이 모두 hug 보증보험에 가입했어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사기죄에서의 "재산상 손해"란 실제 손해가 발생할 것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만 있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빌라왕과 전세계약을 체결한 임차인들이 보증보험에 가입하였어도, 그 임차인들은 임대차계약 체결 시점에 이미 재산상 손해 발생의 위험을 안게 되었다. 사기죄가 성립하는데 형법 이론적으로도 별다른 의문이 없다.
소송기술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만일 사기죄의 성립을 부인하면서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 소위 "진지한 반성"이 없다면서 더 강한 처벌을 받을 심산이 크다(늘상 이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래에서 설명한다). 최근 선고되는 전세사기 관련 사건 중 징역형 10년 이상이 선고되는 경우는 대부분 이러한 경우이다.
몇몇 나쁜 변호사들은 고액의 수임료를 받기 위해서 무리하게 무죄를 주장하자고 나선다. 이에 부화뇌동하여, 아무런 소송 전략 없이 무죄를 주장하다가, 결국 1심 판결 선고일에 법정구속되는 사람들을 한 두명 본 것이 아니다. 나쁜 변호인에게 현혹되었다가 철퇴를 맞게 되면 그 책임은 오로지 피고인이 져야 한다.
물론, 항상 100%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형사재판은 증거기록으로 하는 것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증거기록을 검토한 후 유죄를 인정할지 여부를 확정해야 할 것이다.
눈이 많이 온 날, 서울중앙지방법원
1~2채를 매수한 매수인, 그리고 매매 물건 또는 전세 물건을 맞춰 준 공인중개사 - 무죄 주장을 해보아야
최근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부분은, 단 1~2채를 매수한 갭투자자와, 그 갭투자자에게 매매 또는 전세 물건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 또는 중개보조원들이다. 설령 다수의 물건을 매수한 갭투자자라고 하더라도, 이를 알 수 없었던 공인중개사 또는 중개보조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무죄 주장을 적극 개진해볼만 하다. 특히 임차인이 hug 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임차보증금을 회수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던 사건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전세사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임차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1) 매수인은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었고, (2) 매수인과 공인중개사는 매수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어야 한다.
(1)에 대해 보자. 갭투자자가 단 1~2개의 물건만을 매수한 경우, 매수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었다고 판단하려면 특별한 근거가 필요하다(예를 들면, 갭투자 당시 신용대출 등도 전혀 받을 수 없을만큼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다는 사실 등).
예를 들어,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1억 5000만원이었던 물건의 경우, 전세가격은 계속하여 1억 5000만원인데, 매매가격은 1억 2000만원으로 하락한 경우, 갭투자한 임대인은 3000만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왜냐하면 그 물건을 매각하여도 3000만원을 구해서 임차인에게 줘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인이 신용대출이든, 사금융이든 3000만원을 조달하기만 하면, 위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은 가능하다. 따라서 전세계약 당시 매수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었다고 하려면, 3000만원 정도도 조달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 사정이 열악했다는 것을, 검사가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빌라왕 사건의 경우, 예를 들어 100채를 투자했다면, 1채당 전세가격이 3000만원씩 하락한다면 총 30억원의 손해가 날 수 있는 것인데(=3000만원 x 100채), 30억원을 조달할 능력은 누구라도 갖기 어렵다. 그러니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결론을 쉽게 낼 수 있는 것이다.
간혹, "매수인이 결과적으로 3000만원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었으니 사기죄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범죄의 성립 여부를 투자의 결과에 따라 좌우하게 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 또한 기망에 대한 고의가 존재하는 시점을 행위 시점보다 훨씬 이후로 미룬 결과론적인 판단이라 합리적이지 못하다. 만일 그러한 잣대를 들이대면,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한 사람은 전부 사기죄로 처벌해야 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에 대해 보자. 매수인이 단 1 ~ 2채만을 매수하였고, 공인중개사도 그렇게 밖에 몰랐던 경우,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는 매수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방법이 없다. 우선 공인중개사에게는 매수인의 재무 상태를 파악할 자료가 전혀 없다. 만일 빌라왕 사건처럼 순식간에 수십, 수백채를 매수한다면야, 어림짐작으로야 "전세보증금이 하락하면 위험할 수 있겠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1채 내지 2채 정도 투자한 매수인이 "전세보증금이 하락하면 위험하겠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몇몇 수사관은 갭투자자들이 취득세 또는 거래비용 등을 지원받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아파트도 분양이 잘 안되면 각종 우대 조건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신축빌라나 신축 오피스텔도 분양을 받기만 하면 각종 선물을 준다거나, 현금성 지원을 해준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구옥빌라, 구축 오피스텔은 신축 빌라, 신축 오피스텔보다도 더 매각이 어려운 물건이다. 따라서 이러한 물건에 투자하겠다는 갭투자자가 있는 경우, 취득세를 지원해주거나 소위 페이백을 해주는 것이 특별히 이상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형의 감경사유로서 "진지한 반성" - 무죄 주장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대표적인 범죄들에 대하여 형량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할 지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진지한 반성"이다.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으면 형량을 깎아주겠다는 소리인데, 반대로 말해 반성의 기미가 없다면 형량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피고인의 반성 여부를 형량에 반영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피고인의 반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수많은 사건에 묻혀있는 판사님으로서는 일일이 피고인의 반성 여부를 살피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반성 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실무적으로 피고인의 반성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 여부를 살피는 경우가 많다. 즉, 피고인이 제1회 공판기일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느냐, 아니면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하느냐 여부를 가지고, 피고인이 반성하느냐, 반성하지 않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정당한가? 위와 같은 기준이라면, 무죄를 주장하려는 피고인은 형량을 건 도박을 해야 한다. 피고인들은 무죄를 주장하다가 소위 "괘씸죄"로 괜히 강한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 알아낸 사실이 정말로 실체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공정하게 따져보겠다는 것이 형사재판이다.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을 부인한다고 하여 불이익을 주는 것이 과연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오늘도 형사사건에서의 무기대등의 원칙은 요원한 일이기만 하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앞으로는 최선의 수(手)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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