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면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용기 1

by 바라미

기억할 수 있는 그 끝에도 주일 아침이면 항상 교회에 갔다. 10대에도 가기 싫다거나 혹은 왜 가야 할까 하는 질문도 없이 당연히 교회에 갔다. 고3 때는 학교의 자율학습 권장과 교회의 예배를 놓고 저울질한 기억이 있지만 일찍 예배드리고 학교 가는 식으로 타협했다.


대학 때는 술자리나 답사 같은 친목 모임과 예배를 놓고 갈등했다. 주일뿐만 아니라 수요일과 금요일 예배에서도 반주를 하고 있어서 고민할 때가 종종 있었지만 역시나 적당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예배에 갔다. 20대 중반에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갈등이 좀 더 커졌다. 주말을 끼고 놀러 가고도 싶고 가끔 출장도 가야 했다. 아주 드물게 해외여행을 빼고는 주일 전에 돌아왔고 어쩔 수 없다며 불편한 마음으로 출장은 갔다.


장황하게 예배 참여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마흔 중반이 되기까지 한 번도 '교회에 왜 가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게 신기해서이다. 일요일 아침이면 평생 교회에 갔는데 마흔 중반에 처음으로, 왜 교회에 가야 하나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비로소 파고들기 시작했지만 내면의 민낯과 생각의 빈곤을 제대로 마주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2020년 봄, 전 세계가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셧다운됐다. 그러기 반년 전인 2019년 여름, 야산에서 미끄러져 왼쪽 발목이 복합 골절돼, 나사 11개로 발목을 이어 붙이고는 8개월간 깁스 했다. 그러기 반년 전인 2018년 가을, 한국에서 미국 뉴저지로 이주했다. 삶이 비틀렸다.


성경에 출애굽 후 40년간 광야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의 얘기가 있다면 내게는 출한국 후 6년간 이어진 지금, 여기의 광야 이야기가 있다. 진짜 나의 모습을 모르고 고요의 강물을 따라 순항하던 삶이 비틀리기 시작하자 어느새 광야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삶의 뿌리를 뒤흔드는 강렬한 질문이 휘몰아쳤다.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


아침이면 QT를 한다. 교재는 바뀌었지만 QT 습관은 30년이 넘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자기 전에 매일 안고 기도해 주었다. 지금은 온 가족이 저녁 식사 후에 손 잡고 기도한다. 산책하며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일주일에 몇 개씩은 꼭 듣는다. 마음이 동하면 종종 기독교 서적을 읽는다. 운전하면서는 주로 CCM을 듣는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말인가.


광야에 서서야 알았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았다는 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쁨으로 선물 같은 하루를 시작했을 텐데, 지난 6년간 수없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6시면 울리는 알람을 끄고 일어나 부엌에서 유튜브로 새벽 예배 영상을 틀고 쌀을 씻어 남편과 아이의 도시락과 아침을 준비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일상이 계속 비틀거렸기 때문이다. 성경이 삶을 휘어잡으며 안정시키지 못했다. 내면이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걸 깨닫기까지 아이와 심하게 부딪쳤다. 아이가 자신을 존재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온몸과 마음으로 저항하고 나서야 저 바닥에 단단하게 벽을 쌓아 닿기 어렵게 만들어 놓은 내면의 민낯에 도달했다. 드디어,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질문에 답할 만한 생각이 쌓여 있지 않았다. 바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내 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질문에 답할 생각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생각의 빈곤을 타파하려고 읽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 심리, 사회, 철학, 신앙 등 발견되는 책에 무작정 빠져들었다. 좋은 문장이 생각을 자극하며 마음을 어루만졌다. 미세하지만 생각의 변화가 감지됐다. 간절히, 성장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기대도 되는 어른이고 싶었나 보다.


스스로를 미운 오리 새끼로 생각하면서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압도했다.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로,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백조임을 자각하고 주어진 인생의 강물에서 당당히 헤엄치고 싶었다.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내면의 민낯을 보고 나니까 예수님이 삶에 꼭 필요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욕망과 죄의 사슬을 끊고,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편견과 이기심과 당대의 문화라는 경계를 넘어 하늘에 속한 삶으로 시선이 고정되길 매일 소망한다.




일상은 여전히 온전하지 않지만, 아니 연약한 사람으로 평생 온전할 수 없겠지만, 지난 6년의 광야 생활은 그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것을 생각하도록 용기를 주었다. 그건 남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오늘의 나보다 잘하려 스스로를 성찰하고 노력하는 용기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경 속 말씀이 살아 움직이도록 깨어 있으려는 용기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자기 자신에게 그리스도인인지 묻고, 질문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내면을 파고들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메신저인 당신과 나, 곧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세상으로 스며든다. 사막에서 목말라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시대는 지금, 그리스도인의 헌신을 필요로 한다. 자기를 점검하고 예수님을 따라 문화를 거슬러 생각하고 행동하는 헌신이다.


오십이 넘도록 매 주일에 교회에 나갔지만, 내면을 파고들 용기를 내지 못해 땅에 결박돼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30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내려오지 못했다. 이제 나의 싸움은 머리의 싸움이나 지식의 싸움이 아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아, 순간순간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싸움이다. 용기 내어 말씀 그대로,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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